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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가원 Aug 04. 2024

세상의 모든 소문은 억울함과 함께

누군가의 구구 절절한 억울함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잘 돌아갔다.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고 혼란했다.    

 

시미나는 익숙한 듯 또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일 처리를 위해 문의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듯 다른 반응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밤에 해결할 수 없는 문의를 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업무 처리가 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고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정말로 띄엄띄엄 오는 행운의 날인 듯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퍽'하고 시미나의 의자를 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이 상담소의 최고 문제아 중의 하나인 나프니아였다.     


'또, 너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시미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과 한마디 없이 신경질적인 발걸음으로 지나갔다.     


시미나는 ‘재 오늘 왜 저래 진짜!’라는 생각이 들고 어이가 없었지만 상대하기를 포기했다.     


나프니아는 무서운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할만한 전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쁠 때면 걸을 때도 쿵쿵거리며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고, 벨 소리를 최대한도로 키워서 전화가 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옆자리에서 어떤 통화를 하든지 상관없이 욕하고 큰소리 내고(물론 본인의 상담자에게는 들리지 않게 한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을 닫아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춥다고 욕설을 내뱉으며 꽝꽝 닫았으며 아무튼 할 수 있는 모든 행패는 혼자서 다 부렸다.     


시미나는 대화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프니아의 행패를 처음 목격한 이후 그녀를 가능한 한 피해 다녔다. 가끔 근처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이기적으로 구는 그녀의 성질머리에 여러 차례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외면을 선택했으나 모런에게는 처음 겪는 색다른 경험이었는지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져 있었다.      


모런은 화성 원주민과 IC342 은하군 소속 로스볼라그 행성 원주민 혼혈로 덩치가 크고 근육질에 가까운 몸에, 머리도 좀 크고 피부도 두꺼운 편이었다. 머리 크기가 크면 뇌 용량이 커서 똑똑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속설과는 전혀 다르게 단순한 편이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로스볼라그 출신 팀원이 매우 섬세하고 엄청난 천재였던지라, 그쪽 종족 출신들이면 똑똑하고 배려심 넘치는 타입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던 시미나의 생각은 모런을 만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종족 차별적 생각은 그만둬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미디어가 만든 종별 편견은 쉽게 바꾸기 힘들었다. 모런은 두 종족 혼혈답게, 파랑과 녹색이 오묘하게 섞인 매력적인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슬프게도 생김새는 고전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오크를 좀 닮았다. 그런 얼굴로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시미나는 정말이지 심장이 튀어나오게 놀라서 주춤거리며 물었다.     


" 왜…. 왜 그래요?"     


" 나프니아씨 진짜 왜 저래요? 제가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 모런은 덩치와는 다르게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톤을 가졌는데, 정말이지 몸과 매치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공격적이지 않은 모런의 목소리에 시미나의 놀란 마음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 나프니아씨 원래 저런 성격이지 않았어요? " 이번에도 모런은 딱히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모런의 하소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시미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전화가 오기를 바랐지만, 이번에도 고객들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모런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들으면서도, ‘모런은 그럴만해도 나한테는 도대체 왜?’라고 옆자리에 앉아있다가 뜬금없이 나프니아와 모런 둘에게 연합 괴롭힘을 당한 시미나는 생각했다. 모런의 괴롭힘은 그녀의 휴식 시간 전까지 주기적으로 계속되었다. '역시, 고객이 괴롭히지 않으니 다른 쪽이 괴롭히는구나!' 완벽한 날은 없는 법이라고 시미나는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시미나는 휴게실에서 맛있는 간식이나 먹으면서 기분 전환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강렬하게 느꼈다. 평소에는 달아서 잘 먹지도 않는 다크 초콜릿에 흠뻑 적셔져 연유 사탕 카라멜 필링으로 가득찬 ‘알파호레스 쿠키’나 엄청나게 바삭한 껍질을 한입 깨어물면 크리미한 치즈가 가득 차 있고 설탕에 절인 귤 청크가 오독오독 씹혀서 누군가를 바사삭 조져 버리고 싶을 때 특히 좋은 ‘카놀리’, 탱글탱글한 크렘 프레슈가 잔뜩 얹어져 있어서 끈적끈적하고 기분좋게 달달한 사과가 끝내주는 ‘타르트 타탱’등의 여러 가지 간식을 잔뜩 골라서 휴게실 창가, 야경이 별처럼 반짝이는 자리에 앉는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미나씨! 요새 진짜 얼굴 보기 힘들다! 잘 지냈어? " 그녀는 시미나와 더불어 16920 상담소의 몇 안 되는 아-유 지구 출신 선한인 이었다.     


" 한인씨!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갑네요! 일은 좀 적응이 됐어요?"     


한인은 원래 시미나와 같은 야간시간 근무자였다가 낮과 밤의 중간 지원팀으로 옮겨서 최근에는 얼굴 마주칠 일이 잘 없었는데, 입이 무겁고 합리적인 성격이라 시미나가 이 센터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또한,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시미나의 동향 사람이라 자신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돼서 대화할 때 마음이 편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시미나의 성이 '시'이고 이름이 미나 인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시미나는 그녀 자신의 이름조차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제대로 설명하기 싫어하는 극도의 자기방어 상태였다.      


“ 미나씨 뭔 일 있어? 뭔 디저트를 이렇게 잔뜩 샀어? ”     


“ 우리 센터 최고의 복지는 전 지구 디저트를 다 파는 거죠. 디저트는 지구 식이 최고잖아요! ”      


우주 상담소 18층은 한 층 전체가 음식점, 디저트 샵, 카페 등이 스트리트 몰 형태로 늘어져 있었는데 수많은 직원이 근무하는 곳답게 크고 작은 상점들이 수십 개씩 구역을 나뉘어서 모여있었다. 우주 상담센터 직원이라면 24시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밤이 되면 여섯 개의 구역 중에 다른 구역은 거의 다 문을 닫고 ‘카시오페이아 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한 곳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곳은 밤이 되면 통유리 천장으로 이루어진 창문 밖으로 별처럼 반짝이는 야경이 아름다운 명소로 유명했는데, 천정에는 주기적으로 바뀌는 홀로그램으로 인해 우주 한복판에 홀로 유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라 시미나가 매우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녀가 우주 상담소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잠깐의 근황 이야기가 오가고 난 뒤 한인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 미나씨, 요새 야간시간 난리라며? ”     


“ 네? 전 잘…. 무슨 일 있대요? ”     


“ 미나씨, 주변 사람들한테 관심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최고로 화젯거리인 이 소문을 몰랐어? ” 한인은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모런이랑, 미리드랑 사귄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     


“ 아…. 둘이 사귄대요? 뭐, 여기도 사람 사는 덴데 사귈 수도 있죠. ” 짐작하고 있던 시미나는 흥미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 둘이 센터 밖에서 손잡고 뽀뽀하고 난리였대, 며칠 전에 미들 팀, 야간 팀, 심야 팀 사람들한테 골고루 다 들키고, 어제는…, 그랬대.” 자신에 대한 일도 관심이 없는 시미나가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것도 회사 내에서도 아니고 밖에서 연애가 좀 들키면 어때라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면서 대충 맞장구를 치고 있는데     


“ 미리드씨 그렇게 사내 연애는 별로라고 하더니, 도대체 둘이 왜 탕비실 근처 칸막이에서 뽀뽀하는 걸 걸려서는, 사람들 다 처음에는 모런만 확인되고 미리드는 뒷모습만 보여서 그 여자가 미나씨다, 아니다 라는 논란도 있었잖아, 둘이 잘 지내니까. ”     


“ 아 네 " 라고 관성적으로 고개를 끄떡이다가 시미나는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 네? 네에에에에???, 누구요? 저요? ”     


“ 그래 미나 씨! 몰랐나 보네? 자기 이야기도 나왔는데 진짜 관심 없었구나? ”     


“ 아니 이게 무슨….”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시미나를 앞에 두고 한인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나프니아가 미나씨 안 괴롭혔어? 대충 들어보니까 모런이 양다리 비슷하게 시도하다가 미리드한테 넘어가서 엄청나게 열받았다고 하던데; 매우 정확한 정보다. 한인의 귀에 이 소문이 들어갔을 정도면 센터 전 직원이 이 이야기를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     


“ 상대가 누구인지 가만 안 둔다고 찾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라고. 센터 밖에서 걸리기 전까지, 여러 사람이 모런 연애 상대가 미나씨인 것 같다고 수군댔거든. 난 사실 모런이 미나 씨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미리드는 의외였어.” 인한의 말이 길어질수록 시미나의 입은 점점 벌어졌으며 표정은 관리가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시미나는 나프니아가 정신병자 같이 그녀에게 딴지를 걸던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차인 여자가 된 나프니아가 돌아버린 것이었다. ‘성격 나쁜 나프니아치고는 시비 걸던 방법은 부드러운 편이었네’라고 욕 나오는 중에서도 시미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또 다른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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