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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a May 23. 2019

베트남, 느림 속의 미학

아홉 번째 이야기

  '스스로 설정해둔 자신만의 속도를 따라 산다. 빠름과 느림에 상관없이 말이다(더느림, 가현정).'


 하노이의 여름날, 거리를 구경하기에는 숨이 막히게 더웠다. 한 시간쯤 걸었을 때 깨달았다. 한 시간을 걸으면 한 시간 쉬어야 다는 것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덥고 습한 날씨에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마음가짐 또한 너그러워야 다. 더운 나라 베트남에서 살기 위한 몇 가지 공식, 그 답을 느림 속에서 찾았다.   


 하루를 두 번 보내는 여유, 낮잠 문화

 점심시간 사무실에 들어가 보면 깜깜하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가 누군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수 있다. 모두 각자 자리에서 꿀잠을 즐기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가장 더운 시간대 그늘에서 쉬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냉방이 가동되고 블라인드가 내려진 사무실의 쾌적함은 느티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선선한 바람을 맞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한 시 보고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국내 사무실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근무 시간에 잠을 잔다는 것을 의아해하거나 못 마땅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의 낮잠은 삶의 지혜가 담긴 전통으로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대에 기운을 보충함으로써 쉼표의 여유를 갖는 것이다.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 확실히 쉬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작년 여름부터 한국 회사에 유연근무제가 도입되었다. 회사는 집중근무 시간대를 정해놓고 일의 양보다 질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는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동시에 바꾸기도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소재 법인들까지 이러한 문화가 전파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베트남의 낮잠 문화가 자연스럽게 지켜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는 선생님은 없었다. 학생들 개개인의 컨디션과 학습 패턴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임직원들의 컨디션과 일하는 패턴을 존중한다면 먼저 낮잠을 청해 보는 건 어떨까. 식사 후 커피 한잔의 여유로 오후를 버틸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낮잠은 하루를 두 번 보내는 달콤한 꿈일 수 있다.


 급하게 뛰지 않고 충분한 걸음, 슬리퍼 문화

 한국의 야외 휴게실에서 동료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그들의 발을 보니 모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상상이 가는가. 성인이 되고 슬리퍼는 몇 가지 용도로 쓰인다. 실내화로써 집 안에서 신는다. 사무실 본인 책상 아래에서 갈아 신는다. 해변이나 리조트에 놀러 갈 때 필수로 챙겨간다. 즉, 사적인 이미지에 여름휴가가 떠오르는 아이템으로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한국 직장인들은 주로 구두나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슬리퍼를 신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 직장인들 사이에는 슬리퍼가 유행을 탈 정도로 더없이 인기 있는 아이템인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슬리퍼는 편하고 자유로운 옷차림을 상징한다. 반대로 유니폼은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갈아입는 옷이므로 옷차림이 일하는 공간과 일하는 시간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 준다. 회사에서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의미는 회사를 특별하게 일만 하는 공간으로 분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굳이 공식적이고 불편한 공간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일하는 장소와 분위기 등의 근무환경은 근로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일만 해도 신경 쓸게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데 다른 것까지 챙겨야 하는 게 버거울 수 있다. 그러므로 회사는 전사 차원에서 임직원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불편함을 최소화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동기부여 방안이다.

 단순히 슬리퍼를 신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고 잘못된 자세나 태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오히려 회사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집에서 처럼 편하게 일하는 마인드를 지닌 거라면 슬리퍼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함께 나란히 이동, 오토바이 문화

 '삼치기'를 들어 보았는가. 오토바이 하나에 세명이 타는 것을 의미한다. 한 명이 운전자 앞에 쭈그려 타고 다른 한 명은 뒤 보조 의자에 앉으면 삼치기가 완성된다. 하노이에서 사치기를 발견했다. 아빠, 엄마, 아들, 딸 가족 모두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싣고 있었다. 한국의 교통상황을 보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만약 대학 캠퍼스처럼 30킬로 이하 주행, 차 없는 도로라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노이의 출퇴근 길은 오토바이로 가득 찬다. 자전거가 단체로 이동할 수 있듯이 오토바이 또한 낮은 속도로 움직이면 수십 대가 나란히 이동할 수 있다. 누군가 속도를 내고 새치기를 한다면 더 빨리 갈 수 있으나 넘어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함께 천천히 주행할 수밖에 없는 교통 문화이다.

 그들은 정장을 차려입는 날도 원피스를 입은 날도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화려한 헬멧과 마스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오토바이용 우비를 입는다. 비로부터 옷과 가방을 보호해주는 것이 마치 베트맨 전용차처럼 보인다.

 오토바이 문화는 전용 도로를 이용하는 자전거와 또 다른 문화이다. 전용 도로를 개인의 운전 성향이나 속도를 존중해 주는 개인주의라고 본다면 베트남의 오토바이는 신호에 따라 모두 동시에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집단주의로 비유할 수 있겠다. 마치 한 배를 타고 선원들이 노를 저어 큰 배가 움직이듯 핸들을 당겨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광경은 한 민족의 자부심과 협동심을 느끼게 하는 장관이다.  
 

 낮잠, 슬리퍼, 오토바이의 공통점은 '느림'이다. 느림 속 찾은 세 가지 가치를 통해 하루를 쫓기지 않고 보내는 여유를 찾았다. 금방 지치지 않고 오래 걸을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느림 속 미학은 한국보다 베트남에서 더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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