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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Sep 01. 2023

슈퍼 울트라 에너자이저의 출현

코로나둥이 외손녀는 외계인?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둘~~~"


모회사의 선전광고에서 건전지 로봇이 팔 굽혀 펴기를 하면서 세는 숫자다.

힘세고 오래간다는 의미로 건전지 광고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운동마니아는 아니다.

특별히 타고난 운동신경은 없는 듯해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하는 운동을 놀이 차원에서 뒤처지지 않을 정도만 다.

한때는 산에도 몇 년 동안 열심히 다녔다.

틈틈이 기초체력도 꾸준히 달련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력적인 면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요즘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한 살밖에 안된 외손녀와 한두 시간만 같이 있으면 나는 완전히 녹다운이 되어 버린다.

건전지로 말하면 완전 방~~~ 전.


사실은 내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

외손녀를 안아주고 싶어도 슬며시 내 손을 치워버리고 억지로 스킨십을 하면 할아버지를 귀챦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서 같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외손녀가  물건들을 만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단지 지켜보는 것, 그것뿐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한두 시간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피곤함이 몰려온다.


외출을 해도 마찬가지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특별히 하는 일도 없다.

단지 지켜볼 뿐이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으면 녹다운.

몸은 이미 피곤함으로 녹초가 된다.

사위와 딸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고 어김없이 소파에 쓰러져 잠을 청한다.


외 할아버지는 이미 떡 실신


작년 7월에 태어나 한 달 전 돌을 지낸 외손녀는 건전지 에너자이저를 능가하는 슈퍼 울트라 에너자이저 임에 틀림이 없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잠시도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리모컨 만지기, 빨래 걸기, 노래하기, 악기 연주, 스티커 붙이기, 지갑 뒤지기, 핸드폰 갖고 놀기, 가방 메고 걸어 다니기 등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외손녀에게는 놀이 거리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물별로 쓰임새를 알고 노는 것을 보면 신기할 뿐이다.



걷기로 이동이 가능하기 전에 어른들이 하는 일들을 눈 여겨 지켜본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걷기를 시작한 이후 외손녀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모든 것을 만지고 눌러봐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내동댕이를 친다.

그래서 우리 집을 방문하는 날에는 웬만한 물건들은 도착하기 전에 치워둔다.

위험한 물건들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리고 작은 놀이 거리만 거실에 놓아둔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들에게 집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위험한 요소다.

손을 들고 중심을 잡으며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 떠 오른다.

귀엽지만 무시무시한 공룡.

혼자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가족들이 모이면 제각각 할 일로 나름대로 바쁘다.

아내와 딸은 분주히 음식을 만들거나 수다를 떤다.

사위는 잠시나마 육아의  굴레를 벗어난다.

그러다 보면 외손녀가  하는 모든 행동의 안전감시는 온전히 할아버지인 나의 몫이다.

잠시라도 외손녀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외손녀에게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다.

외손녀의 한걸음, 두 걸음에 나의 신경은 모두 집중된다.

아직은 서투른 걸음걸이에 혹시나 꽈당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든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 딸네 집에서 외손녀가 넘어져서 입안에 상처가 났다.

마침 사위가 출장으로 집을 비운 상황이었다.

밤늦게 아내와 딸이 인근 병원 응급실로 외손녀를 데려갔다.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니라서 하루 만에 다시 씩씩한 모습을 돼 찾았지만 가족들 모두 가슴을 쓸어 담는 일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외손녀가 누워있을 때나 걷기 전에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늘 외손녀의 새로운 짓거리에 웃음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돌아다니지를 못하니 늘 같은 자리에 있어 다칠 염려도 없었다.

마음 편하게 앉아서 노는 것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걷기 시작한 이후로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않는다.

저래도 되는 건가? 염려가 될 정도로 부지런히 다니고 걷고  논다.

이제는 힘도 세져서 다루기도 만만치 않다.

사위가 많이 분담을 하지만 딸 혼자 애를 하루종일 감당하기가 쉽진 않은 듯하다.

딸의 부루 터진 입술이 잘 낫지 않는다.

자식 가진 부모는 누구나 겪는 일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앞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져 몸 쓰는 일이 힘들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요즘 내게 벌어진 상황들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집중해서 신경 쓰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훨씬 심한 것 같다.

가끔씩 하는 골프도 출발에서 집에 도착까지 최소한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한여름 땡볕에 하는 노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에너지가 방전될 만큼 힘들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외손녀와 잠시의 놀이는 나의 에너지를 고갈하게 만든다.


그래도 어찌하나!!!

잠시 떨어지면 또 궁금해지는 것을.

"오면 반갑고 갈 때는 더 고맙다"는 말이 찰떡같이 맞는 말인 것을 요즘 절실히 깨 닫는다.

외손녀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만 한다면 외 할아버지, 할머니의 에너지가 조금 떨어진다고 한들 그게 무슨 큰 대수이겠는가?


잘 노는 만큼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라 믿으며 귀염둥이 외손녀의 오늘 하루 분주한 모습을

머리에 그려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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