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다르”도 이해하기 쉬운 아-유 지역 신고 안내서-Aoce No. 39260>
이 안내서는 제목부터 글러 먹었다고 시미나는 생각했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제작된 안내서는 이해하기 쉬운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39260이라는 어마어마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해하기 쉬운 과, 39260번의 괴리는 너무 큰 것이 아닌가? 40,000번이 넘지 않으면 쉽다고 생각하는 미친놈인가? 오운다르는 또 도대체 누구야 라는 비틀어진 생각을 하면서 책처럼 생긴 이 아이템을 뒤적거리는 중에, 안내서 위로 슬그머니 올라오는, 파스텔색의 아이싱이 듬뿍 올라가 보기만 해도 행복해 보이는 쿠키에 고개를 들었다.
“ 시미나 씨 오랜만! 이 안내서 발간한 사람 너무 어이없지 않아? ”
“ 훌팩씨였구나, 난 또 누구라고 ” 시미나는 며칠 만에 마주한 동료가 나눠주는 쿠키 선물에 반색하며 간식으로 먹으려던 당근은 가방에 던져버렸다.
“ 휴가 갔다 왔어요? 한동안 안 보이던데? 뭐 좀 어이없긴 하죠. 이해하기 쉬운데 삼만 구천 번대 리스트라니. 정보 찾다가 지칠 거 같네요. ”
“ 그것도 그런데, 나 좀 잘났다고 자랑하듯이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써놓았잖아. 오운다르가 우주전쟁 이전 시대 이 근처 지역 토착민들의 역사 중에서도 완전 고대 역사에서 바보로 대표되는 인물이거든. 바보도 이해하기 쉽다고 쓰면 지성체 권리 침해 등으로 걸릴 수 있으니까, 저렇게 써놓은 거야. 마페이 은하군에 속해있는 w51 행성어에서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서 뒤처진 나이 든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와 발음이 같고 뜻이 비슷하거든. 우리 발렌티카 족들은 이런 글의 미묘한 차이에 예민하거든.”
훌팩은 태양계와 비교적 가까운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내에 있는 발렌티카 행성 출신이었는데 이 행성 원주민들은 인간과 비교하면 매우 큰 키에(작은 키가 2미터 정도 됨) 마른 몸, 털이 보송보송한 꼬리와 귀 등을 가지고 있지만 그나마 외견상 인간들과 유사해 보이는 종족이라(2족 보행을 즐기고 두 손을 사용하는 편이다) 우주전쟁 이후 지구에 가장 먼저 정착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머리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몸 쓰는 활동을 좋아하며 육체의 능력이 매우 발달하고, 초감각이 발전해서 전투에 뛰어난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식으로 정의된 종족별 설명에 대해 볼 때마다 시미나는 어처구니없음에 자주 반발심이 일어났다. 인간만 하더라도 수천, 수만 개의 성격과 각자 다른 외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으로 행성 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유전자 정보가 정복되어 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종족의 특징 정의라니! 심지어 외계 종족 간의 이종 혼혈이 판을 치는 시대에….
그러니, 훌팩이 이야기하는 발렌티카 족에 대한 평가는 시미나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타고난 유전자가 어떨지는 몰라도 훌팩은 운동을 극도로 싫어해서 근육이라고는 거의 없었으며 몸에 나쁜 간식들을 좋아하고,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아서 머리만 쓰면서 살아온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훌팩은 눈치가 없다는 흠은 좀 있지만, 미인에 성격도 좋고 똑똑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매력적인 여성이었는데, 아무나 들어와서 흔적도 없이 자주 사라지는 이 상담소와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1순위 직원이었다. 정말로 눈치가 없는지 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글 사이의 어감 차이를 느끼는 것은 종족 때문이 아니라 훌팩이라는 개인의 능력이었다. 실제로 훌팩은 발렌티카 행성에 가본 적도 없으며, 그녀의 가족은 지구의 삼 대륙 중 하나인 관광지구 토박이였다. 훌팩은 여러 종족이 섞인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발렌티카 족에 가까워 보여 본인은 발렌티카 출신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녀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인간에 가까운 성향으로 인생의 반 이상을 외부 행성에서 보낸 시미나 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우주 종이었다.
“ 온달이라고요? 평강 공주 나올 때 그 온달? ”
“ 시미나 씨, 역사에 관심이 있었어? 전혀 그런 티 안 냈잖아? 의외네! ”
시미나는 실소가 나올 뻔했다. ‘아니 온달이 어떻게 ’오운다르‘ 라고 기재가 돼? 아무리 우주 공용어가 대세라고 하지만 여기는 지구고, 심지어 남의 행성 역사 속 인물을 그따위로 기재하고 써먹어? ’ 라는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딱히 사람들과 논쟁하거나 불합리에 저항하는 타입도 아니고 잘못된 해석이 관심사도 아니라 웃으며 대답했다.
“ 역사에 관심이라기보다는, 저는 지구 중에서도 이 지역 출신이거든요. 온달은 이전에 아시아 대륙에 속해있던 이 근처 지역 역사 속 인물이라 어릴 때 동화 속에서 많이 등장해서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어요.”
“ 훌팩 씨야말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바보온달과 평강 공주 이야기는 이 지역 토박이가 아니면 거의 모르는 내용인데. ”
“ 나는 역사도 좋아하지만, 역사 기반 영웅소설을 좋아하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고 영웅을 만드는 공주! 완전 멋있지 않아? ” 훌팩은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자,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 그럼, 이 년 전 즈음에 출간한 ‘공허 속의 선택’이라는 책은 읽어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인데 태양계 초기 우주전쟁 시기의 우주선 조종사들 이야기인데 거기 여자 주인공이 평강 공주처럼 말의 무게를 아는 캐릭터거든요. 의리도 있고, 드라마로도 나왔는데 작가가 우리은하 역사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고증이 엄청나더라고요. 인물 캐릭터 하나하나도 살아있는 것처럼 너무 매력적이고요. 훌팩씨도 보면 좋아할 거 같은데 한번 읽어보세요! ” 훌팩의 기분이 전해져서인지 시미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평소에는 대충 맞장구만 치다가 넘어갈 대화가 서로의 책 취향을 나누며 깊어져 갔다.
“ ‘공허 속의 선택’ 좋아해? 그 책 여자들한테는 좀 인기 없지 않나? ” 훌팩의 묘한 표정에 자신의 덕후력을 드러낸 언급이라는 생각에 아차 한 시미나는 재빨리 대화를 돌렸다.
“ 안내서 작성자가 W51 행성 출신인가 봐요, 기술 발전에 뒤처진 세대라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도 아니었을까요? ”
“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 안내서는 지구에서 발간된 거야, 그것도 지구 삼 대륙 중 하나인 아-유 지역 안내서라고! 아니, 나는 이제까지 우주 공용어로 이 지역 역사를 배워서 오운다르라고 발음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오운다르’가 아니라 ‘온달’이라니! 이렇게 제 마음대로 사용하면 누가 알아! 언어는 소통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데. 그리고, 이거 바보라는 뜻 맞아, 내용 읽어보면 알 수 있어. 엄청나게 젠체하면서, 너 이것도 몰라? 이거 기본이야! 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거든. ”
훌팩의 수다가 길어지려는 순간, 시미나를 보던 그녀의 시선이 뒤로 급하게 돌아갔다. “이런, 나 지금 전화 온다!” 훌팩은 부랴부랴 본인 자리로 뛰어갔고, 동시에 시미나 자리의 전화도 울리기 시작했다.
문의라 부르고 항의라고 읽는 전화는 지구로 여행 온 다른 은하계 출신이었는데 그 행성에서는 질문과 예약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 포털을 이용한 다른 대륙 여행상품 예약 문의를 했기 때문에 예약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구에서는 예약 확정을 해야 예약이 되는 거라 상품예약이 되지 않아서 이번 여행을 망치게 되었다고 포털 예약 자리를 만들어 내라고 우겨대는 중이었다.
“ 고객님 제가 이해를 잘 못해서 죄송하지만 포털 예약을 하셨는데 예약이 안 되었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예약 문의만 했던 상태라 원하는 날짜의 포털 예약이 마감되어서 다른 이동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인가요? ” 이 무슨 창의적인 헛소리인지라고 생각하며 시미나는 영혼을 끌어내어 상냥하게 질문을 되짚어 주었다.
“ 내가 예약에 관해서 물어봤으면 예약을 해줬어야지, 여러 차례 일정 확인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 포털이 없다고 하면 어떡하라는 소리야! 표를 만들어 내던가 여행사 신고할 테니 접수해 줘요! ”
“ 고객님, 예약금 결제를 진행했는데 표가 취소가 되었다는 이야기일까요? ” 시미나의 꼬리를 무는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하자 고객은 우기기를 시작했다.
“ 예약했다니까! 결제는 아무 말도 안 해서 후불 결제인 줄 알았지! 표 없다고 발뺌하면 다인 줄 알아! 여행 다 망치게 됐는데 어떡할 거야? 첨단 허브 행성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고객을 불편하게 만들어도 돼! 예약 마무리가 안 됐으면 연락을 해 줬어야지! 내가 아-유 대륙 포탈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 줄 알아! 너희 VIP한테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 고객은 숨도 쉬지 않고 주장을 하며 자신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라고 강짜를 부려댔다.
“ 고객님, 전화 주신 내용은 안타깝지만 지금 시간에는 처리가 어렵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영업시간에 재문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하자, 여러 고객이 본인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주 시전 하는 가장 흔한 협박을 했다.
“ 너 이름이 뭐야?, 지금 처리해 주지 않아서 입은 손해는 네가 책임질 거야?, 너 왜 이렇게 불친절해! ” 의 쓰리 콤보를 여러 차례 반복한 후 전화는 끊어졌다.
바쁜 시간이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처럼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