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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3. 2020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기적


열네 살 라라와 여든둘 나딘 할머니

우리 집으로 멍뭉이 나리를 데려 오면서부터 우리는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에 나리와 산책을 나간다.

우리는 그 오가는 산책 길을 통해 수많은 견종의 반려견 들과 다양한 반려인 들을 만난다.

그렇다 보니 동물병원, 사료, 보험 등..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들을 얻어 듣게 되기도 하고 또 천차만별의 사연들을 접하게 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강아지 견생도 사람들의 인생 못지않게 다양한 사연들이 담기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날씨가 추워진 늦가을 어느 산책길에서 강아지 라라와 나딘 할머니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 조그만 강아지 라라가 우리 집 나리를 보고 겁이 났던지 바들바들 떨어 대며 짖어 대서

가던 길을 바꿔서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앞에서 딱 마주친 나리와 라라가 서로 조심 스레 엉덩이 인사를 나누고부터는 더 이상 라라가 짖지 않게 되자 우리는 자연 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하기 좋아하시는 한국 할머니들도 그러시지만 독일 할머니 들도 한번 이야기를 트면 살아오신 인생사를 그 자리에서 펼쳐 들고 미니시리즈를 엮는 분들이 많다.

나딘 할머니도 그런 분 중에 하나인데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낮고 작은 분이 말씀을 어찌나 재미나게 하시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길에 서서 듣고는 했다.

물론 보통 같으면 빨리 다른 길로 산책 가지고 떼쓸 나리가 할머니가 주시는 간식에 솔깃해서 그 자리에 눌러앉은 덕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요 작은 아이가 라라. 우리 집 나리의 뒤태.. 나리는 할머니의 어느 쪽 주머니에 간식이 들어 있는지 바로 알아채고는 한다.
함께 한다는 것의 기적.

그렇게 알게 된 나딘 할머니와 라라에게 처음 깜짝 놀란 것은 다름 아닌 그 둘의 나이였다. 작고 빠리빠리한 라라는 14살로 강아지 나이로는 이미 백세 가까운 할머니였고 뵙기에는 60대 후반 또는 많이 보아도 70대 초반으로 생각했던 나딘 할머니는 여든둘 되셨다고 했다.

갑자기 왠 난데없이 나이 타령 인가하면 그 둘의 인연의 시작은 나이 였기 때문이다.

 

나딘 할머니가 라라를 처음 만난 곳은 티어하임 에서였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키우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힘들어하시던 할머니에게 어느 날 아들이 티어하임(독일의 유기 동물 보호소)을 함께 가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에게 남은날이 이제 얼마나 더 될지 모르는데 강아지를 데려와 끝까지 보살펴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안 가시겠다고 했단다. 그러다 그 후에도 계속되던 아들의 권유로 티어하임에 있는 강아지들을 그냥 보기만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중에 한 마리가 그다음 날이 되어도 또 다른 날이 되어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고 잊히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다시 한번 티어하임을 방문하셨다고 했다.

그토록 잊혀지지 않았던 아이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한 번만 보고 와야지 했어요 그런데 라라가 내 품에 안기고 그 아이의 나이를 듣고 나서는 다시 내려놓을 수가 없었어요, 아마 영감이 살아 있었다면 잘했다고 칭찬을 했을 거예요" 라며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셨다.

독일 티어하임(유기동물 보호소)에 있는 유기견 들의 대부분은 다른 유럽 국가 들 예를 들어 불가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스 등에서 온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은 누군가 에게 버려져 그 나라 거리 여기저기를 떠돌 다가 구조되었고 그곳의 유기견 보호 센터에서 다시 입양도 안되고 더 이상 감당이 안되어 안락사 직전에 다시 독일로 구조되어서 넘어온 경우들이다.

요 샛 말로 사연 만렙인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의 건강 상태로 나이를 추측할 뿐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믹스견이기는 한데 어떤 견종들의 믹스견 인지 도 불확실한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 당시 라라의 추정 나이는 12세 강아지 나이로 고령이었으며 그 나이 되도록 그 아이의 견생은 아마도 우여곡절 품은 사연 많은 아침 드라마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그해 할매 강아지 라라가 나딘 할머니 댁에 입양이 되었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라 했다.



나딘 할머니는 귀여운 인형 같은 할매 강아지 라라와의 매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작은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루 네 번 라라와 산책을 다니며 나딘 할머니는 더없이 건강해지셨고 적막한 집안에서 라라가 내는 작은 소리들이 그분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우리는 일어 나기 어려운 일들 마치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기적이라 부른다.

나딘 할머니와 라라는 오늘도 그들만의 기적을 더해 간다.

소파와 창가에 앉아 햇빛을 쪼이며,, 낙엽 소복이 쌓인 거리를 산책하며,, 그렇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늘 함께 하는 순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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