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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같은 네 얼굴 [3]

내 딸 서영이는 캠퍼스 패셔니스타

by 패셔니스타

서영이가 없는 쓸쓸한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일요일이 되었다. 친정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두 분을 모시고 서영이 학교로 향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혹시나 감기라도 들까 싶어 간절기에 입을 수 있는 외투와 지난번 부족하다 싶어 봐 두었던 생활용품을 챙겨 우리는 마치 소풍 가듯 길을 나섰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몇 달에 한 번씩 외손녀 얼굴을 볼까 말까 했던 부모님도 지난 일주일이 7년 같았다고 하셨다.


이른 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때 이른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캠퍼스를 누비는 여대생들을 보니 내 가슴도 뛰었다. 기숙사 앞에 도착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영이에게 전화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밤색 가죽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웨이브 머리를 휘날리는 웬 아가씨가 기숙사 입구에서 나왔다. 우리는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 긴가민가하며 살펴보았다. 그 아가씨가 몇 걸음 앞으로 성큼 다가오고서야 우리는 그녀가 서영이라는 걸 알았다.


“응? 서영이 맞잖아.”


“아이고, 아가씨가 다 되었네.”


“먹는 게 시원찮나,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우리는 한 마디씩 보태며 아이의 손을 덥석 잡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이리 보고 저리 보았다.

집에서 학교 다닐 때 아이는 얼굴에 뾰루지 한 번 나지 않았건만, 겨우 일주일 만에 얼굴 여기저기가 부르터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낯선 곳에서 혼자 세끼를 챙겨 먹느라 애가 달았을 아이의 생활이 눈에 선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보금자리까지. 딸아이를 성장시킨답시고 너무 용쓰게 만든 건 아닌지 우리의 선택에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원래 학교 밥이 양만 많아서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파요.”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아이의 얼굴이 축났다며 걱정하는 부모님께 남편이 변명하듯 말했다. 학교 밖으로 나와 집밥 같은 든든한 점심 한 끼를 사 먹이고 다 같이 서영이가 거처하는 기숙사 방으로 몰려갔다. 방을 찬찬히 둘러보시고는 생각보다 넓고 쾌적하다며 오히려 안도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나는 매의 눈으로 옷장과 욕실, 서랍을 열어보며 정리 상태를 확인했다.


실내 건조대에 널려 있는 옷가지를 보니 빨래도 한 번 한 모양이었다. 손끝이 맵지는 않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공간을 잘 건사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일요일 오후 일정이 있다는 서영이의 말에 우리는 서둘러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입소하던 날 너무 정신이 없어 아이를 한 번 안아주지도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길가에 죽 늘어서서 차례로 아이를 안아주었다.


“잘 있어.”


“또 올게.”


“사랑해.”


“엄마 아빠는 항상 네 뒤에 있다.”


“우리 서영이 잘할 수 있을 거야.”


“우리 딸 최고.”


“전화 자주 할게.”


머리에 떠오르는 용기백배의 말이란 말은 모두 꺼내 아이에게 전했다.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친정엄마는 다시 눈물 바람이었다.


“올 때는 소풍 같았는데, 어린것을 두고 오려니 마음이 너무 쓰이네.”


엄마는 손수건을 꺼내 자꾸 눈을 비비셨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도 눈물이 따라 괴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한나절이 훅 지나버렸다. 딸아이를 만날 생각에 잠깐 봄이었던 마음은 어둑해진 집안의 불을 모두 밝히고 난방 온도를 아무리 올려도 여전히 한 겨울이었다. 대충 씻고 저녁도 거른 채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책을 펼쳤다.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서영이 어머님, 오늘 다녀가셨다고 들었어요.”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오늘 한번 들렀어요.”


전화 통화 소리에 남편은 세수하다 말고 뛰어나와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었다. 일주일 만에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대동하고 학교를 찾은 극성맞은 부모 소식이 선생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서영이는 너무 잘 지낸다며 아이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깨우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고 여느 아이들은 거르기 일쑤인 아침밥도 꼭 챙겨 먹고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룸메이트와 장단이 잘 맞아 어딜 가든 함께 한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안도했다. 학창 시절 늘 혼자였던 아이에게 든든한 친구들이 생겼다니 한시름 놓였다.


“그리고 어머님, 서영이는 우리 학과 패셔니스타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영이가 옷을 진짜 패셔너블하게 입더라고요. 매일 옷을 다르게 매칭해 센스 있게 잘 입어요.”


패션은 모르쇠인 엄마를 대신해 멋쟁이 이모들이 솜씨를 발휘한 새 옷들이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딸내미가 패셔니스타란 말에 패션 테러리스트인 엄마의 기분은 하늘을 찔렀다. 옷만 바꿔 입을 줄 알았지 빨래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기색을 비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빨래도 제일 열심히 합니다. 일주일 새 벌써 두 번이나 했어요.”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 웃음이 터졌다. 우리 딸이 패셔니스타라니. 휴일인데도 일부러 전화하여 소식을 들려준 선생님께도 감사했지만, 어딜 가든 씩씩하게 제 할 도리 다 하여 우리의 걱정을 한 방에 날려 준 서영이가 너무 대견했다.


“우리 딸 소원 이뤘네. 대학 가서 살 빼고 예쁜 옷도 입고.”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창밖을 보니 반달이 떠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저 달처럼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으려나. 달덩이처럼 뽀얀 딸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우리는 창가에 서서 오래오래 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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