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신발과 생각에 난 구멍

by 주명


운동화에 새끼발가락이 닿는 부분에 구멍이 났다. 이미 작년에 수선 패치로 수선했는데 발가락의 힘 덕인지, 위치의 특성인지, 그러나 검색하니 내가 가진 운동화 모델의 고질적 단점이라는 결론을 예견이라도 한 듯 올여름에 다시 구멍이 났다. 오늘 저녁엔 미뤄둔 수선을 신발장에 앉아 다시 했다. 끈을 풀고 운동화 혀를 제끼면 패치를 붙이기 더 쉬우나 작업의 용이성이 귀찮음과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여 손을 거의 욱여넣다 싶이 해 패치를 붙였다. 역시나 원하는 위치에 붙지 않았다.


결국, 대강 마무리하고 싶었던 패치 접착을 다음 해 여름에 또다시 신발장에 앉아 미간 찌푸리며 하고 싶지 않아 끈을 한 칸만 남겨두고 다 풀어 운동화 혀를 제꼈다. 접착이 덜 된 부분까지 제대로 붙였다. 처음부터 제대로 풀고 했으면 될 것을 뭔 자존심을 세운다고 일을 두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제끼지 않고도 이기고 싶었거든.


손가락 한마디도 안 되는, 반도 안 되는, 마디의 사분의 일쯤 되는 구멍을 막으면서 할 일이란 그저 손가락을 잘 움직여 운동화에 붙이는 것뿐이라 나는 동시에 다른 짓을 했다. 다른 짓? 뭘 물어. 생각이지. 그러고 보면 생각에 구멍이 난 적은 많다. 생각이 늘 술술 새는 걸 보면. 구멍을 막을 생각은 없다.


그 다른 짓의 내용은 이러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나마 한 가지 습득한 묘약은 우울한 마음이 들 땐 마음을 내팽개쳐 두지 않고 들춰 업어서라도 자꾸 바닥을 기지 않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지. 결국 방법은 노력뿐이다.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조금 더 멋진 책략을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기술로 움직이는 게 인생이었다면, 애초에 마음이 어려울 일은 인생에 있지도 않았을 터.


묘약을 얻기까지 수없이 마음을 내팽개쳐 둔 시간이 많았다. 다시는 그런 실수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힘을 잃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일으켜 세웠다. 반드시 성공해 내고야 말았다는 후일담만이 즐비하진 않지만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흔적은 내 마음 안에 남아있다. 발버둥으로 긁혀있든, 더러워져있든, 구멍이 나 있든.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일 때 애써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다 쓰지 않지만, 부정적인 감정일 때는 애를 쓰고 써 긍정적 감정을 불러오려고 하는 건 아닐지. 부정적일 땐 우린 가짜 감정으로 스스로에게 최면 아닌 최면을 걸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도태되고 만다는 두려움은 생존 본능 일으켜 긍정적인 감정을 납치하듯 데려오는 지도 모른다. 인간들 속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선 체면치레를 한다. 인간은 내 안에 있는 나를 보이는 것이 두려우니까. 나약하면 나에게든 남에게든 나는 표적이 된다.


구멍 나 있는 나를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어서 들쳐업고 있다. 모두가 자신을 들쳐업고 있다. 나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으니 서 있기도 힘든 세상 나를 들쳐업고 있는 수고를 좀 덜자. 마음을 다독이며 일어나 보자고 속삭이자. 어떤 노력은 보이지 않아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런 노력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서러워할 게 아니다. 내 체면은 나만이 세울 수 있으니까.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듯해 보이는 인생은 남들이 손가락질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이야기할 만큼 부러운 인생이다. 타인은 절대로 몰라 우리의 인생은 늘 비밀스럽다.


구멍 난 신발을 패치로 붙이고 나면 새끼발가락이 운동화 밖으로 나올 일도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조차 구멍을 볼 수 없으니 남들은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단번에 붙였든, 두번 만에 붙였든, 수 없이 붙이고 뗐든, 구멍 난 운동화에 붙인 패치와 노력은 나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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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말이 많다.

신이 나서가 아니라, 차분히 가라앉아있기만 했던 마음이 잠시 자리를 이탈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었기 때문에. 머리와 마음속으로 들어온 글자가 많기 때문에. 글자가 소화됐으면 배출해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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