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인간 생에 대한 서사
책 크기가 한 뼘 안에 들어온다. 무엇에 이끌려 무심히 손에 쥐게 되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표지의 파스텔 톤 집과 어디론가 멀어지는 듯한 차가운 그림이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작은 책 크기와 다르게 그 안에 담긴 내용의 무게와 깊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욘 포세가 흘리듯 자연스레 담아낸 텍스트가 가슴을 꽉 움켜쥔다. 떨어뜨리듯, 잡아끌듯 전해오는 묵직한 상태는 언젠간 내게도 찾아올 죽음을 이야기한다. 필연적인 상황을 대면했을 때 머뭇거리거나 이유 없이 늦추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말이다.
1부에서는 어부의 아들로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생의 처음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요한네스가 등장한다.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늙은 요하네스의 마지막 가는 길은 가볍고 몽환적인 아침으로 시작한다.
중간 삶의 과정 없이 건너뛴 내용에 당황했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그 과정의 세세함이 문장 곳곳에 스며있으면서도 굳이 꺼내어 드러내지 않더라도 이해가 되었다.
죽음은 그리움이 진한 것과 후회가 되는 몇에 대한 미련을 드러낸다. 요한네스의 진한 그리움은 그의 아내와 친구 페트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요한네스가 다하지 못한 과제를 안고 있는 후회이기도 하다. 그리움과 후회가 짙은 순간이 죽음뿐이랴. 사는 중에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는 생긴다. 과거에 대한 강한 집착이 솟구칠 때가 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는 후회된 일을 계속 되뇐다. 이미 지나갔고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죽은 이의 시각과 이를 마중 나온 이의 침묵 사이에서 치장하지 않으며 짧고 간결하게 전하는 말에 포용의 깊이가 있다. 페트로와 요한네스 사이의 말은 함께한 시간만큼의 깊은 침묵과 이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느끼는 오랜 시간의 누적에서 오는 공감이 있다. 과거와 과거를 오가며 변하는 모습에 요한네스는 의문을 가진다. 그런 요한네스가 의식의 흐름에 행하도록 페테르는 그냥 둔다. 친구를 마중나온 자의 배려다. 자신이 품은 의문을 묻지 않는 요한네스 또한 페테르에 대한 배려다. 말을 아끼며 신중한 그들은 결코 허투루 감정을 캐내지 않는다.
탄생이 있기에 삶이 있고 생애를 거치기에 죽음이 있다. 인간 삶의 심오함이 죽음을 앞두고 읽히거나 갑자기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현재 두 아이와 투닥거리는 시간, 연을 맺은 지 21년이 되어가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들의 시간을 합하여 살고 있다. 누군가 있어 나의 삶이 있고 나로 말미암아 나의 두 아이 삶이 생겨났기에 사람의 시간과 존재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물론 티격태격 싸울 때도 있었지만 고요하고 평화롭게 산 편이었다.(p102)
내 생의 끝에서 남겨둔 발자국을 뒤돌아 보면 어떤 기분일까? 나이가 더 들어서 생각할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기에 외면한다고 묻힐 수 있는 반성이 아니다. 요한네스처럼 평화로웠다고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러나 고요했다는 삶의 평가는 따분함으로 해석된다. 요 몇 해, 내 삶은 대체적으로 고요했다. 그렇다고 부정적이고 이겨내야만 하는 삶의 부분은 아닐 거다. 시끄럽고 부조화가 가득한 삶보다는 낫지 않느냐 위로하게 된다.
이렇게 작은 책을 장편이라 소개하는 이유를 알겠다. 텍스트의 길이로 본다면 단편 같다. 그렇지만 한 인간의 탄생과 죽임의 순간만을 묘사하며 주인공의 생애를 축약한 시간들이 문장 속에 담겨 있기에 분량뿐만 아니라 깊이에서도 장편이라 할만하다.
요한네스는 마중 나온 페테르에 의해 죽음을 인지하고 남겨진 막내딸 싱네와 그의 가족을 내려다보며 그리움이 가득한 존재들을 만나러 간다. 그 걸음이 땅에 닿지 않는 것 처럼 느껴졌다. 요한네스의 마지막은 생을 이어가는 내게 의문을 남겼다. 남긴 것에 대한 고통이 없기는 한 걸까? 놓기보다는 쥐어야 할 것이 많은 나는 잘 모르겠다. 궂은일이 되었다며 그의 장례식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는 요한네스의 마음은 아프지 않았을까? 남겨진 자의 몫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대신 고통스러워 할 뿐인데.
못다 이룬 삶에 미련을 잔뜩 남기며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울부짖지 않고, 때가 되어 떠난다는 마음으로 평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지 잠시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