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돌아다니기 #1 - 성수동은 붉은 벽돌이다

뚝섬, 성수동 골목 기행기

성수동, 조금 더 정확히는 뚝섬에 산지 25년이 다 되어 갑니다. 2000년 말 이사 올 때만 해도 주변이 온통 소규모 공장과 오래된 저층 상가, 단독주택, 빌라들 뿐이었죠. 밖에서 차 한잔 하려면 길 건너 상가에 있던 크라운베이커리가 유일했습니다. 지금은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성수동이 불과 20년 전만 해도 허름한 공장과 오래된 집들 뿐이었다면 믿어지시나요?

당연히 서울숲은 없었고 흙먼지 날리는 커다란 공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과천으로 옮긴 뚝섬경마장 자리였죠. 지하철은 2호선 뚝섬역만 있었고 버스 노선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 동네 원주민까지는 아니지만 25년이라면 뚝섬과 성수동의 변화를 지켜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최근 제 신상에 변화가 좀 있어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한동안 생각만 해오던 동네 주민으로서 뚝섬과 성수동의 현재와 변화하는 모습을 부정기적인 시리즈로 써갈까 합니다. 흔한 블로그에 소개되는 협찬이 의심되는 맛집 소개는 아닐 겁니다.


뚝섬은 섬이었다


뚝섬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후기 까지도 섬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에 보면 중랑천이 한강을 합류하는 지점에 둥그스름한 섬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대동여지도에는 저자도(楮子島)라고 쓰여있는데 닥나무섬이라는 뜻입니다. 강 건너엔 압구정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말씀으론 장인어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성수대교와 영동대교가 없던 시절에 당시엔 경기도 광주군이었던 현재의 강남에서 배 타고 강 건너 뚝도시장에 장을 보러 오셨다고 하시더군요.

바로 오른쪽엔 잠실처럼 뽕나무밭이 있었나 봅니다. 상림(桑林)이라고 쓰여있는 곳인데요. 강 건너에 봉은사가 있는 것을 보니 영동대교 북단, 지금의 건대, 화양리 일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해방 이후 한강 물길이 바뀌고 섬이었던 잠실이 육지가 되고 송파나루터는 막히면서 한강에 갈 곳 없는 물이 남쪽엔 석촌호수, 북쪽엔 건국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일감호가 됩니다. 아마 이때 뚝섬도 육지화(?)가 됐을 겁니다.


출처 : 대동여지도. 오른쪽 아래 타원형 섬이 뚝섬입니다. 저자도(楮子島)라 쓰여있는데 닥나무 섬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핫플레이스가 된 데는 서울숲이 한몫했지만 정작 서울숲 조성 후와 수인분당선 서울숲역 개통 후에도 한동안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좁은 골목이나 이면도로에 접한 건물에 작고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 젊은 디자이너와 공예가들의 가게가 조금씩 생기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곳이었죠.


서울숲 근처 대성갈비 같은 오래된 집도 있었지만 공장들이 나가면서 대림창고로 대표되는 대형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성수동스러운(?)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외관은 공장이나 창고를 유지하고 내부는 철거하다 만 것 같은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래된 공장과 창고 등의 외관을 유지하면서 내부가 힙하게 바뀐 카페, 음식점들이 생기면서 성수동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성수동스러움이란 외장재로 사용한 붉은 벽돌입니다.




70~80년대에 유행하던 외장재는 붉은 벽돌이었습니다. 당시 지어진 학교, 군 막사 등이 대부분 내부는 시멘트 블록으로 쌓고 외장재로 붉은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70년대 지어진 건물엔 그 이중벽 사이에 단열재가 없는 경우가 많아 제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 학교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습니다.

90년대 초 건축과 과제로 대학로에 가서 붉은 벽돌로 된 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을 답사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90년대 초중반 공병장교 생활을 할 때 많이 했던 공사가 뻬치카(내무실 별로 설치된 일종의 벽난로)를 때던 구형막사를 보일러를 때는 신형 막사로 바꾸는 작업이었는데요. 그때도 역시 내부는 시멘트 벽돌을. 쌓고 단열재를 설치하고 외장재로 붉은 벽돌을 쌓아 마무리했습니다.


199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 붐이 일어 외장이 유리, 금속 커튼월 건물이 많이 생기고 콘크리트로 된 건물이 주류를 이루면서 붉은 벽돌 건물은 과거의 유산처럼 점점 줄어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재건축, 재개발과 거리가 멀었던 성수동, 뚝섬 일대엔 여전히 붉은 벽돌 건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성수동은 구로동과 함께 서울에 남은 준공업지역이었기에 재건축할만한 대단지 아파트도 별로 없고 오래된 소규모 공장을 상업용 건물로 바꿀만한 유인요소도 없었지요.


그러던 중 합정동, 문래동처럼 싼 유지하는 비용이 더 드는 소규모 공장, 창고 등에 대림창고 같은 카페가 생기고 싼 임대료를 찾아 젊은 예술가, 오너 셰프들이 가게를 내기 시작한 게 지금의 성수동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은 여전히 붉은 벽돌 외장을 유지하고 있고, 동시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도 붉은 벽돌 외장재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건축심의 때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하면 인센티브를 주는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는 계속 변화하지만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축건물들이 경제발전의 초창기 현대 건축의 외관을 존중하며 세련되게 들어서면서 성수동스러움이 생겨났습니다.

오랜 건물과 새 건물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걷는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외지에서 성수동을 찾은 사람들에게도 여기가 성수동이구나 하는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네를 걸으며 마주치는 건물들의 몇 가지 사진으로 마무리합니다. 사진은 모두 제가 직접 찍었습니다.




1. 용도를 알 수 없는 신축건물 하나

준공은 된 듯한데 얼마 전 1층에 입주한 커피숍을 제외하면 외부 간판도 없어서 용도를 모르겠습니다. 어떤 회사의 사무실 같긴 합니다.

외장이 참 독특합니다. 왕복 2차선 도로에 면한 쪽엔 아주 작은 개구부들이 불규칙하게 뚫려있고 측면 창들도 크기와 위치가 불규칙합니다.

정면 파사드 위로 올라가면서 곡면으로 벽돌을 쌓고 야간조명을 위쪽 방향으로 해서 낮에도 그렇지만 밤에 보면 정말 독특한 외관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건물 뒤는 전층에 긴 발코니가 있는데 일본에서 흔히 보는 아파트나 업무용 건물 느낌도 납니다.

이렇듯 어느 쪽이 메인 파사드인지 잘 모르게 디자인 됐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디자인적 모호함도 건축가의 의도겠지요.

바로 옆에 얼마 전 재건축으로 인한 철거에 들어간 오래된 아파트 외장도 붉은 벽돌로 보입니다. 표면이 반짝반짝해서 벽돌인지 타일인지 아직 확신은 안 듭니다만 붉은 벽돌처럼 보입니다. 아파트 재건축이 되면 아마도 외장재는 콘크리트 위 도장으로 마감될 가능성이 높겠죠.

무엇에 쓰는 건물인고? 전면 파사드가 독특합니다. 1층에 카페가 있긴 한데 용도를 모르겠습니다
후면 (?) 파사드. 동쪽으로 난 창호와 2층 이상은 모두 건물 폭 만한 발코니가 있습니다.
바로 옆엔 재건축에 들어가 철거가 시작된 빨간 벽돌 외장의 아파트가 있습니다


2. 성동도시재생지원센터 / 사회적 경제지원센터 / 서울숲실버문화센터

도로 끝 모퉁이에 있던 작은 경로당 건물을 철거하고 9층짜리 공공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처음엔 너무 작은 부지라 어떤 건물을 지을까 했는데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부지를 아주 잘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인 외장은 유리 커튼월이 두드러지지만 측면, 후면은 벽돌 마감을 했습니다. 측면의 작은 개구부는 계단실과 화장실 창이 아닌가 싶네요.

측면 벽돌은 붉은색이라기보다는 황토색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따뜻한 색 계열이라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후면부는 검은색 벽돌인데 황토색 벽돌과의 색상 조화가 좋습니다. 밝은 색 벽돌의 면적이 어두운 색 벽돌 면적보다 넓기에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1층 필로티 위 전면 마감은 목재인데 역시 붉은 계열이라 주변의 붉은 벽돌 건물에 비해 그렇게 튀지는 않습니다.

골목 모퉁이 좁은 땅에 들어선 공공 건축물입니다. 색감은 달라도 옅은 붉은 벽돌 외장마감을 사용해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3. SM Artist & Music Center

코엑스에 있던 SM 타운이 서울숲 앞 D타워로 이전해 오면서 인근에 SM Artist & Music Center가 들어섰습니다. 아주 가끔 얼굴이 조막만 한 여성들이 밖으로 나오더군요.

상단부는 금속 패널과 유리 커튼월 마감인데 유리 커튼월은 모서리가 둥근 형태이고 전면부는 SM 로고를 형상화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건물 하부 마감이 붉은 벽돌인데요. 가까이서 보면 사이사이가 투과되어 보입니다.

철저히 외장 마감재로 사용된 더블스킨입니다. 첫 번째 건물처럼 곡면으로 돌출되게 쌓은 것도 독특합니다.

상하부의 프로포션이 조금 어정쩡한 느낌은 들지만 하부는 재료의 특성과 색상으로 인해 무거워 보이고 상부는 가벼워 보이기에 자꾸 보면서 적응을 했습니다.

SM이 운영하는 건물입니다. 1~3층까지 붉은 벽돌과 상부 금속+유리 마감재가 대비를 보입니다.


4. 서울숲 옆 골목의 어느 빌라와 신축 건물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붉은 벽돌 외장의 지상 3층, 반지하 1층의 빌라 건물과 마주 보는 위치에 신축건물 역시 붉은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주거와 상업용 건물이라는 다른 용도지만 신축건물 건축주와 건축가가 거리의 맥락을 유지하자는데 동의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주변 건물과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천천히 걷기 좋은 골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전봇대와 어지러운 전선입니다. 대규모 재개발이 아니라면 해결이 어려워 보이긴 하네요. 그래서 일본 주택가에도 여전히 전봇대와 전선이 많긴 합니다.

서울숲 옆 골목에 구축 빌라와 새로 지어진 건물이 모두 붉은 벽돌 외장재를 사용했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