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강화회의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충돌 (1)
1차 세계 대전은 유사 이래 가장 큰 전쟁이었고, 무엇보다도 거의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친 첫 전쟁이기도 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심지어 오세아니아 사람들도 싸웠다. 병사만 900만 명이 사망한 이 전쟁의 파급력은 진정 세계적인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 결과 역시 어떤 방향으로든 국가들과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마거렛 맥밀란도 지적하듯이, 이 때 결정된 많은 일들은 각각 그 나름의 역사적 결과를 낳았고, 그 중 가장 충격적인 단기적 결말이 바로 제 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영향력은 또 다른 세계 대전의 발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 지도의 어떤 자리에, 어떤 국가가 들어서고, 어떠한 국경선이 그려져,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되는지까지 뻗치고 있다. 어쩌면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6개월이었다고 과언이 아닌 그 시간, 1919년 1월에서 6월까지, 10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이 역사의 주인공은 미국의 우드로 윌슨, 영국의 로이드 조지,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이들은 각자의 목표와 희망을 가지고 파리에 들어왔다. 특히 바다 건너 파리까지 온 윌슨 대통령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뜨거웠다. 최종 승리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나라의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유럽의 전후 복구에 가장 큰 힘과 지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왼쪽부터 영국의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올란도,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미국의 우드로 윌슨. 흔히 이들을 줄여 Big 4, 그리고 승전국 회담을 Council of Four 라고 부른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Big_Four_(World_War_I)#/media/File:Big_four.jpg
우드로 윌슨은 미국 남부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국제정치학으로 유명한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분명 세계 정세와 외교에 관해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후 세계를 뒤바꿔놓은 두 가지 아이디어와 함께 파리에 입성한다. 하나는 그 유명한 민족자결주의. 각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그 때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던 이야기. 그것을 국제 정치의 기본 질서로서 처음 들고 나온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민족자결주의만큼 강력한 영향을 후세에 남겼다고 지나치지 않은 "국제 연맹" (League of Nations) 이라는 아이디어였다. 세계 정부와 유사한 권력체를 만들어서, 개별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거나 다른 국가를 착취하는 등의 일을 막겠다는, 이른바 글로벌 경찰국을 창설한다는 발상이었다.
200여 개의 민족국가와, 이들의 국제 연합인 UN으로 구성된 세계 질서가 익숙해진 오늘날, 민족자결주의와 국제 연맹이 당시 얼마나 혁명적인 생각이었는지를 느끼긴 쉽지 않다. 예컨대, 프랑스 수상 클레망소는 "좋은 생각인 건 알지. 근데 그게 될까?" 하며 힐난했다. 무려 몇 달 전까지 독일과 생사를 넘나드는 참호전을 벌였던 프랑스로서는 간단히 납득하기 힘든 생각이었다. 거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으로서 자신들의 관할 아래 수십 개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오로지 식민 통치 아래 신음하던 약소 민족들만이 환영하는, 새로운 국제 정치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윌슨의 찬란한 이상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몹시도 차가웠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미국이 껴안아 주어야 할 승전국들은 자신들의 식민지를 늘리면 늘렸지, 절대 해방시켜주고 싶지는 않았다. (양차 대전에서 모두 승전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해방되기 시작하는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도 한참 후인 1950년대 후반에 가서이다.) 한편 프랑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소 민족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보다도, 당장 옆에, 영토와 인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무서운 이웃 독일이 다시는 프랑스를 침범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독일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을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어야 했다. 이는 당연히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방안이었다. 또한, 영국과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누가 세계의 해군 패권을 손에 쥘 것인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인종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앞으로 글을 써 가면서 더 중요한 주제로서 등장하겠지만,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스스로 직면해야만 했던 딜레마는 바로, 어디까지가 민족이며, 자신의 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도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 그리고 얼마 전 독립한 남수단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어디까지가 민족이며, 민족국가를 가질 자격이 되는지는 너무도 첨예한 정치적 이해와 국제법적 논리가 대립하는 사안이었다. 하물며,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민족"들... 리투아니아인, 라트비아인, 그리고... 당연히 한국인... 등이 난립해 자신들의 국가를 호소하던 1919년. 그 복잡한 현실 속에서 이 이상적인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 나가는가는 정말 몹시도 어려운 문제였다. 클레망소, 윌슨, 조지는 기존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세계에 어떤 질서를 세워나갈 것인가, 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들이 그렇다면 어떻게 세계 질서를 짜나갔는지, 앞으로 하나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