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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Nov 01. 2023

선물(Present)


"2023년 10월 21일 PM 6시경"

50대를 보내는 마지막 날 저녁,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는 100세 시대를 공공연하게 외치고 있으니 성대한 60세 회갑연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시절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 보내기에는 아내와 직계 가족들 모두 성화여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가족들만 모여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기로 다.

식당은 일찌감치 두 달 전에 딸이 예약을 해 두었고 환갑 생일선물은 아내와 협의 끝에 딸과 아들 부부에게 한 가지를 요청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듣고 싶은 애청곡 1,000곡을 녹음한 USB"


노래곡목은 우리 부부가 적어 주고 녹음은 딸과 아들부부가 분담해서 다운로드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오랫동안 근무했던 회사에서 퇴직 후 호주와 뉴질랜드로 처음 자유여행을 갔을 때 대중가요와 팝송을 100여 곡 녹음을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렌터카를 운전하며 목적지로 이동할 때마다 차 안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니 여행의 즐거움이 한층 배가되었다.

그런데 노래수가 한정되어 들었던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야 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천 곡쯤이면 웬만한 여행일정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다음 여행을 떠날 때까지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식사 당일 노래곡목을 전하기로 하고 일주일 전부터 제목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작업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사는 기억나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고,

팝송의 경우 리듬은 흥얼거리는데 가사와 제목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곡목을 찾았는데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가수나 노래제목을 검색 OR 두 가지 다 모를 때는 유튜브에서 장르별 노래 검색해서 찾기


 》  해당가수가 부른 노래 MP3 파일 1분 듣기


 》  가수이름과 노래 제목 손글씨로 적기


 》  워드로 재 작성(나의 손글씨는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힘들어서 ㅠ).


심사숙고 끝에 1차 작업을 끝냈다.

막상 해보니 천 곡을 한 번에 녹음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다운로드하는데 드는 비용을(한곡당 770원으로 거의 백만 원) 차치하고서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자식들에게 너무 무리한 선물을 요구한 것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은 350곡 정도로 마무리했다.


"다양한 장르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대중가요 250여 곡 & 올드 팝송 100여 곡"


노래제목을 적은 종이를 봉투에 고이 접어 넣고 다운로드하며 내뱉을 불만과 짜증을 달랠 커피값도 슬며시 끼워 두었다.


드디어,

아들과 며눌님의 축하 꽃다발 전달을 시작으로 나의 회갑파티(?)가 시작되었다.


다음은 케이크 커팅.


환갑을 맞는 아버지와 이모부를 위해 자식들과 아내의 조카가 특별히 손수 제작한 케이크였다.

이모부부의 버킷리스트 달성을 기원하는 디자인과 응원하는 문구도 또박또박 새겨져 있어 케이크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과 정성이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선물증정식.


회갑선물은 녹음파일로 갈음할 것이라고 미리 공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딸과 아들부부가 선물을 준비를 해 놓은 것이었다.

거금이 들어 있는 아들부부가 준비한 효도통장.


그리고 내 취향을 잘 고려해서 마련한 딸 내외의 외투.


예상치 못한 선물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연신 얼굴 가득히 미소와 웃음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선물이 내게 안겨졌다.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외손녀"


이보다 더 값지고 귀한 선물이 어디 있으랴!!!

평소에 할아버지에게 그리 살갑게 대하지 않았던 외손녀도 그날만큼은 나름대로 내게 최선의 애정표현을 하는 것에 사뭇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외손녀와 다 같이 건배도 하면서 가족들 모두 저녁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마지막으로 노래제목을 적어 둔 봉투 전달식.


갖고 싶었지만 스스로 하기가 쉽지 않아 어렵사리 요청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나와 아내가 평생 동안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노래선물을 자식들이 녹음해서 갑선물로 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삼일 후 사위로부터 녹음파일이 준비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우리 부부의 강제(?) 미션을 수행한 것이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감사와 기대하는 마음이 앞서 녹음파일을 받고 바로 차에 올라 타 음악을 틀었다.

녹음파일이 든 봉투 ~ 외손녀가 직접 붙인 스티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엄선된 곡들이 스피커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영원히 아내와 함께 할 여행의 필수 동반자가 또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매 주말 세종시에서 집을 오가는 두세 시간이 이것으로 인해 천국이 되어 버렸다.


값지고 귀한 것들을 선물해 준 딸과 아들 내외가 더없이 고맙고 앞으로도 내게 이것 이상의 좋은 선물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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