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팩의 관찰일지
- 좀 이상한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
훌팩은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들어오고를 여러 번 반복하기는 했지만 벌써 이 우주 상담소에 근무를 시작한 지 3년이 넘는 베테랑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오래 근무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새 책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경험을 해볼 생각으로 가볍게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모티브로 생성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 오랜만에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훌팩의 책들은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품이 많기는 했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는 매우 박한 편이었다.. 재미는 있지만 깊이는 없다는가, 대중의 인기에 편승해 캐릭터들이 자가복제를 한다든가 하는 신랄한 비판이 많았는데, 새 작품이 그 유리 벽을 깨부수었다는 극찬을 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책 발간 이후 훌팩의 책이 평론가들의 입맛에도 맞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편집자가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조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새로운 작품 집필에 들어간 후 혼자 작업실에서 창조한 ‘주인공들의 성격적 매력이 이전 작품보다 좀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사정을 모르는 편집자의 순수한 논평으로 충격을 받은 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다시 우주 상담소에 출근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상담소에 근무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실제로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번의 반복된 경험으로 최근에는 상담소 일을 그만두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꾸준히 일을 하며 투잡을 즐기며 자료조사 중이었다.
훌팩은 아-유 지구와는 정반대에 있는 북아메리카지역으로 알려진 관광지구 출신으로 그 지역은 아-유 지구와는 다르게 지구인들에게 인기 많은 휴양지가 대거 몰려있는 지역이다. 지역 특성상 날씨가 덥고 수많은 섬으로 쪼개져 있는 구역이 많아서 사람들의 성향 자체가 느긋하고 화가 별로 없는 거주민들이 대다수라 정신적으로 여유가 많았으므로 무언가를 처리할 때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재촉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이었다. 물론 훌팩도 관광지구 출신답게 성향이 비슷했다.
그곳은 해가 지면 가족 및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라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허브 대륙인 이곳 문화가 너무 신기하고도 빠른 생활 속도에 정신이 혼란했지만, 거주 만족도와는 별개로 훌팩의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데는 최고의 장소였다.
그녀가 집과는 대륙 정 반대에 있는 아-유 지구를 방문한 것은 몇 달째 진도를 나가지 않는 글 쓰기에 너무 답답하고 신작을 재촉하는 편집자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작업실에서 탈출해 시시포스 행성 휴양지로 가기 위한 우주선 탑승을 위해 우주비행장 이용을 위해서였다. 물론 관광지구에서도 타 행성으로 가는 비행선이 있기는 했지만, 비행 편수와 노선이 너무 적었으므로 급하게 도망치는 훌팩의 계획에는 맞지 않았다.
훌팩이 아-유 지구에 도착했을 때 하필이면 여름휴가 시즌이 갓 시작해 우주 비행권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시기라 그녀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고 호텔에 갇혀서 하염없이 취소 티켓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개인적인 일 처리 들과 서류 등의 발급을 에이전시에서 대행해 행정 관련 서류발급에 관한 지식이 거의 삭제되었던 상태였는데 하필이면 도착과 동시에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여행을 위해서는 여권 재발급, 여행증명서, 거주지 증명 등의 다양한 서류발급이 필요한 상태였는데 이 처리는 대리인 증명이 되지 않는 호텔 컨시어지 통해서는 진행이 안 되는 상태라 그녀는 오랜만에 호텔 근처에 있는 우주 상담소 지소 방문 등의 업무 처리를 하느라 발 빠르게 돌아다녀야 했다. 또한 이때 경험을 통해서 보통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다는 자신이,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서류작성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그 무지함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였다, 방문한 우주 상담소 지소에서 본 전화 상담센터 인원 모집 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훌팩은 현재 이 우주 상담센터에서 파트타임으로 잘 근무 중이었다.
신입사원들이야 늘 새로 입사했다가 교육을 마치기도 전에 탈주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 곳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하도 여러 번 구경하다가 보니 이제는, 누가 좀 오래 가겠군, 저 사람은 글렀다고 하는 훌팩의 생각도 대부분은 잘 들어맞았다. 새로 들어온 이 사람도 처음에는 다른 거의 대다수의 신입사원이 그러하든 새로 산 유리컵에서 떼고 난 스티커 자국보다도 그 흔적이 희미한 상태였다.
이 직원이 훌팩의 눈에 띈 것은 별것 아닌 일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현장에 투입된 수습 직원들은 실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기존 직원들이 일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거나 처음 전화를 받을 때 몇 번 정도는 기존 직원이 옆에서 지켜봐 주는 과정이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이 신입은 외견상으로는 며칠 지나지 않으면 뛰쳐나가겠다고 하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도 좀 이상했다.
첫인상은 어디 사고 치고 도망 다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꽁꽁 싸매고 다녀서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몇 번은 첫 전화 이후에 수습 직원 특유의 망설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놀랐다. 또한, 하고 다니는 행색만으로는 은둔형 외톨이처럼 하고 다니면서 목소리에는 리더들 특유의 힘이 있었다. 훌팩은 거취를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언제 탈주하냐는 궁금증에 지켜보고 있자니 의외로 모르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쉽게 물어보면서 며칠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금방 적응했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일하는 일정이 맞지 않아 근 한 달 정도 만에 마주한 그때의 신입은 상담센터의 일이 좀 익숙해져서 낯가림을 벗어났는지 얼굴까지 감싸고 다니던 마스크는 벗은 상태였는데 옷차림과 목소리가 아니면 거의 알아보지도 못할 상태였다. 눈만 내놓고 다닐 때는 좀 연륜이 있어 보이는 차분하고 이지적인 목소리로, 나이대와 사연을 짐작만 했는데, 실제 얼굴은 생각했던 연령대보다는 한참 어려 보였고 조막만 한 얼굴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목구비는 화장기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봐도 귀여웠다. 굉장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외견이었다. 몸도 아담한 크기라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훌팩의 기준에서 보면 외모 낭비 상태였다. 아까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전에 상담센터 근무를 한 사람 특유의 톤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쪽 일은 처음임에 틀림이 없었는데, 프로그램 다루는 것도 금세 익숙해졌고, 중계기 조작이라던가 하는 기계조작도 처음 몇 번 헤맨 이후에는 알아서 척척 해냈다. 기계조작이 헷갈려서 변경이 필요할 때마다 몇 달을 관리자들을 호출한 훌팩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두 번 똑같은 지적을 당하면 큰일이 나는 강박증 환자처럼 질문에 대한 답변을 빽빽하게 메모해 같은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었다. 주변의 신입직원들이 조금만 변형된 질문을 받으면 어미 닭을 쫓아다니는 병아리처럼 관리자들을 불러대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 저건 도대체 뭐 하다가 온 인간이지?’ 시미나라고 불리는 신입직원에 대한 훌팩의 호기심이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