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가능하면 상급자와 멀리 떨어져서 앉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 공간은 특히 그런 경향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관리자들은 신입직원들이 수습사원일 때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그들의 자리를 한 곳으로 몰아 두었지만, 신입직원들은 수습 딱지를 떼고 자리 선택의 자유를 획득하자마자 가능한 한 구석 자리로 경쟁하듯이 이동했다.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답을 줄 수 있는 사람 근처로 모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이 동네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시미나도 관리자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지만, 그들 근처에 자리 잡는 것은 많이 꺼려졌다. 그것은 신입 때나 업무에 익숙해진 지금에나 같았다. 관리자들은 각자의 업무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다수가 질문 하나에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 시미나도 지난 과거에서 관리자였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비난 폭격을 받는 것은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한 번씩 이런 비난을 겪고 나면 과거의 자신은 괜찮은 상사였는지 하는 생각을 하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될 정도였다. 역시 인간이란 상대편의 입장이 되었을 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았다.
“오늘 관리자들 왜 다 신경질적이야? 파트장도 그렇고! 안 그래도 고객 질이 별론데 질문에 대답도 늦고, 처음부터도 아니고 대화 중간에 지켜보면서 앞에 다 안내한 내용 뒤늦게 확인도 하지 않고 화내고, 틀린 답 알려주고, 뭐가 문제래? 신입직원들 투입이 한두 번도 아니고?” 바쁜 시간이 지나가자마자 서로 친분이 있는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수다가 시작되었다. 시미나와 구디의 수다에 새로 합류한 사람은 인셀라네였다. 인셀라네는 26920 상담소에는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여러 다양한 상담소를 거쳐 온 상담소 베테랑 출신이었는데, 시미나가 보기에 이 경력은 인셀라네에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녀는 관리자들이 자기만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 지적을 한다고 자주 투덜대었는데, 시미나가 보기에도 그녀는 집중 관리 대상이 맞았다. 또한, 관리자들이 왜 그녀를 집중적으로 마크하는지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인셀라네는 상담소 이력이 많아서 신입들 사이에서부터 당연히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상담소들의 생태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주기적으로 본인 판단대로 답하는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스타일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아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관리자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자주 시전했다. 상담원들의 근무 시간대는 각자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 시미나가 근무하는 시간대는 저녁, 밤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시간에는 제한되는 일이 많았다. 낮에만 진행할 수 있고 안 되는 일들이 많았는데 당연하게도 밤에 답변할 수 없는 문의가 들어오면 관리자들은 빠르게 전화를 끊고 다른 전화를 받는 것을 요구했다.
관리자로서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도록 적당한 수준으로 고객들을 쳐내서 최소한의 상담사들을 운용해 최대한 많은 문의를 놓치지 않고 안내하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이는 우주 상담소 전체 지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셀라네는 주기적으로 고객들과 긴 대화를 했다. 지금 시간에는 진행이 되지 않는 상담이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전화를 한참 진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집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후처리 기록-대기 이 순서로 진행되는 사이클에 그녀는 주기적으로 대기를 잊어버리고 관리자들의 고함 소리를 들리게 했으며, 거의 매일 하는 행성 간 이주 증명서 등록 진행에서 다양한 실수를 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관리자들이 피드백을 주는 채팅창을 딴짓하느라 자주 보지 않았으며, 밤에도 답변이 가능한 문제를 낮에 전화하라고 돌려버리느라 다시 고객에게 안내 전화가 나가게 만드는 쓸데없는 일 즉,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관리자들 요주의 상담사 리스트 상단에 위치하는 것일 테지만 그녀는 그 사실은 전혀 모르는 것인지 자기한테만 까다롭게 군다고 짜증을 내고는 했다.
시미나는 그녀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저렇게까지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자주 하는 투덜거림이 귀찮았으며,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여 살짝 돌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 관리자들 처지에서는 빠른 처리를 선호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 시미나는 관리자들 입장 따위는 관심 없었고, 인셀라네가 자기 일을 제대로 처리해서 시미나에게 영향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또는 " 지금 분위기 별로니까, 관리자들 눈에 띄지 않게 집중해야 할 거 같아요”라고 이야기 해주거나, 옆자리에 앉았을 때는 슬그머니 옆에 가서 채팅창에 올라온 글을 손으로 짚어 주었다. 물론 별로 효과는 없었다. 인셀라네는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고 일을 할 때 전략적으로 진행하는 타입이 전혀 아니었다. 당연히 돌려 말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반응은 늘 비슷했다.
“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난리야! 신입사원들이랑 비교하면 반도 안 걸리는데! ” 맞는 말이었다. 신입사원과 인셀라네를 비교하면 실례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월급도 신입과 같고 일 처리도 두 배로 빠르지만 그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비용을 투자해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 내는 것. 그녀가 신입보다 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경력 때문이었고, 이 상담소를 그만두고 나갈 것이 아니면 따라야 할 규칙이었다.
이런 식이니까 신입사원들은 상담소 일에 적응하고 일이 조금 어려워지자마자 다른 상담센터로 떠나갔다. 밤의 우주 상담소는 사고 신고라는 전문 분야 이외에, 너무 많은 부분을 얇고 넓게 알아야 하는지라, 행성 간의 문화차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행성 이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쉽게 질문을 할 수 없는 이곳의 문화는 신입사원들이 이 상담소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관리자들은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같은 관리 방식을 유지했다.
시미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일이 처음이라, 상담소 취직 후에 첫 인사말을 떼는 것이 어려웠지만 말이 입에 붙고 쉬워지자마자 이 정도면 다른 상담소에 가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때려치울까?’라는 고민을 잠시 하기는 했다. 관리자들의 친절하지 않은 답변과 짜증을 받으면서 일하기도 싫었고, 다른 이들의 투덜거림과 도망을 접하다 보니 군중심리에 의해서인지, 더 일하면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다만, 상담소와 시미나의 집이 가깝고 야행성인 그녀의 생활 사이클에 일하는 시간이 적합했으며, 은하 간의 이동을 밥 먹듯이 한 경험이 많아서인지 문의 내용에 답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생각은 그저 머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사실 시미나는 다른 사람들의 투덜거림에 동조하는 척하기는 했지만, 이해는 잘할 수 없었다. 이 일은 그녀가 사는 동안 가진 직업 중에 제일 쉽고 소위 말해 ‘날로 먹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새로운 무엇인가를 계획할 필요도 없고 전략적으로 사람들과 회의하며 팀별 밥그릇 싸움을 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도 급작스럽게 터지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추가 근무를 하는 일 도 없었다.
시미나는 외행성 이동과 출장 잦았던 이전 직업으로 인해 일이 조금 익숙해지자마자 금방 업무에 적응했다. 기본적으로 배우고 이해해야 하는 정보 자체가 대다수의 다른 상담원들과는 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입으로는 사회생활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척 ‘너무 힘들다, 별로이다, 모르겠다’를 시전했지만, 딱히 아무런 생각이나 불만이 없었다. 뭔가를 바꾸거나 개선 하고자 하는 생각은 의지가 있을 때나 하는 것이지 시미나는 의욕 자체가 없었다.
시미나의 입장에서는 관리자들의 고함소리가 싫고 최대한 조용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소소한 도움을 준 것에 불과했지만 인셀라네의 처지에서는 달랐는지 - 그녀는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급했으며, 손해 보는 것을 참기 어려워했다 – 시미나에게는 매우 호의적으로 굴었다. 친절을 베푼 원인은 전혀 달랐지만, 결론은 긍정적이었다. 그저 조금의 관심과 시미나의 입장에서는 호의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을 보인 것뿐인데 참 알 수 없는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