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캉스. 농촌을 뜻하는 '촌'과 바캉스가 결합되어 나온 말입니다. 농촌에서 즐기는 휴가를 의미하죠.
최근 촌캉스 키워드가 확 뜨고 있습니다. 검색량을 알 수 있는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살펴보면 현재 사람들이 촌캉스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이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2024년 7월 기준)
촌캉스는 2021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었던 시절 생겨난 신조어입니다. 해외여행이 힘들어지며 국내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주목받았는데, 촌캉스도 그 중 하나였죠.
촌캉스는 2023년 앤데믹이 되어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았습니다. 2024년 4월까지로 범위를 줄여, 데이터를 살펴보면, 계속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촌캉스가 단기간의 유행을 넘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죠.
2024년 7월 시점에서 촌캉스의 급등은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이 원인입니다. "전현무·박나래 이어…요즘 스타들 줄지어 '촌캉스' 간다, 왜"기사를 보면 '나 혼자 산다', ‘이 외진 마을에 왜 와썹’ 등 다양한 예능에서 촌캉스를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촌캉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촌캉스를 다루기 시작하며 더욱 시너지가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송 기획자 분들이 트렌드를 잘 캐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촌캉스'가 엔데믹 이후에도 계속 주목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의 휴가라는 뜻의 촌캉스에 모든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휴가란 과연 무엇일까요? 휴가는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래서 보통 두가지 방식으로 휴가가 이뤄집니다.
첫째, 휴식입니다. 학생은 매일 같이 가던 학교를 가지 않고, 직장인은 회사를 가지 않습니다. 일상의 공간인 집에 있는 것은 같으나, 의무의 시간은 보내지 않기에 소극적 형태의 벗어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탈출입니다. 오늘 하루는 다시는 오지 않을 하루이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추상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24년 7월 28일(일요일)을 사람들은 2024년 7월 28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요일로 인식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 년을 구성하는 365일은 각각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일,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라는 7일로 축약됩니다. 그러면 삶이 비슷비슷하고 반복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지루함, 답답함이 오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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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반복되는 일상에서 쉼표, 느낌표를 주는 행위가 바로 탈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탈출 방법은여행입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지루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여행보다 해외 여행을선호하는 것도 더 큰 새로움을 느끼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호캉스를 즐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호텔이라는 고급스러운 낯선 공간을 가기 때문에 휴가인 것입니다.
그러면 촌캉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농촌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가서 새로움을 느낀다는 것이죠. '농촌이 낯설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농촌은 보통 일상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촌캉스라니..? 짐작하셨겠지만, 촌캉스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농촌'과 '일상'이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촌캉스는 한 가지 중대한 사회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수도권 집중, 지방 소멸이라는 양극화입니다.
1960년 한국의 도시화율은 39.15%였습니다. 이때 농촌에서 휴가를 즐긴다? 결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그 누구도 생업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휴가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직장인이 연차를 내고, 회사에 가서 있는 꼴이죠.
그래서 촌캉스는 있어도, 도캉스는 없습니다. 도시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호텔에서 즐기는 호캉스, 한옥에서 즐기는 한옥캉스라는 식이죠.
하지만 1960년대와 2020년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며 모두가 도시에서 살게 되고,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대부분의 청년 세대에게 농업은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높아진 도시화율을 넘어,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길 지경이 되었죠.
일상의 공간은 재밌지 않습니다. 만약 농촌에 내려가서 해보는다양한 활동이 생계를 위해 매일같이 해야하는 일이었다면 과연 재밌었을까요? 평소에는 하지 않는 '낯선 행위'를 단기간 동안 '체험'하면 되니까 재밌는 것입니다.
농촌과 똑같은 케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자연'입니다. 본래 자연은 투쟁의 공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호랑이, 늑대, 곰 등 온갖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산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옛 조상들은 가족을 위해 산에서 나물을 캐고, 나무를 잘라 장작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너도나도 할거 없이 자발적으로 산을 올라 '등산'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부터 벗어나게 되니, 오히려 자연이 멋있어졌습니다. 빌딩만 가득해지니 자연을 즐기기 위해, 건물 사이사이에 공원을 짓고 산책을 합니다. 자연과 거리를 두게 되니 오히려 자연이 '휴식'의 대상이 된 것이죠.
농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할 때만 잠깐 가서 체험하고, 여행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농촌이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출처 : 썸트렌드 (2023년, 블로그+트위터+인스타그램)
실제로 빅데이턴 분석서비스 썸트렌드를 통해 농촌 관련 연관어를 살펴보면 10위로 '농촌체험', 12위로 '프로그램', 15위로 '관광'이 등장합니다. 도시의 입장에서 타자화된 농촌의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저출생, 수도권 집중현상으로 지방 소멸은 필연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지역에서 사는 정주인구보다 지역을 방문하는 생활인구가 더 중요해지는 현실에서 앞으로 농촌은 지금보다 더 일상이 아닌 체험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촌캉스'가3~5년 동안 주목받는 트렌드가 아니라,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될 메가 트렌드라는 것이죠.
이미 검색량만 봐도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촌캉스에 대한 검색량은 2022년 이후 농촌을 뛰어넘은지 오래이며, 최근에는 아예 상대가 안될 정도로 높아졌죠. 이미 도시의 사람들에게 시골은 농촌이 아니라 촌캉스의 대상인 것입니다.
현재 급증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곧 사그라들 것입니다. 아마 추후 데이터적으로 보았을 때, 2024년 2분기~3분기에 촌캉스 키워드가 순간적으로 급증한 것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이전 수준을 회복하더라도, 크게 보면 결국 우상향하는 그래표를 보일 것입니다.
물론 더 길게 보면 아무리 메가 트렌드라고 해도 평행선으로 바뀔 것입니다. 인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인구가 적어지기 때문에 상승 추세가 아니라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트렌드가 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촌캉스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주목할만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농촌에서 바캉스를 보낸다는 의미가 아닌,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다양한 산업에서 다른 맥락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