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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Feb 17. 2018

[성은 스펙트럼이다] 2. 평창 올림픽에 없는 것

RIP : 1966~2001

IOC, 성별의 요새


성을 가장 엄격하게 구분한 곳은 스포츠계였다.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성 호르몬 전체를 일컫는 안드로겐의 한 부류인 테스토스테론은 근육량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테스토스테론이 근육 합성을 촉진시켜 근육 성장을 돕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을 많이 보유한 남성과 적게 보유한 여성이 동시에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이 불공정 경쟁을 막고자 여성 경기에 남성이 참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여성이 남성 경기에 참가해 얻을 혜택은 적지만, 남성이 여성 경기에 참가해 얻을 혜택은 크기 때문이다. 

1896년에 치뤄진 첫 근대 올림픽인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성은 참가가 금지됐다.


스포츠계는 1966년부터 의무 성별 검사를 도입했다. IOC 산하 단체인 국제육상경기연맹(International Associations of Athletics Federations)는 196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부터 선수들에게 성별 검사를 의무화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공산권 국가들인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과의 메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성을 여성으로 위장해 경기에 내보냈다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은 간단했고, 절차는 참담했다. 선수들은 여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의료진 앞에서 나체로 서야만 했다. 신체 검사라고 쓰고 성기 검사라고 읽었다. 검사를 통과한 선수만 여성 증명서를 받았고, 여성 경기에 출전이 가능했다. 


당시 마리아 파티노가 받은 성별 인증서

출처 : 마리아 파티노


해당 절차가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이하 IOC)는 2년 뒤 멕시코 올림픽 때부터 절차를 바꿨다. 성기 검사에서 구강 세포 검사로 바뀌었다. 의료진은 선수의 성기가 아닌 염색체를 확인했다. 23개의 염색체 중 XX성염색체를 가진 선수만 여성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논란이 사그라들 줄 알았으나, 끝나지 않았다. 인생은 실전이고, 실전엔 수많은 난관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완벽하지 못했다. XY염색체를 가졌지만 안드로겐에 신체가 반응하지 않는 안드로겐불감성증후군(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 이하 AIS) 환자의 경우, XY염색체지만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겉모습은 누가 봐도 전형적인 여성에 가까우며, 생식기 역시 페니스가 아닌 클리토리스지만 염색체는 XY다. 소설 속의 일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진실


1985년 고베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스페인 대표팀으로 참가한 마리아 마르티네즈 파티노는 2년 전인 1983년에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고 당시 성별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여성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고베행 비행기에 증명서를 들고 가지 않았다. 현장에서 성별 검사를 다시 받은 마리아는, 그동안 살아온 삶이 통째로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다. 팀닥터는 마리아에게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마리아는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검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는 법이지만 그녀의 경우는 반대였다. XY염색체를 가졌다는 사실이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기는커녕 저주로 돌아왔다. 그녀는 XY염색체를 가진 AIS환자였다. 남성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염색체가 있지만 몸이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어떠한 세포도 페니스를 만들지 않았고, 근육을 더 합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형적인 여성의 가슴이 있었고, 클리토리스가 있었다. 여성형 신체를 가지고 누군가의 딸과 약혼녀로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온 삶이 거짓이 됐다. 


삶을 통째로 부정당했지만 마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라면, 그녀는 올림픽 정신 그 자체였다. 마리아는 뒤이어 스페인에서 치러진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려 했다. 대표팀은 마리아에게 부상을 핑계로 대회를 기권하라고 했으나 마리아는 외압에 지지 않고 꿋꿋이 경기를 치렀다. 


그녀가 XY염색체를 가졌으며 AIS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녀가 세운 60미터 허들 기록은 지워졌고 메달은 박탈됐다. 그녀가 받을 장학금과 여러 특전은 취소됐으며 사생활은 낱낱이 파헤쳐졌다. 언론은 그녀의 약혼자와 가족 그리고 생애를 현미경으로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끄집어내 완전히 해체했다. 그녀는 IAAF의 성별 검사에 이의를 제기했다. 핀란드 유전학자 알버트 드 라 샤펠르 (Albert de la Chapelle)와 인터섹스 활동가의 도움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그녀는 여성으로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선수로서 꽃을 피워야 할 시기에 본인을 증명해야만 했던 그녀는 예선전에서 탈락했다. IAAF와 IOC는 의무적 성별 검사를 각각 1991년과 1999년에 폐지했다. IOC는 IOC 운영진 (의무분과위원회, 위원장)과 의료진 그리고 각국 대표팀이 상당한 증거를 갖추고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때만 선수에 대한 성별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현재 마리아 파티노는 스페인 비고 대학교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마리아 파티노 



금메달에서 노메달


그간 스포츠 대회에서 성별이 논란이 된 경우는 적지 않다. 1993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4명의 여자 선수가 성별 검사에서 탈락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800m에 참가해 은메달을 딴 인도의 산티 순다라얀은 불과 며칠 뒤 메달을 박탈당해야만 했다. 그녀의 염색체 역시 XY였다. 마리아와 같이 그녀 역시 AIS였다. 2009년에 화려하게 데뷔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 역시 마찬가지다. 베를린에서 열린 2009년 세계육상대회 여자 육상 8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성별 논란이 일었다. 굵직한 목소리와 거뭇한 턱 그리고 그녀의 압도적인 기록 때문이었다. 같은 대회에서 6등을 기록한 이탈리아의 엘리사 쿠스마는 인터뷰에서 “저런 사람은 우리(여성 육상 선수)와 함께 뛰면 안 됩니다. 제게 그녀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입니다”고 말했으며 러시아 육상 선수 마리아 사비노바는 “그녀를 한 번 봐보세요”라며 세메냐의 성별을 의심했다. 캐나다 육상선수 다이앤 커민스 역시 “우리 (여성 육상 선수) 대부분은 남자와 함께 뛴다고 느낄 거예요”라고 말했다.


가장 앞에 있는 선수가 캐스터 세메냐다.

  출처 : CC BY  José Sena Goulão/LUSA


IAAF는 성별 검사에 들어갔으며 세메냐가 여성 경기에 참여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자세한 검사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다. 익명의 취재원이 언론에 그녀의 성별 검사 결과를 유출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성별을 두고 여러 추측이 오갔으나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전무하다. 피에르 바이스 당시 IAAF 사무총장은 “그녀는 여성이다. 하지만 100%는 아닐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메냐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육상 800m에서 은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육상 8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성기와 염색체를 지나고 호르몬에 안착했다. 2011년 이후 IOC와 IAAF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성별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남성 호르몬이 운동능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특정치보다 높은 남성 호르몬을 가진 선수는 여성 경기에 참가할 수 없게끔 규칙을 세웠다. 그 기준은 10 나노몰이었다. 10 나노몰 이상 테스토스테론을 가진 선수는 여성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IOC를 흔든 18살


하지만 이 규칙도 무효가 됐다. 18살의 여성 육상 선수의 싸움이 이끌어냈다. 인도 출신 여성 육상 선수 두티 찬드(Dutee Chand)는 2012년 인도 청소년 육상 대회, 2013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세계청소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높은 기록을 세우며 인도 육상의 유망주가 됐다. 혜성 같이 데뷔한 선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IAAF가 2014년 영연방대회 직전에 두티 찬드의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다며 출전을 금지했고 인도 대표팀이 그녀를 명단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내 성별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갖고 있던 모든 명예를 잃었다. 내 친구들은 “대체 무슨 일이야”라며 묻기 시작했고 같이 훈련하던 동료들은 나를 떠났다”고 말했다. 그녀의 코치는 그녀에게 호르몬 억제 수술을 권유했다.


두티 찬드는 IAAF의 규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2015년 6월, 스포츠 중재 법원(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 이하 CAS)은 해당 규정이 여성 선수에게만 적용되기에 차별적이며 테스토스테론이 유의미하게 운동선수의 능력을 높인다고 증명하지 못하기에 해당 규칙은 부당하다 판결했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경기력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학계에서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10 나노몰 규정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CAS는 IAAF에게 2017년 6월까지 10 나노몰 규정이 유의미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IAAF는 남성 호르몬이 높은 여성 운동 선수가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1.8~4.5%가량 운동 능력 우위를 가진다는 연구도 발표했으나 이후 CAS와 IAAF 사이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IOC는 평창 올림픽부터 호르몬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인도의 육상 유망주였던 두티 찬드

출처 : CC BY 22회 아시안 육상선수권 대회




글 1편 : [성은 스펙트럼이다] 1. 믿음, 흔들리다


이 글은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3기 팀 PRISM의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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