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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데이터를 다시 꺼내 보며

잘하지 못했던 과거를 다시 마주할 땐, '극복'보다 '안정감'을

과거에 실패한 것, 잘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마주할 땐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용기'를 내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내 의지가 원하는 욕망을 이길 정도로 강하지 않으니까 극복하지 못하는 거라고 탓하기 바빴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도전은 수치심을 참아내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못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쪽팔림을 견디고, 누군가가 구박하고 지적해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집중해야 진짜가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참 무자비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다 극복하고 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평생에 걸쳐 도전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악을 쓰지 않는다. 되려 감정적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안전한 구조 속에서 차근차근 키워가는 편이 더 많다.


같은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 "이거 왜 못해!"라는 피드백 구조에 속한 사람과,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아"라는 피드백을 받은 사람이 재시도를 거듭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은 다를 수밖에 없다. 누를수록 게이지를 쌓아서 불태우는 방식은 단거리 레이스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끝을 모르는 장거리 레이스에서는 넉다운되기 십상이다.


전공이 바뀔 때마다, 병원, 학계, 산업계를 옮길 때마다 무얼 하든 미숙하고 못한다는 마음이 눈덩이가 커져서 내 자아의 중심을 차지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그 또한 참고 이겨내는 것이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 덜 경직된 상태에서 도전을 했다면 더 빨리 회복 탄력성이 강화되었을 텐데, 합산해서 깨닫느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예전보다 시도할 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희한하다.

이유를 알면 납득할 수 있어 괜찮고, 이유를 모르면 그렇게나 불안하다. 앞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도전이 내 앞에 찾아올 텐데 너무 늦지 않게 선물을 받아 다행이다.


올 초에 투고했던 논문이 떨어지고 다시 AI 학습 모델을 공부하며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못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즐거운 긍정의 몰입 과정이 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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