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벌어지고, 때 이른 장마에 지친 사람들의 짜증이 늘어만 가는 계절이었다. 며칠 동안이나 축축하고 후덥지근해서 불쾌지수만 높아져 가던 날씨가 오랜만에 존재감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태양에 그 영향력이 밀려나 화창하고 보송보송하며 강렬한 열기를 느끼게 하는 진짜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햇빛이 존재감을 발휘할 때는 그늘에 늘어져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이나 까먹는 것이 시미나의 여름 일상이었지만 오늘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위해 외출을 준비했다.
시미나는 데이트라도 하러 가는 사람인 양 오랜만에 여러 옷을 꺼내서 이리저리 대어도 보고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던 추리닝도 멀리 던져버리고 평소에는 귀찮다고 입지도 않는 치마도 꺼내 입었다. 옷차림의 변화뿐만 아니라 화장 또한 열혈 직장인이었던 시절의 그녀처럼 풀 메이크업을 한 터라 근 일 년 이내의 시미나라는 사람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지나치더라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엄청난 공을 들여 준비를 한 사람인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발걸음은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집 밖을 나서는 걸음이 꿈지럭대고 있었다.
시미나의 목적지는 달 지구 최고의 번화가인 ‘고요의 바다’였는데 이곳은 인류가 최초로 우주 탐사를 시작한 역사적인 장소였으며, 우리 은하계 최초의 우주전쟁으로 알려진 대전쟁 종전 선언을 한 곳으로 평화의 광장이 있는 곳이었다. 최초탐사 당시의 달은 황무지였다고 하는데 지금의 달은, 지구의 가장 인기 있는 휴양 위성의 하나로 행성 곳곳에 펼쳐져 있는 오아시스들과 셀 수 없는 황무지 탐사 관광상품, 부유 섬 형태의 수많은 인공 리조트 섬 들, 그 사이의 인공 스타더스트를 오가는 곤돌라 등으로 인해 24시간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는 아름답고 환상적이기로 유명한 환락의 행성이다. 고요의 바다라는 이름과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은 변화였다.
시미나는 그중에서도 평화의 광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는 ‘말라퍼트 리조트’로 향하는 중이었다. 달 지구로 가기 위해서는 워프 포탈을 이용하거나 하이퍼 스페이스 점프 게이트를 이용해야 했는데, 시미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워프 포탈은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로 엄청난 인파를 자랑하는 곳이었고 그 이용료도 점프 게이트 요금보다 2배 정도 비싼 터라 평상시의 그녀라면 근처에도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하이퍼 스페이스 점프 게이트 이용 후에 오는 멀미 현상이 싫었던 시미나는 오랜만에 햇빛을 받아서 반짝거리는 가로수 아래를 산책하며 워프 포탈 이용을 위해 느릿느릿 길을 나섰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 분명한 미소 띤 얼굴과는 다르게 느린 발걸음은 시미나가 만날 상대가 누군지 궁금증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방문한 평화의 광장은 몇 년 전과는 또 다르게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어서 달 지구에 처음 놀러 온 촌뜨기처럼 워프 스테이션 출구를 찾느라 시미나는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방문한 번화가의 반짝임을 매우 즐기는 중이었다. 일 년 반 정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사이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매우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 언제 여기에 새로 출구가 생겼지? 저기 내가 좋아하던 우주 땅콩 우유 가게가 있던 곳인데 없어졌나? 저 가게는 장사가 정말 잘됐나보다, 2배는 커진 거 같은데. 저쪽은 구시가지였는데 언제 이렇게 새로운 건물이 많이 생겼지! ’ 같은 생각을 하며 소소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구경하며 걷느라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된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시미나가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않던 시간에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느라 세상을 또 변화시키고 있었다. 오랜만의 바깥나들이는 시미나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너무 많은 사람으로 인해 혼잡하면서도 활력이 느껴져 그녀는 인파에 치이느라 불편하면서도 매우 즐거웠다. 멈추어 서 있을 때는 세상이 나만 혼자 두고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은 기분에 뒤처지는 것 같아 매우 괴로웠었는데 사람들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자, 그렇게까지 정신없고 혼란한 것 같지도 않았다. 속도는 참으로 상대적인 것이고 생각도 매우 편협하다는 생각에 시미나는 웃음이 나왔다.
개선의 거리를 지나 약속 장소인 빌포타소의 문 근처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 ‘ 이 상태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나 있나 ’라는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서 누가 손을 크게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 팀장님, 시미나 팀장님~~ 여기~~~. ”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 엘리슨 씨! 잘 지냈어? 엄청 많이 타서 못 알아보겠는데? ” 오랜만에 보는 옛 동료였다.
“ 팀장님은 하나도 안 바뀌었네요. 옛날보다 더 예뻐진 거 같은데 얼굴 좋아 보여요~ ” 이 소리를 듣고자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열심히 꾸민 시미나였지만 막상 마주한 옛 동료의 적극적인 칭찬에 쑥스러워졌다.
엘리슨은 카시오페이아 행성 출신 외뿔 족으로 키가 작고 몸이 아담했으며 붉은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엄청 귀여워 보이는 외모처럼 상냥하고 다정한 성격에 일도 잘하고 열심히 하는지라 시미나가 매우 좋아하는 동료였었다. 그녀는 시미나가 과거의 일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선임 팀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엘리슨은 예전보다 피부가 더 붉어져 있었는데 여름과 매우 잘 어울리는 건강미를 뽐내고 있었다.
“ 어디 멀리 가 있었어? ”
“ 안드로메다은하에 새로 형성되는 태양계가 발견돼서 조사차 다녀왔어요. 공장설립이 가능한지 아닌지도 타진하고 상태 조사도 하기를 원해서요. 너무 멀고 너무 더워서 어찌나 우리 은하계로 돌아오고 싶든지 파견 인원 교체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니까요~.”
시미나는 좋은 일로 옛 직종을 떠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엘리슨을 만나게 되면 서먹할까, 어색할까, 하며 고민했었는데 그녀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간은 상처도 고생도 괴로움도, 모든 희로애락을 희석해 미화하는데 탁월했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 옛 기억을 더듬으며 당시에는 고통이었던 추억에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시미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를 만나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로워질 줄 알았던 옛 기억을 상기하는 것이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고 예전의 인연과 나누는 과거 이야기는 꽤 즐겁기도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