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장 소설

1. 성장표의 철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봄은 언제나 성급했다. 교문 앞 가로수는 아직 잎을 다 펼치지도 못했는데, 바람은 이미 여름을 연습하듯 세차게 불었다. 교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프린터 잉크 냄새와 분필 가루를 한데 섞은 듯, 성적표가 돌아오는 날의 특유한 공기를 만들었다.


중간고사 성적표는 얇은 종이 한 장이면서도, 학생들과 부모님의 얼굴을 여러 겹으로 접어버릴 수 있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도윤은 그 종이가 손에 닿기 전부터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해야 하는지 계산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을지, 무심하며 담담한 무표정으로 받을 지.


그가 성적표를 받는 순간, 숫자들은 ‘예상’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한 번 통과된 상처였다. 예상은 상처를 줄여주는 게 아니라, 상처를 미리 익숙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걸 도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종이를 펴 보는 행위는 새로운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판결문에 도장을 찍는 일에 가까웠다.


신종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았다. 수학교육과를 나와 기간제 교사로 교단에 섰지만,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문상담교사로 임용된 사람—그 배경을 아는 학생들은 그를 ‘말은 정확한데 차갑지 않은 선생’으로 기억했다. 그는 숫자의 절제와 문학의 온도를 함께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학생이 쉽게 꺼내는 변명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면서도, 그 변명 뒤에 숨어 있는 감정까지 함께 보려 했다.


도윤은 성적표를 공책 밑에 밀어 넣었다. 종이를 숨긴다는 건 숫자를 숨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숨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숨기려 할수록 더 크게 울리는 것들이 있었다. ‘노력요함’ 같은 친절한 인쇄체는,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더 차갑게 만든다.


도윤은 마음속에서 오래된 문장을 다시 꺼냈다.
— 원래 나는 이 정도야.

그 문장은 그를 잠깐 살려주고, 오래 죽였다. ‘원래’ 라고 말하는 순간, 바뀔 여지는 스스로 닫히니까. 그리고 닫힌 문 앞에서, 도윤은 늘 같은 방식으로 버텼다.


더 애쓰지 않는 대신, 더 단단한 척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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