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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Dec 09. 2020

#02. 착한 소비는 없다

자연의 이치에 부응하는 삶이 필요한 시대

  '제로 웨이스트'라는 환경 운동을 올해 처음 알았다. 필환경 시대에 자기 일상을 비판해 보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배움이 될 것 같았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용어도 함께 접했다. 쓰레기를 배출하는 삶도, 소유하는 것도 최소한으로 하는 삶의 매력에 끌렸다.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영어 표현 그대로 사용되는 용어가 많아서 어색하고 불편하다. 게다가 새로운 소비를 부추긴다는 인상을 아주 강하게 받았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자며 내가 할 수 있는 지속성을 계속 고민한다.   


코로나로 비대면 배달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면서 배출되는 쓰레기 문제에 더 관심이 갔다. 나의 소비로 인해 쓰레기 생산이 불가피하다면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하고 재활용과 재사용이 가능한지 따진다. 씻어 말리는 작업은 기본이다. 남편은 쓰레기 배출에 신경 쓰며 소모되는 에너지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필요인지 낭비인지 갈등하다가 환경에 대해 남편도 나도 무엇하나 제대로 모른다는 전제하에 이 책을 읽었다.  

양면성을 보이는 '소비'에 대한 책 표지 ⓒ지예


똑똑한 소비를 한다고 여겼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당장 눈을 돌려 집안을 둘러보기만 해도 지구에 몹쓸 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팔짱 끼고 앉아서 자연 순환 시스템에 끼지 못하는 것들을 훑었다. 나의 원죄는 '태어남'이라는 어리석음에 이르렀다.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필사하며 배우고 정리했다.




상품 소비, 에너지 소비, 마음 소비, 자연 소비, 네 파트로 구성된 내용 흐름은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을 채워준다. 저자는 자신의 지론을 독자가 각성하고 따르라고 하지 않는다. 지구 환경 변화와 비상사태를 우리가 당면한 삶에 밀착시켜 이해를 돕고 나서 권유한다. "~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지는 "~할 수 있을까요?"라며. 저자는 지구를 '공동의 집'이라고 부른다. 내가 아는 집은 단순 구조물이 아니다. 유지하고 보수하며 지키고, 숨을 불어넣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 대한 배려를 호소하고 있다.


소비한다는 건
지구에 있는 무엇인가를
쉼 없이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착한 소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이들 용품의 유해성 때문에 구매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갖지 못하는 서운함을 큰아이와 대화하며 풀어낸다. 대부분의 제품들이 석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노동과 생산 착취가 구매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그 타당성, 살림 훼손이 동반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 등을 이야기하며 가볍게 주고받는다. 이제 대화 거리가 더 생겼다.  [상품 소비]에서 '남의 곳간에 불 지르고 얻는 팜유'를 배웠다. 경제, 정치, 과학이 얽힌 고리에 혼자 분노했다. 과자 생산과 관련되어 아이와 대화하려고 잘 요약해서 필사해두었다.


[에너지 소비]는 분량은 제일 적었지만 가장 임팩트 있게 읽었다. 핵 발전소의 위험과 비효율성, 핵 폐기물 처리 실태를 이제야 대면했다. 밀양의 송전탑 걸립이나 영화 '월성'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외면했다는 말이 솔직하겠다.  지구는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비상사태에 놓여있다. 나의 편의와 풍요를 위해 취했던 비겁한 행위가 일조했고 아이들까지 동참시켰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야 지혜롭다고 가르쳤는데 말만 가르치고 있었다.

 

핵 발전소에 대한 내용 요약 ⓒ지예


열심히 필사할 수밖에 없다. 필사라기보다 요약에 가깝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며 생각을 보탰고, 쓰다 말고 큰아이에게 말해주기 바빴던 시간이었다.  단군 이래 한반도 역사가 5천 년인데 핵 폐기물 저장 기한이 최소 10만 년이란다. 세상에!!! 핵 발전소는 '화장실이 없이 잘 지은 집'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정부는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그 전날에 이전 정부가 저지른, 기업에 이익을 퍼다 주는 석탄화력발전소 걸립 문제를 다룬 시사프로를 봤다.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돈지랄을 보고 뒷 목을 잡았다. 인간의 사욕과 기업의 추악한 이면은 사람과 땅을 살리는 소비로 고심하는 사람들을 허탈하게 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들에게 공정이란 괴와 돈이고 지혜도 돈인가 보다.


좀 낯설고 번거롭더라도
소비하는 삶보다 지속 가능한 삶 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는 건 어떨까요?

    

저자는 [마음 소비]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생명 소비를 들여다 보길 바라며 말을 건네 온다.  화석연료, 먹거리, 탄소, 온실가스, 기후변화의 연결 속에 지구는 결코 화수분이 아니기에 그만 털어 쓰길 바란다. 얼마큼을 가져야 만족할까? [자연 소비]에서는 내가 돈을 지불하고 얻는 만큼 자연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연 변화에 조금 더 심도 있는 관심을 가지고, 생활 속 탄소 중독 소비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실천하기를 당부한다.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눈여겨보게 된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추진에 일개 국민으로 보탬이 될 일이 무엇일지, 참여 동기는 충분하다. "편리함을 누린 대가는 고통의 모습을 하고 편리함을 누린 이에게 결국 찾아옵니다."라고  저자가 말한다. 제로 웨이스트도 미니멀 라이프도 좋다. 그러나 제대로 의미를 이해하고 접근했으면 좋겠다. 내 집에 물건이 없다고 해서 내 집 앞이 미니멀한 것은 아니다. 내 집에 쓰레기를 쌓아두지 않는다 해서 쓰레기 매립지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모두가 책임을 가지고 어느 때보다 소비에 일정 휴지기를 가져야 하는 공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 이치에 부응하는 똑똑한 소비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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