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에 숨어 치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모가 당시의 일은 잊으라 하면 자식은 다 받아들이는 줄 착각한다. 자신은 상처를 받고 자식의 마음은 무엇이든 품는 대양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천륜이라는 무기로 평생 자식에게 족쇄를 채우는 짓은 반복하지 않으리라. 새벽에 깨어 식구들 밥을 안치고 나를 위한 커피를 준비하며 내내 들던 생각이다. 밥 솥의 추가 리듬 있게 뿜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잔을 양손으로 잡고 온기를 느껴야 했다. 마음이 시렸다.
속에 쌓았던 말을 질러놓고 씩씩거렸다. 아직 독립할 수 없는 미성년자라는 것이 분했다. 성향이 너무나 다른 모녀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인생에 욱여넣어 가두려 기를 쓰던 사람. 벗어나지 못하는 올가미에 걸린 기분을 어렴풋이 느꼈다.
20대, 그녀에게서 온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지만 머리가 굵어졌다는 이유로 큰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악담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처럼은 안 살아'. 그녀는 자신의 삶을 부정당해서 상처를 받았고 나는 내 자식을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진심이었다.
인간의 추악함을 가족 안에서 보았기에 적어도 내가 자식들에게 악담을 하는 불행은 선택하지 않을 테다. 나를 안에서 새니까 밖에서도 당연히 새는 바가지 라며 비난했던 그들은 몰랐을 거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고 자신들의 감정을 함부로 마구 버리는 동안 내 속이 얼마나 비틀어지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본인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는 아이를 어찌 함부로 하려 했던 걸까. 그녀는 왜,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기준이 옳다고 여겼던 걸까. 자식에게만 보이는 교만함에 부끄러움이 조금은 있었을까.
내 컨디션이 너무나 안 좋던 날, 올라오는 짜증을 자기혐오로 느끼려는 순간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널 키우며 부족함이 계속 보인다면 말을 해주고, 이 사람도 그냥 인간이구나...라고 너의 이해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여.' 그리고는 한 템포 긴 숨을 쉬고 엄한 감정을 질질 흘리지 않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도 나보다 나은 두 사람을 낳았다. 부족한 나를 더 채워야 한다는 끈기와 낳은 책임으로 성의를 다 해야 하는 인내를 키워주는 존재들이다. 나 같은 아이로 키우고 있지 않기에 그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게 되어 흐뭇하다. 엄마처럼 자식들에게 함부로 하지도 않고 타인에게만 인자한 존재로 살고 있지 않음에도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