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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가원 Aug 04. 2024

안전한 비밀

늘 그렇지만 시미나의 상황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야경을 배경으로 낮만큼 반짝거리는 아-유 지구의 밤은 활기가 넘쳤고, 18층 휴게실에서 보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남에 대한 소문 이야기였다. 이 거대한 센터에서 절대 만나지 않을 팀들이 수도 없이 넘쳐나는데 왜 하필 이런 일이 시미나의 팀에서 벌어졌는지 한탄이 나올 따름이었다.     


“ 그런데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미나씨 한테 모런이 고백 안 했어? ” 한인은 시미나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 미나씨는 기분 나쁠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이번 소문 들었을 때 혹시나 하기는 했거든~. 물론 미나씨가 훨씬 아깝기도 하고, 내가 미나씨 성격 아니까 설마 미나씨는 아닐 텐데 하기는 했는데....” 한인은 시미나가 이 주제를 딱히 불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수다가 길어지고 있었고, 그녀의 예민한 촉에 시미나는 소름이 돋았다. 표정 관리를 거의 포기한 시미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왜 그런 생각을…. 어딜 봐서 모런씨가 저한테 고백할 것처럼 보여요? ” 시미나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대답하자, 한인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 그걸 어떻게 몰라? 한동안 모런이 미나씨 뒤만 졸졸 쫓아다녔잖아. 당사자만 몰랐을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는걸. 미나씨가 넘어갈 거 같지 않다, 남녀 사이는 또 모르지 않냐, 둘이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는 의견들도 있었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 많이 했어. 여기만큼 여러 소문이 무성한 데다 없지! ” 전혀 짐작도 못 한 이야기에 당황한 시미나는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 저는 전혀 몰랐는데요. 그리고 그건 모런씨가 초반에 적응을 힘들어해서 제가 업무 요령을 알려주고 도와주느라….“ 시미나는 자기도 모르게 한 대 때려도 부족한 모런의 변명을 해주며 이야기했다. 시미나는 자기의 것도 아닌 남의 연애 전쟁에 티끌만큼도 발을 들이기 싫었다. 그게 어설픈 삼각관계면 더더욱 그랬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그녀가 이 난장판 삼각 관계에 이름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화가 날 지경이었다.   

  

" 알지, 미나씨 알아듣기 쉽게 설명 잘해주고 물어보면 잘 알려 주는거 , 나도 도움 많이 받았는데 왜 모를까. 미나씨 행동이 엄청 담백했던것도 잘알고. 솔직히 모런이랑 잘 해볼 생각이 있었으면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지는 않았을껄~, 근데 미나씨랑 별개로 모런은 다른 느낌이 있었다니까. 모런이랑 미나씨랑 입사일 얼마나 차이 난다고! 한 달이나 되려나? ”     


시미나는 별다른 존재감 없이 지내고자 하는 그녀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관리자들의 주의력이 그녀가 앉은 쪽으로 집중되는 것이 싫어서 근처에 앉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도와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처리를 도와주었다.      


또한, 무기력증이라 사람들에게 소문을 옮기고 궁금해할 여력 자체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를 모르는 다른 직원들은 시미나가 입이 무겁고 진중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주변인이라고 믿고 있는 생각과는 다르게, 센터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시간대의 동료들이 그녀에게 여러 소식을 전해주고는 했다.      

선한인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의 가설을 풀어놓느라 시미나의 표정이 기이하게 씰룩대는 것은 알지 못했다. ' 그러고 보면 모런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고백을 한 거지? 진짜 여자라면 아무라도 괜찮았던 걸까? ' 시미나의 의아함이 답을 찾지 못해 길을 잃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인의 의심은 타당했으며 올바른 방향이었다. 단번에 차단당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모런은 시미나에게 고백했었다. 시미나는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담소에서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시미나와 모런 둘만 아는 비밀로 남았지만 말이다.      


가끔은 모런의 행동거지에 한 번씩 짜증이 나서 시미나의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었지만, 정말로 아무 감정도 없는 모런과 함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에 고백은 안전한 비밀로 남았다. 미리드와 실제로 사귀게 된 모런이 미치지 않고서 이 고백에 대해 입을 놀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문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처음에는 산들바람같이 존재감 없이 시작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많아질수록 태풍처럼 그 존재를 키워나가기 마련인 것을 시미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모런은 이런 시미나의 관심 없음을 쿨함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시미나는 이 상담센터에서 일을 하기 전까지 남자들이 대다수인 업종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들과 잘 지냈고 나쁘게 말한다면 잘 다루는 편이었다. 윽박지르기, 달래기, 칭찬하기, 해결해 주기 등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다 사용해 어떻게든 뺀질거리는 자들의 일을 시켜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데, 그러다 보니 남직원들은 시미나와 대화하는 것을 편하게 느꼈다.      


시미나는 정보 전달을 할 때 매우 직접적으로 알려주었는데, 모르면 절대 안 되는 업무에 대해서 귀띔해 줄 때도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 '모를 수도 있죠'로 배려해 줘서 '기억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물어봐야지'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않도록 '이거 모르면 일 안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리자에게 물어보면 엄청나게 깨질 것이다.'라고 족집게처럼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성들의 언어 중 하나인, 돌려서 말하기를 썩 잘 시전하지 못했으나, 칭찬하기, 이야기 잘 들어주기 등의 사회적인 언어를 원만하게 구사하고 일머리가 있는 편이라, 일반적으로는 관리자를 포함해서 남, 여 모두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 했다.      


시미나는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편이었는데, 자기가 여성스럽고 소심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시미나가 조용하고 별로 대화를 즐기지 않는 것은 인정했지만, 한 번씩 던지는 대화 속에서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보다 자기 주관이 강하고 아는 것이 많으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당당한 타입인 것을 쉽게 깨달았다. 삶의 흔적은 우울증에 빠져있는 무기력증 환자라도 쉽게 가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모런이 시미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단 모런과 시미나와의 대화는 별 일없이 늘 매끄러운 편이었다. 대부분은 말 많은 모런이 떠들고 시미나가 대충 들으며 긍정 해주는 그림이긴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고는 거의 해보지도 않고 일 이야기만 줄곧 하다가 뜬금없이 받은 모런의 고백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시미나를 짜증 나게 했었다. 그녀의 마음의 소리는 모런의 고백에 대해     


‘ 장난쳐? 내가 만만해? 나에 대해 뭘 아는 게 있다고 고백을 해! ’ 라고 소리쳤지만, 시미나는 불편해지고 싶지 않은 동료 관계를 고려해 부드럽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 저, 남자친구 있어요. "라고


사실 시미나에게 모런은 관심 밖의 존재라 거절하고도 별생각 없이 고백하기 이전과 똑같이 지내긴 했지만, 자기가 이전에 고백한 여자한테 썸타기를 시도하다가 문제 생긴 썸녀에 대한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것은 개념의 문제였다. 모런은 영화 ‘안드로메다 시대’를 좋아하는 것만큼 개념도 안드로메다로 보낸 듯했다. 세상에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상담센터에서 그녀 자신의 사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 첫 동료가 그녀의 관심밖에 존재하는 모런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했다.      


시미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었는데, 모런의 고백에는 다른 핑계를 대지 않고 진실을 말한 이유가 뭐였을까 생각했다. 얼결에 휩쓸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도 알 수없던 그 이유에 대해 깨달은 것 같았다.      


모런에게 남자 친구의 존재에 대해 쉽게 밝힌 것은 그가 호기심으로라도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해 질문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스쳐 지나갈 사람은 한여름의 열기를 잠시라도 식혀주는 그늘 아래의 바람보다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과거 흔적 속에도 시미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시미나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궁금해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같이 보냄으로써 그녀 삶의 한 부분에 의미를 줄 수도 있는 인간관계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 할 수 있는 한 거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벽을 잘 세워둔 뒤 그녀도 그 벽을 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넘지 못하도록 방어하고 있었다.      


과거의 마음 약한 시미나와 텅 비어 버려 그 여린 마음조차 남아있지 않은 지금의 그녀는 같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어제의 그녀조차도 오늘의 그녀와는 다른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선 긋기를 하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허무할 지경이었다. 그저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의미 있는 대로, 의미 없는 대로. 여전히 소중한 존재들은 때로는 화도 내고, 같이 기뻐도 슬퍼도 해주며 그녀 옆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었다….     


“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예전에 이런 건 참 잘 맞췄는데”라는 한인의 이야기에 시미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 시미나가 대답하자, 한인은 거의 끝나가던 수다를 다시 시작할 듯 맹렬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 미나 씨 남자친구 있었어? 왜 말 안 했어? 뭐 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만난 거야? 혹시 그 반지 커플링이야? ” 

폭풍처럼 쏟아지는 한인의 질문에 시미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편하게 느껴지던 개인적인 질문이 다르게 다가왔다. 그랬다, 서로에게 중요한 관계로 남을 것인지는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관계란 상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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