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주민등록법, 가족관계 등록법
인터섹스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제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아직까지 남성과 여성을 명확하게 나누는 기준이 없다는 사실이다. IOC는 성기, 염색체, 호르몬 등으로 기준을 바꾸었다. 성을 판별하기 위해서였다. 그 노력은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에 속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을 이분법 안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만을 찾아냈다. 사실이 아니다. 진실이다. 이분법 세계가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출처 : CC BY Public Domain Pictures
물론, 통계적으로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이 다수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0과 1로만 보고자 하는 세계에서 1과 2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자연수를 배우고 소수를 배운다. 소수를 배우고 무리수와 유리수를 배우듯이 우리에겐 새로운 안경이 있어야만 한다. 새로운 진실을 찾기 위해선 새로운 안경을 찾아야 한다. 0과 1 사이에 있는 무수히 많은 숫자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여성과 남성으로 나눈 지금의 이분법이 ‘잘 굴러가고 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전형적인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밝혀졌듯이, 모든 사람은 적당한 수준의 남성과 적당한 수준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개개인이 섞여있는 마당에 하나의 이분법만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실수에 가깝다. 사실 70억 인구를 단순히 변량 값이 2개밖에 되지 않는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사실 자체가 특이하다. 결국 성은 이분법이 아닌 스펙트럼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분류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류가 사실 틀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편하기 때문에 틀린 기준을 붙잡거나 다소 힘들고 귀찮지만 새롭게 기준을 정립할지 고민해야 한다. 전자는 편하지만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후자는 불편하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다.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스펙트럼적 세계관으로 넓혀야만 한다. 귀찮고 불편하지만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는 첫걸음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다소 뜬금없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2013년 김한길 의원 등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등으로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문장부터 성별을 이야기한다. 인터섹스는 성별 이분법적 세계에서 태어날 때부터 차별받을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틀 안에 들어가게끔 하기 때문이다. 성 할당 수술부터 취업 시에 적어야 하는 성별란까지 그들에겐 차별이다. 그들이 겪는 차별을 당연한 것이 아닌 문제시하는 법안이 필요하다. 그게 차별금지법이다.
또 하나는 주민등록법 개정이다. 현재의 주민등록증은 생년월일과 성별 그리고 출생지 정보를 담는다. 과도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병원에서 불상이라고 적은 성별란이 동사무소에선 남성 내지 여성으로 기입되어야만 한다. 주민등록증 때문이다. 인터섹스와 트랜스젠더에게만 문제시되지 않는다. 실제로 성별 자체가 너무나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성별을 담지 않는 개인 고유 번호를 넣자는 주장은 그동안 많이 제기되어 왔다. 당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의 류민희 변호사는 주민등록번호에 성별을 표시하는 현행법이 인터섹스에 대한 차별이자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대법원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을 수정해야만 한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정정할 때 참고하는 성전환자의 성별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인터섹스는 주민등록증에 기록된 성별을 바꿀 수 없다. 태어날 때 성 할당 수술을 받은 사람이 추후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 성별을 바꿀 수 있으나 호르몬 등으로 인해 신체적 특징이 바뀐 사람은 성별을 바꿀 수 없다. 남성형 성기를 갖고 있으나 남성호르몬에 반응하지 않는 AIS 같은 경우, 남성으로 등록했으면 다시 여성으로 바꿀 수 없다. 성기를 제외하면 여성인데 주민등록증은 1인 셈이다. 본인의 정체성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을 때, 개인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지침을 수정해야만 한다.
성기부터 염색체 그리고 호르몬까지 지난한 여정을 함께 했다. 이 여정의 출발은 성별 이분법이었으나 그 끝은 성은 스펙트럼이라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 진실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그저 스크롤을 내리고 검색했을 뿐이지만 인터섹스는 수많은 차별을 겪어야만 했다. 1도 아니고 2도 아니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들은 존재를 부정당하고 의도하지 않은 수술을 당해야만 했다. 1과 2를 제대로 판명하지도 못하는 기준을 이제는 놓아주자. 불온하고 광대하고 엄격한 이분법 세계를 넘어 불온하지만 진실된 스펙트럼의 세계로 넘어가자.
글 1편 : [성은 스펙트럼이다] 1. 믿음, 흔들리다
글 2편 : [성은 스펙트럼이다] 2. 평창 올림픽에 없는 것
글 3편 : [성은 스펙트럼이다] 3. 성별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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