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나는 그러했다.
얼어붙은 경기 속에서 대기업 공채가 시작되었고, 예전처럼 많은 인원을 채용하지 않는 터라 경쟁률 또한 살벌했다. 유튜브를 보고 몇몇 학생들의 컨설팅 문의가 이어지고 면접을 앞둔 학생들과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식사 시간도 없이 대충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며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지치고 허기짐보다 뿌듯함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오니 밥을 차려먹기도 귀찮아 간단하게 빵으로 다시 허기를 채우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빈틈없이 꽉 찬 하루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스케줄을 위해 밤 11시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침실로 향했다.
단정하게 정돈된 이불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원래 자고 일어나 침구 정리를 하지 않는 편인데 간단한 이것만으로도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 해 보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이불을 펼쳐 올려 육중한 몸을 쏙 넣고 베개에 푹 얼굴을 눕히니 언제 불면증이 있었냐는 듯 곯아떨어졌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열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갑자기 잠에서 깼다.
"하... 오늘만은 숙면을 취할 수 있을 줄 알았으련만"
그래도 평소보다 잠에서 깨는 텀이 빨랐고, 무엇보다 이렇게 눈이 번쩍 뜨여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일러를 그리 강하게 틀지 않았는데 뭔가 답답한 느낌이 들고, 다시 잠을 청해봐도 이전과는 다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서히 침대에서 몸을 세워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옷 상의를 벗어던지고 거실로 나갔다. 찬바람을 쐬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에 창문을 열고 찬 새벽바람을 집으로 들였다.
그때부터 내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몸은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은데 정신이 멀쩡한 각성상태라고 표현해야 하나?
학창 시절에 커피를 많이 마시고 날을 새며 시험공부를 할 때 아침에 그런 기분이 들긴 했었는데 이건 그 강도의 10배 정도의 느낌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서 집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병원을 가더라도 도대체 어떤 곳을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몸속에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는 찝찝한 기분과 온몸을 긁고 싶은 답답한 느낌이 교차하면서 내가 숨을 쉬는 게 어렵다는 걸 감지했다.
순간 챗지피티가 떠올라 휴대폰을 들어 챗지피티에게 해당 증상에 대한 답을 찾았는데 돌아오는 답은 명상을 통해 심신을 안정시키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기를 반복하지만 증상이 점차 악화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챗지피티 앱을 끄고 네이버 앱을 켜서 "심장마비 전조증상" 을 검색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증상들이 대부분 일치함을 확인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최대한 침착하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119에 전화를 해야겠지? 근데 만약 아니면 괜히 민폐만 끼치는 거 아닐까?
심장마비라면 뭔가 더 고통스러운 충격이 있을법한데 그 정도까진 아니어서 혹시나 별것도 아닌 일로 구급차를 부르는 게 혹시 지금 당장 위급한 환자를 놓치게 되는 민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일단 내가 의사가 아니므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갑자기 잠에서 깬 이후로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평소와 같지 않아서 그러는데 혹시 이런 증상이 심장마비 전조증상일 수 있을까요?"
구급대원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더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 일단 출동하겠다고 했다. 나는 혹시 그 사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비번을 알려드리고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발이 떨리고 입술을 꽉 깨물면서 어찌 되었건 지금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과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우선 응급실에 가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고 신분증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누워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최대한 몸의 긴장을 풀었다.
"혹시 공황장애인 건가?
공황장애도 이런 증상이라는 것 같아서 검색해 보니 비슷했다. 그런데 잠을 자다가 갑자기 공황장애가 오는 건 상식적으로 좀 납득이 되지 않아서 심장 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실 바닥에 누워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겠구나"
갑자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구급차가 오기 전에 심장에 문제가 생겨 숨이 멎는다면 그건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생명이라는 게 참 촛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죽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고 나니 내가 죽고 난 이후 이 집을 누가 다 치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두고 참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지만 남에게 피해 주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부탁도 잘 안 하는 내 성격에 어울리는 생각 같기도 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서 휴지통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종량제 봉투를 꺼내서 주변 쓰레기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최소한 내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이 공간이 누군가 들어왔을 때 지저분한 모습이길 바라지 않아서였다. 가족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면서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섣부르게 걱정만 끼쳐드리진 않을까 싶어 전화를 하지 않았다. 죽고 나면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도 한편으로는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도 갖고 있었나 보다.
전화를 하고 한 20분 후쯤 구급차가 도착했다.
외관상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구급대원들도 살짝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구급차에 올라타 그대로 누워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그 사이 다른 대원분은 이송할 병원을 찾고 계셨다. 심장 박동수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하는 증상은 없다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숨을 쉬기가 힘든 건지 모르겠다. 집 앞에서 2~3분간 그렇게 구급차 안에서 누워있다가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전에는 없던 가슴을 쪼이는 통증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가슴에 통증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다고 옆에 있는 구급대원에게 말을 하니 계속 휴대전화를 보면서 "아, 그래요?"라고 답을 했다. 뭔지 모를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들도 당장 뭘 해줄 수가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 조금 있으면 응급실 도착할 거니까 보채지 말자"라는 생각에 다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고 응급실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온몸에 덕지덕지 무언가를 붙이고 심전도 검사를 했고, 의사에게 증상에 대해서 설명했다. 태어나서 응급실에 실려 와 본 것은 두 번째인데 늘 이곳은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급한 환자가 있어서라기보다 별 진상들이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응급실 의사나 간호사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인생은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그래도 지금 죽는다면 너무 욕심을 갖고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는 스스로에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이 순간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겠는가.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보면 왜 자기에게 이런 일이 닥친 건지 한숨을 쉬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환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죽음을 가까이할 때 비로소 인생에서 온전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의사 선생님이 와서 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심전도 검사를 해 본 결과 심장에는 이상이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그럼 이게 혹시 공황장애인가를 여쭈었더니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확정할 순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협심증 약을 몇 알 줄 테니 나중에 이런 증상이 또 반복되면 알약을 혀 안에 넣고 기다리라고 했다. 만약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증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될 거고 그때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약을 먹어도 증상이 지속되면 공황장애일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뭔가 정확한 답이 나오지도 않은 게 좋은 일일수도 아니면 나쁜 일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협심증 약 5알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래도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하루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닥을 보다가 조심스레 잠에 들었다. 잠에 드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아무런 고통 없이 가는 거라 좋다고 해야 하는 걸까? 조심스레 잠에 들면서 그래도 아침 햇살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면접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선 남의 일일테니 이걸 핑계로 수업을 미룰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공채 면접 컨설팅을 마쳤고,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이전보다 더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좀 더 하루하루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최종 합격 소식을 전해준 학생 때문에 기분 좋은 일도 생기고,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런 고민들조차 행복한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고 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응급실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몇 달 후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고, 닥친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좀 더 건강에 신경 쓰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게 정답일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또는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결국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나보다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실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어떤 마음이셨을지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 슬퍼진다.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기에 얼마나 오래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한 삶의 가치로 자리 잡게 되는 순간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욕심부리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운 내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