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포스터, 정영선 조경가, 7인 미국현대사진전, 힙노시스, 풀케홀름
5월 - 6월 사이에 본 전시 모음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
정영선 조경가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전
도시연대기: 7인의 미국 현대 사진 그룹전
힙노시스 Hipgnosis : 롱플레잉 스토리 전
Poul Kjaerholm <풀 케홀름> 전
5개 전시에서 느낀 공통점
상상을 현실화 시킴
실용적 분야를 미학적으로 구현
유한한 팀 활동 (Team 4, 포스터 연합, 힙노시스, 결은 다르지만 코펜하겐 가구 제작자 협회)
본인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가 왔을 때 받아들임, 혹은 본인이 새로운 시도를 함
다각도로 컨셉을 분석하여 숙고 끝에 나온 통찰력
똑똑한 사람들이 머리 맞대서 낸 팀플 결과물의 짜릿함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
노먼 포스터 건축가를 주축으로 진행된 건축 프로젝트들에 대한 전시
- 바닥, 천장 포함 사방으로 틀어준 건축 공간
- 정말 정교했던 목업들
- 건축 별 스케치 단계, 특히 단면도가 인상적이었음
인상 깊은 획기적인 작업 속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맨체스터 매기 센터(링크)' 프로젝트나 '술리스 병원 배스(링크)' , '펜 환자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보며 예전에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루이스 도메네크의 '산 파우 병원(링크)'을 떠올리기도 했고, 정영선 조경가의 '서울 아산병원 조경' 프로젝트도 연결 지어 생각하게 했다.
아마 나의 직업 상 관심이 더 갔던 것 같다. 저런 데서 일하면 어떨까 한번 일 해보고 싶다는 생각, 정말 필요한 곳에서 건축이 제 역할을 한다는 생각, 저런 정교한 생각이 구현되려면 많은 이해관계가 같은 눈높이에서 공감해야 되겠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현재 용산 역사박물관(링크)으로 사용 중인 건물이 과거 1928년에 만들어진 구 용산철도병원이었는데 박물관 한편에 수술방 일부를 그대로 살려두었다. 당시 병원 건축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때도 환자들을 고려하여 흔치 않은 옥상정원을 설치하였고 수술방이 연한 핑크색과 민트색 타일로 이루어져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위생과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다음에 여기 나열한 병원 건축들에 대한 포스팅을 다시 자세하게 한번 써봐야겠다.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이건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쓰는 지극히 사적인 입장임을 먼저 밝힙니다.)
전시를 보는 동안 가장 생각이 많았던 전시이지 않을까 싶다.
잘 모르지만 비교적 사이드에 있었을 것 같은 조경건축을 어떻게 이렇게 끌어낼 수 있었을까?
인내심이 더 필요한 걸까. 추진력이 더 필요한 걸까. 어떻게 그 당시 관료들을 설득했을까. 저렇게 밤낮 지새우며 찾아가며 해야 되는 거면 내가 그만큼 절실하지 않은 걸까. 이제 막 걸음마 뗀 주제에 너무 빨리 성과를 바라는 걸까.
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졌을 조경 분야를 중요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게 정말 어려웠을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 60-7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 효율성, 생산성이 중요했을 시기인데, 불모지 영역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교수와 현업을 뛰며 안목에 따라 심심하다 여길 수 있는 '검이불루 화이불치'를 계속해서 해나간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이게 처음 가진 생각이었지만, 전시를 보면서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저만큼 하면, 저만큼 해야 가능하구나..'
컨셉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그 외에 생물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땅의 지세와 물성을 이해하고, 어떤 식물을 심어야 하고 생명력이 유지되기 위해 어떤 환경을 구축해야 할지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가시적으로 '조화로운 아름다움'도 구상해서 상대방들을 설득해야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 공부하고, 일에 투자했을지.. 상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저걸 다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는걸 그냥 다 해나가면 되는구나' 싶은 안도감과 위안이 들면서도 '결국 저걸 다 해야 되는 거구나'라는 압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불평한다고 일이 풀리는 건 아니고, 결국엔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없으면 만들고, 막히면 설득하고, 모르면 배우면서 묵묵하게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이룰 텐데, 핵심은 이거였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것을 다 해낼, 감당할 자신이 있니?' 스스로 솔직하게 물어보고 답해야 될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도시연대기: 7인의 미국 현대 사진 그룹전
7명의 작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내 눈길을 잡았던 작가는 다니엘 아놀드(Daniel Arnold, 인스타그램)였다. 작가가 사진으로 표현하는 따뜻하지만 쨍한 질감 속에서 인물들이 모두 활력 있고 경쾌했다. 살아있는 장면을 포착하는 그 시선이 좋았다. 사진전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처음에 잘 몰랐다. 그런데 7명의 작품을 보면서 어렴풋이 아 이런 걸 보면 좋겠다 싶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사람은 다 지맘대로 생각하면서 사는구나를 느낀다. (물론 인지심리학에서는 그 '지맘대로'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걸 찾는 것이 묘미인 것 같지만..! ) 같은 일이 발생해도 각자 주의를 끄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장면을 모은다. 그래서 함께 추억을 회상해도 각자 기억의 조각이 다르다.
사진작가도 그런 것 같다. 그 사람이 찍은 찰나, 시선을 사진작품으로 보면서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타인의 시선'을 간접 체험해 보는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시선,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다시 자각해 볼 수 있었다.
힙노시스 Hipgnosis : 롱플레잉 스토리
'내가 생각하는걸 세상에 펼쳐볼 테야!' 그 객기를 현실에서 부려본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힙노시스전은 그런 차원에서 대리만족도 가져다주었고 보는 내내 통쾌함도 느꼈다.
돈이 되는 분야에서 내 머릿속 생각을 나와 다른 장점을 가진 동료들과 협업해서 결과물을 내고, 거대 자본을 상대로 속된 말로 개기기도(..!) 하고, 설득도 하며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그 과정이 보면서도 짜릿했다.
앨범 재킷커버 보는 게 좋아서 레코드 가게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 정사각형 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항상 자유로이 느껴졌다. 컨셉이 확실하고, 즉각적이고 선명한 이미지가 좁은 공간에 몇 만개가 있으니 작지만 다차원의 우주에 내가 속해 있는 기분이 좋았다. 특히 학창 시절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니까 그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이 전시가 더 좋았던 이유는 '객기'를 부리던 2030인 그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삶은 '반짝'만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반짝이는 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책임져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선 지속 가능한 자금이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풀어가야 할 인간관계도 많고,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되는 순간도 온다.
힙노시스는 3명의 멤버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오브리 파월만 살아있다. 힙노시스가 활동했던 기간은 15년이었으니까 길다면 길지만, 내 생각보다 길지도 않았다. 파월은 그들의 화려하고 열정적이었던 순간과 그 스피릿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힙노시스의 이야기를 다큐로 담은 안톤 코르베인 감독의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링크)' 다큐 인터뷰에 참여하고, 전 세계 전시에도 참여하고 있다. 아마 이것이 지난 동료들을 기리는 그만의 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좋은 팀을 만들어 오래 영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시대에 유산을 남은 많은 그룹, 인물, 회사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곳들도 많다. 그 기간이 유한하다고 해서 꼭 슬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운대가 맞고, 열정적이었던 그 순간을 행운으로 여기며 짧고 굵게 몰입해서 보내고, 때가 되면 잘 보내주는 것이 '인생을 더 살아있게 보내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oul Kjaerholm (풀 케홀름)
덴마크 가구 시장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19세기말 ~ 1차 세계대전 사이 늦은 후발 산업화로 인해 전통 공예적 접근이 비교적 오랫동안 보존 됨
1924년 코펜하겐 미술공예학교 가구 디자인 학부 설립 (건축가 카레 클레르의 의지로 일궈냄, 건축학부와 활발히 교류)
1927년 풀 케홀름의 스승이던 한스 J. 베그너가 활동할 당시에 코펜하겐 가구 제작자 협회 설립
1949년, 미국에서 덴마크 가구 제작자 협회의 연례 전시회를 취재했고, 2차 세계대전 직후 삶을 재건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욕구에 충족했던 것이 '자연스러움과 섬세함'을 반영한 덴마크 가구였음
소재를 최대한 살리려는 풀 케홀름의 가치관.
'스틸 소재, 무거운 가구, 낮은 눈높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공간의 여백을 마련하고자 했던 노력.'
목재 중심이던 덴마크 가구 시장에서 스틸 소재의 가구 컬렉션을 만들었던 풀 케홀름의 고민과 흑백 사진에서 컬러로 넘어가던 미국 현대사진작가들의 고민은 다른 듯 유사했을 거라 생각한다. 산업화를 지향하는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을 때 '내가 원하는 바 (소재, 형태) vs. 실현 가능성 (규격화, 분업화)' 사이를 푸는 게 참 답답한 과정이었을 것 같다. (물론 성격에 따라 재밌었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 프리츠한센에서 졸업작품 산업화가 무산되었을 때, 다시 조교 활동을 하면서 목수였던 자신만의 '기본'으로 돌아간 후 스승 폴 케홀름에게 소개받은 가구 유통업자 에빈드 콜드 크리스텐센과 함께 , '합리적 가격에 고품질 가구 만들기'라는 본인이 풀고 싶었던 사회적 목표를 계속해서 지향했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합리적 가격은 사실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좋은 가구를 평생 쓰고 물려준다'는 아이디어로 갈음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현실적 이어 보이는 목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예술적 감각이 깃든 가구의 시장성'을 지키고자 끝까지 노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브랜드 라벨에 적힌 '숫자'의 의미를 언급하였다.
0부터 23의 숫자들은 각각 브랜드의 제품군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22번이 동그라미로 쳐져 있으면 그 제품은 신발 라인을 나타내고, 0번이 동그라미로 쳐져 있으면 핸드메이드 라인인 ‘Artisanal’ 컬렉션을 의미합니다.
출처: Pointout (링크)
메종 마르지엘라는 익명성과 팀의 성과를 내세우기 위해 숫자로 라인을 표현하였고 풀 케홀름은 카레 클린트의 '유형론'에 따라 자신의 가구 컬렉션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두 사람이 해당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는 달랐지만 이 접근은 지금 많은 '개인화 건강 솔루션'이 진행하는 그룹별 솔루션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풀고 싶은 '각종 식단, 식사 행동 솔루션' 역시 '모든 가구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재료와 기술의 차이만 있을 뿐 보편적인 규칙에 따른 형태를 갖춰야 한다(전시 내용 중)'처럼 관통하는 규칙을 찾고 그것에 따라 분류했을 때 혼선은 줄어들고 기본 골격은 드러나서 근본이 더 중요하게 메세지화 될 거라고 생각한다.
왜 이토록 북유럽 가구는 전반적으로 시장성과 장인정신을 유지하며 결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난 그게 항상 궁금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된 건 후발 산업화 덕분에 업계가 기술 고도화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코펜하겐 가구학부 출신', 즉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한 집단이 유사한 지향점을 바라보았다는 것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활동 시기에 본인이 '대세'인 집단에 속해있었다는 것은 유리한 입지이기도 하다. 역사적 상황, 그들이 추구하던 목표, 어떤 분야가 확장하기 위해서 함께 으쌰으쌰 했던 각기 다른 역할의 사람들 (가구 유통업자, 교수, 디자이너, 사업가) 등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장르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각 전시를 볼 수 있는 곳
노먼 포스터 건축가 - 서울시립미술관
정영선 조경가 - 서울현대미술관 MMCA
7인의 미국 현대 사진 그룹전 - 현대카드 DIVE
Hipgnosis 디자인 그룹 - 그라운드시소 서촌
Poul Kjaerholm (풀 케홀름) - 하우스 오브 프리츠한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