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폭주 기관차, San Francisco의 진위여부 파악 여정
뉴트리셔스 스튜디오 & Lab. 을 운영한 지 올해가 햇수로 5년째였다.
영양 콘텐츠 제작으로 시작했던 뉴트리셔스는 클라이언트 분들을 위한 1:1 컨설팅과 그룹 워크숍을 주요 서비스로 삼으며 운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영양사/의료보건 관내 선생님들을 위한 강의나 프로그램 개발, 헬스케어/공공복지 서비스 모델 자문 업무 비중이 자연스레 증가했다.
헬스케어, 의료 보건 영역 주축 중 하나인 영양 파트 전문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며 기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즐겁게 일을 하였다. 그런데 '5, 10, 15' 같은 숫자를 보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괜히 지난 시간을 한번 돌이켜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데, 뉴트리셔스 스튜디오 & Lab. 를 시작했던 때를 떠올려보니 생각의 시간이 한번 필요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한 업무는 표면적으론 다양해 보일지 몰라도 산발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분석해서 메커니즘,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뇌관을 발견해서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했다. 문제가 안개처럼 보일수록 승부욕이 생겨 명료한 흐름을 찾을 때까지 집요하게 매달리는 습성이 갈수록 커졌던 것 같다.
나는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다면 제1원칙을 찾아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편이다. 여전히 견고한 과정이나 결과물, 원칙보다 더 좋은 해결책이 있다면 우리의 목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니 그것을 우선으로 적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기질이 의료 보건 영역에선 조심해야 될 요소다.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전문가가 따르는 프로토콜은 보수적이어야 하고 섬세하게 파악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영역 역시 과감한 혁신이 있고 필요하지만 호흡이 길다. 전 세계 다양한 인종, 나이, 상황, 질환/식단/약물과의 상호작용 등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서 반영되어야 하니 길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높은 타율, 이왕이면 넓게 적용할 수 있으면 무언가를 바라는 입장에서 아쉬움이 늘 있었다. 나는 항상 프로덕트나 범용적으로 널리 적용 가능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서비스가 개인화가 가능하길 바랐고, 그걸 시도한 2018 ~ 2020년은 비교적 일렀다. 그래서 몇십 가지 세부 카테고리로 쪼개서 개인화라고 칭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담 데이터를 모으고 싶다는 취지로 한발 물러나 지금의 스튜디오 & 랩을 운영하며 임상적 지식과 경험, 연구 깊이를 쌓아가던 동안 세상이 뒤바뀌었다. 나는 영양학 중에서도 질환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분야인 임상 영양학을 추가로 공부하였고 심리학과 교수님께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배우며 인간의 복잡한 인지 과정과 행동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시뮬레이션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음식 분야에 접목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성장했지만 지난 5년 동안 AI가 연구실에서 세상으로 나온 속도는 엄청났다. 21년도에 일반지능개발 수업 중 자연어 처리(NLP) 방법 중 하나라며 소개받은 GPT가 2년 뒤 우리 부모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데이터 사이언스 학과에 발을 걸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시차가 아쉽다.) 그렇게 바이브 코딩, AGI 등 관련 용어와 버전 업데이트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체감하던 무렵, 올 9월 메타에서 Meta Ray-ban Display AI 스마트 글라스를 발표했다.
AR, XR 기어가 아니라 데일리 착용이 가능한 스마트 글라스 출현 속도는 다소 당황스러웠다.'언젠가 기술이 가능해지면'이라며 묵혀둔 솔루션들이 사실은 다 구현 가능한 수준인데 내가 안일하게 생각하고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매달려 있는 문제를 해결할 기술 타이밍이 왔는지, 늦진 않았는지, 뉴스와 소셜미디어로 접하는 AI 속도가 진짜인지 등 진위여부를 확인하고자 비행기에 올라탔다.
약 3주 간 샌프란시스코와 동부 일부 지역을 방문하며 2019년, 2023년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그때처럼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게 빈틈없이 다니려고 했고, 모아놓고 보니 한 달 사이 약 20곳 정도를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하며 경험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지금까지 '이건 내가 못해, 누군가 해주겠지,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름대로 주체적으로 실행하며 진척 중이라 생각했다. PM 했고, 연구 데이터 분석 차원에서 무슨 내용인지는 아니까 더 심화된 기술적 능력은 빌어서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포지션인 사람들이 해커톤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구현 능력을 키운 걸 보면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다면 발 담그고 안되네 하고 뺄게 아니라 될 때까지 푹 적셔서 해내야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12월 2일
돌아온 지 한 달이 된 지금, 그 사이 나는 빠르게 프로토타이핑 해서 결과물을 내는 방식에 적응하면서 프로토타입/MVP 5개를 직간접적으로 만들었고, 미국에서 메타 Ray-Ban Display glasses를 사 와서 Meta quest developer hub를 테스트해 보면서 waiting list에 등록해 둔 display glasses developer kit를 기다리는 중이다.
3주 간의 내용에는 많은 정보가 있어서 조만간 브런치 멤버십이나 유튜브로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해보려고 한다.
6년 전 다니던 스타트업 회사 홍보 영상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최대한 사람들이 본인의 상황에서 괴리감이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제안하는 입장이 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vDokJLDrFm4
지금 프로덕트 제작의 초점도 마찬가지다. 한국 비건 인증원이나 위허들링, 뉴트리셔스 스튜디오 & Lab. 까지. 내가 지금껏 회사를 만드는데 참여하거나 연구할 때 초점은 항상 비슷하다. 사람들이 음식을 다룰 때 (사고, 행동) 기본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니 '의지'와 '정답'보다 '대응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비건식품 같지만, 실제 성분은 아닐 수 있으니 전문가들이 먼저 인증을 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마크를 붙이자.
여유를 가지고 음식을 선택할 수 없는 아침, 점심시간은 음식 고르는 게 머리 아프니 습관적으로 음식을 먹는다. 그러니 식사기록을 바탕으로 음식을 추천해서 자판기로 제공해 보자.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매번 음식을 계획하고 고사할 수 없으니 PT나 명상 수업처럼 일주일에 1번 식사 패턴을 돌아보고 정리해서 계획을 세워보자
이제는 필요한 순간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식을 기술적으로 구현해 보자는 것이다. 식사를 '강박적으로 관리해야 건강해' 혹은 '그냥 마음대로 먹다 갈래'가 아닌 중간 회색지대에서 적절히 해결하는 시스템을 온오프라인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조금 더 상상 속 모습대로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2025년을 마무리 짓는 12월, 사무실 책상에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어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