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봉 Feb 28. 2024

조혈모세포 기증을 주저하는 당신에게

세상에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오래간만입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마지막으로 쓴지가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간 많고 다양한, 그리고 지난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공백 동안에 무얼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오늘 제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고 난 후기를 적어보고자 함입니다. 언제 다시 꾸준히 글을 쓰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록 시간이 없는 와중이지만, 이 경험만큼은 생생하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쓰려니 예전처럼 휘리릭 써지지는 않네요. 하하


저는 약 석 달 전에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전화가 걸려 온 곳은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Korea Marrow Donor Program, KMDP)라는 기관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가 하니, 바로 제가 오래전에 조혈모세포 등록을 했는데 그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한 환자가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대학교 1학년쯤이었습니다. 헌혈의 집에 꾸준히 다녔던 저는, ‘조혈모세포 기증도 헌혈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남을 살리는 좋은 일이다.’ 라는 마음으로 등록했던 것 같습니다.


늘 나의 주민등록증에는 위의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실제로 조혈모세포를 기증한다는 일은 헌혈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전혈 헌혈이 급박한 사람에게 혈액을 전달하는 데에 쓰이고, 혈소판 및 혈장 헌혈이 여러 약품을 만들 때 사용되듯이, 조혈모세포 기증은 백혈병 혹은 혈우병 등의 환자와 같이 골수 조혈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분들에게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이때, HLA라고 불리는 항원이 타인과 타인간에 일치할 확률은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는 5%, 형제 자매 사이에서는 25%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약 20,000분의 1이라고 하고요. 저는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한 연락을 받았으니, 매우 드문 확률이 성사된 셈입니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받고 나니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옛날에는 ‘골수 기증’이라고도 불렸던 조혈모세포 기증은 가볍게 선뜻 해볼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후기를 살펴보니, 조혈모세포 촉진제의 부작용도 내심 걱정이 되었고요. 전화를 받고 나서, “기증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은 떨리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때 제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바로 먼저 조혈모세포 기증을 한 사람들의 경험이었습니다.


가까운 친구 중에 한 친구가 저보다 1년 더 빨리 조혈모세포 기증을 했었거든요. 그 친구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또 유튜브로 어떤 의사 선생님이 직접 기증을 하신 이야기도 들으면서 저는 걱정을 달랠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 실린 수기들도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도 그러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겠군요.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와 정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XJiIqsf24Mw (닥터프렌즈 의사 이낙준님의 후기)

https://www.youtube.com/watch?v=YmPkVfNyozg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한 Q&A 영상)


아무튼, 그렇게 연락을 받아서 기증에 동의한다고 말씀드리고 약 한 달 정도가 흐른 뒤에, 저는 상급병원에서 정밀한 건강검진과 HLA 확인 검사를 받았습니다. 일단, 기증희망자의 건강 상태가 아무런 문제 없이 양호해야 기증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헌혈을 꾸준히 해왔던 터라, 철분 수치가(혈청 페리틴-저장철) 매우 부족하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추가적으로 검진받기도 했어요. 부족한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 철분제를 처방받아서 꾸준히 먹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 과정을 통해 어떻게 보면 저는 제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돌아보며 적절하게 관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 것이죠.


기증대상자(수혜자)와 기증자(저)의 일정 조율을 마친 뒤에는 입원 날짜를 정합니다. 이때 입원은 기본적으로 3일을 합니다. 입원하기 3일 전부터는 ‘조혈성장촉진제(그라신 300 프리필드시린지주)’를 하루에 두 대씩 주사로 맞습니다. 저는 제가 입원하는 병원과는 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기에, 동네의 큰 병원에 가서 3일간 주사를 맞았습니다. 이 주사제는 제 몸 속(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를 말초혈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맞고 헌혈하듯이 기증을 하면 되는 것이죠. 그라신 주사의 부작용으로는 대부분 허리 통증이나 발열, 근육통 등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크게 느끼진 못했습니다. 3일간 허리가 평소보다 약간 뻐근한? 느낌이었죠.


조혈모세포 촉진 주사제를 받고 나서


입원 전 3일간 주사 투여를 끝낸 다음엔, 3일간 입원을 해서 조혈모세포 기증을 진행합니다. 우선, 첫째 날에는 입원에 필요한 건강검진과 혈액검사, 그라신 주사를 2대 투여받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어서, 병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대부분 조혈모세포 기증자들에게는 상급병원에서 가장 편의성이 높은 VIP실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저 또한 좋은 병실을 제공받아 편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은 조혈모세포 기증자로서 무척 힘든 날이었습니다. 일단, 둘째 날에 조혈모세포를 1차적으로 채집하고, 기증대상자인 환자의 상태에 따라 추가 채집 여부를 정합니다. 따라서 1차 채집 때 가장 많은 조혈모세포를 채집하는 것이지요. 제 친구는 기증대상자가 어린이였던 터라, 약 3시간만 하고 끝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증하는 대상자는 체구가 건장하신 분이라고 하여, 거의 5시간 정도를 채집하였습니다. 5시간 가까이 병상에만 있으니까, 중간에 소변도 침상에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말로만 들었던 의료용 소변통을 처음 사용해보았습니다.


채집 과정은 늘상 해오던 성분 헌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렵진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길었을 뿐이었죠.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저는 중심정맥관을 통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였는데, 저녁부터 그 부분이 잘 지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피가 콸콸 흐른 것은 아니고, 조금씩 세어 나오는 수준이었죠.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소독과 드레싱을 2~3번 정도 반복해도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나중에는 급기야 당직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중심정맥관 주위를 봉합해주셨습니다. 그때, 마취는 따로 안 하고 봉합하셨는데, 저는 화타에게 치료받으며 바둑을 두는 관우의 심정을 약 100분의 1 정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한두 땀 정도 꿰메는 일은 따로 마취를 안 하고 진행하기도 한다더군요.


왜 지혈이 잘 안 되는지 제 담당 혈액내과 교수님께 여쭤보니, 오랜 시간 혈액이 채집 기계에서 돌고 돌아 제 몸에 들어왔기에, 혈전 생성 억제제인 헤파린(Heparin)이 몸속에 많이 들어가서 그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조혈모세포 기증 과정 중에 혈소판도 일시적으로 상당량 빠져나간 상태이기 때문이라고도 하셨죠. 다행히 3~4일 정도면 다시 건강하게 회복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23' 6월 평가원 <비타민K> 지문이 생각나는군요..^^


마지막으로 3일째 되는 날에는, 추가 2차 채집을 진행했습니다. 이때는 1채 채집 때만큼 많이는 기증하지 않고, 약 절반 정도 채취를 했지요.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기증을 마친 다음에는, 중심정맥관을 제거하는 시술을 합니다. 이때는 교수님이 직접 올라오셔서 관을 제거해주셨습니다. 관 제거 이후에는 모래주머니를 30분 이상 올려두는 과정을 거칩니다. 저는 이렇게까지 지혈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지혈 과정이 중심정맥관 삽입과 제거 시의 부작용을 매우 줄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의료인의 말을 잘 들어서 나쁠 것은 하나도 없나 봅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과정 가운데 만났던 의료인분들은 모두 좋으신 분들이셨습니다. 저는 그분들 덕분에 더 편안하게 기증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과 할 일을 조율해주셨던 KMDP 코디네이터님, 조혈모세포 채집을 도와주셨던 간호사님, 병실에서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셨던 간호사님들, 진료와 시술을 책임져주신 담당 교수님까지 기억에 선명히 남습니다. 한 켠에 글에나마 이 좋은 인연의 기억들이 담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증 대상자분의 완치와 쾌유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얼마 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사고 실험(가상의 시나리오)을 해보죠. 여기 주사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6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각 사람은 한 번씩 주사위를 던질 수 있습니다. 주사위의 숫자는 1부터 6까지 있고, 이 중에서 ‘3’이 나오게 던진 사람은 죽을 운명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각 사람은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제가 위에 겪었던 조혈모세포를 채집하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서약을 해야 하지만, ‘3’이 나오면 그것을 기증받아 살아날 희망이 있는 선택지

2) 기증을 원치 않으며, ‘3’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선택지


대표적인 사고 실험 중 하나인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


아마 100명, 아니 1000명에게 물어봐도 한결같이 1번 선택지를 선택할 것입니다. 물론,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야 하는 질병에 걸릴 확률은 이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고 실험을 통해서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자신이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라는 점입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님들은 건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이 평생 건강하게만 살 수 있다고 단언코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도 본인이 그러한 질병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아프고 싶어하지 않듯이요.


저는 조혈모세포 기증 이튿날 밤에 ‘봉사활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흔히 우리는 봉사활동을 ‘Win-Win’ 관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봉사를 하는 사람에게도 이득이고, 봉사를 받는 사람에게도 이득인 그런 관계로 말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모든 봉사자는 그런 결말을 꿈꿀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날 밤에 느낀 봉사의 본질은 바로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고서까지 도와줄 수 있느냐’였습니다. 즉, ‘Win-Win’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감내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봉사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저에게는 (기증 대상자분의 고통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든, 체력이든, 건강이든, 정신적인 무언가이든 간에 말입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격려하고 권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째 조금 더 주저하게 만든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쉽게 기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조혈모세포를 등록 혹은 기증하고자 하려는 당신의 용기가 세상을, 아니 단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실천이 하나둘씩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도 말입니다. 어려운 마음이시겠지만, 용기를 내어 기꺼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려는 당신에게, 저는 미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본 글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 7조(장기 등의 매매행위 등 금지)>에 의거하여, 기증과 관련한 구체적인 병원 정보와 상세 일정을 서술하지 아니하였음을 알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