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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가원 Aug 04. 2024

봄의 끝자락과 남의 연애 전쟁

정신없이 몰아치던 전화도 띄엄띄엄 그 수를 줄이고 밤이 점차 깊어져 가고 있었다.      


이곳 세타 우주 상담소는 크기로만 따지면 지구에서 세 손가락 이내에 들 정도로 매우 큰 규모의 상담소로 24시간 운영하는 우주 상담소답게 전화 상담과 대면상담이 한 센터 내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저층부는 대체로 대면상담이 이루어지므로 사무실 디자인도 우주선 내부, 휴양지, 행성 모티브 등의 다양한 콘셉트로 꾸며져 볼거리가 풍부하다고 알려졌지만 전화 상담과 서류처리를 위주로 하는 상층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직원들만 일을 하는 12층 이상의 상층부는 약간의 구조적인 차이만 존재할 뿐 대체로 끝이 보이지 않는 책상들이 일렬로 줄지어서 있고 그 책상 사이 사이를 칸막이 같은 차단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다수의 인원이 근무하는 사무실 디자인은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시피 했다. 바뀐 점이라면 과거에는 파티션이라고 불리었던 공간만 분리하는 벽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모양만 존재했다면,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소음차단이 약간 더 잘되는 수준의 방음이 잘 안되는 벽 느낌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외벽 끝을 따라서 중간중간 설치된 엘리베이터 홀이라던가 회의실 휴게실 등의 일부 공간 구획이 없었다고 하면 색깔도 하얀색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오래 있다가 보면 정신병이 걸릴 거 같은 공간디자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간이 구분도 별로 없이 끝없이 펼쳐진 것과는 다르게 외벽들은 많은 부분이 유리로 되어있어 밤이 되면 야경과 별들이 유성처럼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외계 종족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름답기는 하지만 외벽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주에 부유하는 느낌으로 중력이 상실된 기분이라 지구인으로는 여러모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지구라 이곳에서의 근무를 결정했다면 적어도 중력에 대한 불쾌감을 느낄 종족은 없었을 텐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차별이냐는 생각이 드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책상과 책상을 나누는 경계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 홀로그램 모니터를 띄우는데 만 유리한 구조로 되어있었다고 하는데 사방이 오픈된 구조라 사생활 보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직원들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항의가 많아져서 현재는 눈높이를 좀 넘는 정도의 칸막이 형태의 차단벽으로 바뀐 상태였다. 물론 천장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소음차단은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직원들의 업무환경 개선에는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유구한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휴식 시간을 가지거나 퇴근하고, 최소한의 하급 관리자와 심야 시간에 일하는 직원들만 남은, 그야말로 깊은 밤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반대편 구석 쪽에서 이 밤의 고요와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아 진짜, 그럼요~. 퇴근하고 한잔해야죠~. 호호호 호호, 한잔인데 당연히….” 하는 이 밤의 고요를 심하게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 영화는 최근에 개봉한…. 진짜? 난 아직 못 봤는데…. 맛집…. 어머 몰랐네~. 호호 호호호 ”


뭘 그렇게 모르고 뭘 그렇게 진짜 진짜 궁금한 것이 많은지…. 멀리에서도 뜨문뜨문 들리는 소리에 ‘연애는 집에 갈 때 너네끼리만 하면 안 되겠니?’라는 말이 육성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지경에 이르렀다. 딴짓하면서 신경을 분산시키고자 했지만, 조용한 곳에서 울리는 고음의 목소리는 그조차도 쉽지 않게 만들었다.      

“ 시미나씨, 휴대폰 전화 온다! ”      


신경을 거스르는 대화 소리를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수다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안셀라네는 수다 대상을 물색하다 시미나의 개인 전화가 울리는 것을 보고 냉큼 알려주었다. 시미나는 휴대폰을 슬쩍 보고 한숨을 쉬며 거절 버튼을 눌렀다.      


“ 전화 안 받아? ” 


“ 나중에 쉬는 시간에요. ”      


시미나의 주의력이 저쪽으로 향한 것을 눈치챈 안셀라네가 자신이 아는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인셀라네는 주변 사람들의 정보, 즉 가십에 매우 관심이 많은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상담소의 온갖 잡다한 정보를 한 손에 꿰고 있었다.


“ 미리드씨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대. ” 안셀라네가 눈가를 찡긋거리면 소곤거렸다.


“ 패써비씨 결혼하지 않았어? ” 구디씨가 자신도 아는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 아니 그쪽 말고 다른 쪽, 모런 씨. 미리드씨가 모런씨 꼬시려고 작정한 거 같지 않아? 모런 씨랑 패써비씨 퇴근하려면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되는데. 홍홍홍홍홍…. ”


“ 어머 어머, 그런가 보네. 아니면 굳이 한 시간이나 퇴근하길 기다려서 같이 술 마시러 가지 않지~. 미리드씨 평상시에는 칼같이 땡 하면 퇴근하잖아. 근데 요새 이 팀 저 팀 계속 술 약속도 잡고 엄청나게 꾸미고 다니더라고. 꾸미는데 돈 쓰는 거 아깝다고 할 때는 언제고! ” 아줌마들은 소녀들처럼 킥킥대며 다른 사람들의 연애에 지대한 관심을 표현하면서 대화를 시작했고 이리저리 공처럼 튀며 여러 대상을 바꿔가며 이어졌다.    

  

“ 시미나씨도 평소에 거의 꾸미고 다니지 않으면서 그 반지는 매일 끼고 다니더라? 커플링이야? 어디 거야? 저번에 보니까 미리드씨도 비슷한 디자인 액세서리 새로 샀던데 비싼 거지? ”      


언제 봤는지 시미나가 늘 착용하고 다니는 반지를 가리키며 미리드가 최근에 소비하는 많은 것들을 궁금해하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딱히 시미나의 대답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대화 주제는 빠르게 변화했다.  

    

“ 저번에 보니까 모런 씨, 주말팀 나프니아 인가? 그 왜 키 크고 성격 있고 입 더러운 친구 있잖아, 거기랑도 영화 약속 잡는 거 같던데 그쪽은 어떻게 되는 거야?, 둘이 입사 동기라던데. ”


“ 어머 어머, 정말 궁금하다, 근데 모런 씨가 인기 많을 타입은 아니지 않아? ”


“ 아유~, 아직 젊잖아~~. ” 별다른 특별한 일이 생길 일이 없는 아줌마들의 수다는 남의 연애를 안주 삼아 안드로메다 대기권을 뚫을 기세로 계속되었다.


시미나는 인제 그만 산으로 가는 이 대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하필 수다는 그녀의 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평상시에는 딴짓만 하려면 들어오는 전화조차도 조용했다. 하여간 고객들은 도움이 되는 경우가 하나도 없었다.      


시미나는 남의 연애사 따위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었지만, 적당히 맞장구를 쳐 가며 나 관심 없음을 온몸으로 티를 내며 수다를 그만두기를 신체언어에 듬뿍 담아 듣는 척을 했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한 강인한 여성들은 이를 가뿐히 무시했다. 포기한 시미나는 적당히 기계적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안셀라네가 급발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퇴근하고 어디 좋은 곳에 가려나 보지? ” 안셀라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높아지는 미리드의 웃음소리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의 대화에 난입했다.     


“ 어디 가려고? 자기들만 좋은 데 가지 말고 다른 사람도 좀 데려가~. ” 안셀라네의 말에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간 후, 미리드의 떨떠름한 듯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 소화 안 된다고 밤에 야식 먹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요? 저희 고기 먹으면서 한잔할 텐데 괜찮을까요? ” 미리드가 소심한 방어를 시전 했지만, 안셀라네는 투사였다.


" 아니이~, 우리 말고. 시미나 씨도 배고프다고 했는데 퇴근 시간도 맞고 딱 맞네! " 안셀라네는 옆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멍때리고 있는 시미나를 언급했고, 그제야 이게 무슨 말인지 인식한 시미나의 뇌가 버벅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절대 이 연애 전쟁에 발 들이고 싶지 않았다.


“ 저, 저요? 아니 저는 조금 있다 쉬는 시간에 간식 먹을 건데요.” 그녀는 놀란 와중에도 거절을 이야기했다. 안셀라네도 안셀라네였지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구디도 웃으며 대화에 합류했다.


“ 그러지 말고 같이 가~. 젊은 사람들끼리 같이 어울리고 하면 좋지! 좀 전까지 배고프다고 뭐 먹을지 고민했잖아~.” 구디까지 말을 보태자, 패써비와 모런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 사람 많아지면 좋죠! 저번에 싫다고 거절하시더니. 오늘 딱 좋네요! ”


“ 근처에 사는 사람들끼리 딱 맞고 좋네! ”: 미리드는 한 시간도 넘는 거리에 살았다.


“ 뭐야, 나만 멀리서 사는데….” 미리드 투정 같은 징징댐과 앙탈인지 모를 여러 대화가 좀 더 오가고 난 뒤에, 이러다가는 남의 연애사에 참여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시미나는 자신의 의견을 좀 더 단호히 이야기했다.


“ 전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죄송해요, 다음에 기회 될 때 꼭 한잔해요. ”라는 말을 끝으로 적절하게 들어온 전화로 인해 얼결에 휩쓸릴 뻔한 남의 전쟁은 끝이 났다. 멀쩡할 때도 하지 않던 다이어트는 우울증 걸린 무기력증 환자가 되었을 때 습관처럼 뱉어내는 무기가 되었고 매우 효과적이었다.


오늘은 더 이상 피곤한 일이 없기를 기도했지만, 역시나 세상은 시미나의 편이 아니었고 밤은 길었다.


“ 고객님, 행성 거주증명서 발급 여부는 본인인지 확인되어야 조회가 되는데 확인 도와드릴까요? ”


 “ 내 접속 번호 확인되고 사회보장번호도 입력했는데 무슨 확인? ” 반말로 시작되는 대화를 보니 역시나 오늘도 긴 밤이 될듯했다.


“ 고객님이 입력한 정보는 상담의 원활을 위해 입력한 최소한의 정보이고, 본인확인은 사회보장번호의 보안키를 입력해 주셔야 확인이 됩니다. ”


“ 아니 내가 뭘 믿고 보안키를 입력해? 저번에는 그런 거 확인 안 하고 알려줬는데! ”


“ 보안키 없이는 저희도 정보조회가 되지 않습니다.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지만 이전에도 보안키로 인증하셨을 거예요. ”


“ 보안키 입력 안 했다고! 거기 16920 세타 우주 상담소 맞아? 못 믿겠는데? ” 늘 자신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으면 고객들이 시전하는 믿을 수 없는데 였다. 이 정도면 진상 고객이 되기 위한 기준이라는 책이라도 있는 듯 늘 그들의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 고객님은 경찰서 연결망 통해서 우주 상담소에 연결되었습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우주 상담소 대표 번호 입력 후….” 계속되는 실랑이에 관리자 경고가 들어왔다.


“ 뭐가 문제예요? 보안키 받으면 되잖아요? ” 고객과 통화 중에 채팅으로 이 내용 설명을 자세하게 할 수 없어서 잠시 답변에 지연이 발생한 순간 성격 급한 팀장의 짜증 섞인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시미나는 다 귀찮아진 상태라 팀장이 채팅으로 고객에게 안내하라는 그대로 다시 읊었다. 처음부터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다.


진 빠지는 대화가 끝난 후에 뭐가 문제였냐는 팀장의 추궁에, 전화 연결되자마자 여러 차례 설명했는데, 보안키 입력이 싫다고 이전에는 입력 안 했다고 못 믿겠다고 해서요. 경찰청 연결망 통해 들어오셨는데 라고, 간단히 정리해서 알려주자, 팀장은 잠시 침묵했다. 제가 앞 내용 청취를 못 해서 몰랐네요. 사과인지, 사실인지 모를 대화를 끝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피곤한 시간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시작되려는 찰나, 퇴근하던 미리드는 뾰족한 눈으로 시미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 맘 바뀌면 합류하세요, 고기 맛있는데 가기로 했거든요”     


시미나는 “ 네, 퇴근하세요. ”라는 말로 더 이상의 말을 차단했다. 미리드의 표정과 말의 괴리감이 대단했다. 그렇게 싫으면서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퇴근하는 미리드가 얄미워 보여 그들의 소모임에 참석해서 미리드의 기분을 지르밟아 주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시미나의 짜증도 싹트고 만물도 싹트는 봄은 아직 다 지나가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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