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성폭력 가해자인 오빠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내는 참회의 편지. 흔치 않은 친족 성폭력 가해자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당신은 나의 여동생이지만 나는 당신에게 몇 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존댓말을 해왔습니다. 그건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속죄의 한 방법입니다. 벌써 당신을 못 본지 15년이나 흘렀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항상 궁금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날 믿지 못할지도 모르겠지요.
물론 나라도 그럴 것입니다. 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테고 내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을 테고 나라는 사람을 아예 기억에서 없애고 싶을 테지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당신은 어릴 때부터 언제나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지금은 나라는 사람 때문에 생긴 고통에서 벗어나 더 이상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정말 그렇기를 마음속 깊이깊이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처음 이 말을 당신에게 전화로 한 뒤 얼마나 많이 마음속으로 했는지 모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내게 ‘그럼 이제 진짜 얼마나 오빠가 나한테 큰 잘못을 했는지 아는 거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진짜 잘못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또 당신은 말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내가 널 오빠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절대 서운해하지 마. 그게 당연한 거니까. 내가 얼마나 그일 때문에 사는 게 힘들었는지 넌 내가 아닌 이상 모를 거야.’라고 꺼져가는 목소리로 덧붙였습니다. 마지막 말은 너무 작아 들리지도 않았지요.
나는 그때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알았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뒤로도 난 계속 당신과 다시 ‘오빠와 여동생’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마음 한켠에 두고 완전히 버리지 못 했으니까요. 특히 이 통화 뒤로 당신이 독립 생활을 끝내고 다시 어머니와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당신과 다시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들었다면 그야말로 펄쩍, 뛰었겠지만 나는 당신과 정말 다시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날 오빠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내게 당신은 몇 명 남지 않은 가족이고 여동생이었으니까요. 물론 그 인연을 먼저 끊은 건 바로 나였습니다.
10대 시절 난 사는 게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과 괴로움에 휘둘리다가 당신마저도 크게 상처 입혔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6살이나 어린데, 나는 당신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몇년간이나 했습니다. 당신은 어린 시절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는데, 처음 그때 당신은 9살이었고 나는 15살이었습니다.
몰랐습니다.
나는 그땐 그게 잘못인지 몰랐습니다. 아니 잘못인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그 행동이 당신에게 어떤 상처와 고통을 줄지 그 진정한 의미는 알지 못했습니다. 15살의 내게 있어서 그것은 어쩌면 부모님에게 들켜선 안되는 못되고 야릇한 장난일뿐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랬습니다. 그랬어요.
나는 그때 당신의 오빠가 아니라 성에 눈 띄기 시작한 사춘기 남학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호기심과 성욕구가 넘쳐나는 그때 나는 나스스로 당신을 여동생이 아닌 여자로,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해, 당신과 나 사이의 남매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오빠와 여동생, 가족이 되고 싶어 하는 내가 어처구니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 어떤 말도 변명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지금와서야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9살의 당신 마음에 생긴 상처는 내가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겠지요. 나는 그런 일을 가족에게 당해보지 않았으니까요.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왜 그땐 그런 것을 알지 못했을까요?
15살, 19살때의 나는 왜 그것을 당신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그때 전화로 사과할 때는 나는 당신에게 '내가 어릴 때라 철이 없어서 여동생을 동생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런 일을 했다'라고 말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 사과의 말조차 가슴이 아픕니다. 철이 없어서, 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정말 나는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일이 내게는 그렇게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9살 이후로 나를 보면 슬슬 피하던 당신, 그렇게 명랑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말이 없는 아이로 변해가던 당신, 갑자기 피아노 의자를 칼로 그어대고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말하던 당신. 하지만 나는 그 많은 모습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때는 나도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 인생을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그럴 만한 정신이 없었습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는 고등학교 때 심한 왕따를 당했습니다. 반성적은 언제나 꼴찌였고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대신 매일매일 심하게 때리고 돈을 요구하던 무시무시한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소심했고 겁에 질려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3년 내내 괴롭힘을 당해야했습니다.
기억나지요? 그때 집안 사정도 좋지 못했지요. 아버지는 알콜중독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집안에는 언제나 큰소리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시지요. 어릴 때부터 삼남매 중 둘째였던 나는 집안의 천덕꾸러기였습니다. 공부도 제일 못 했고 성격이 부주의해 뭘 잘 망가뜨리고 깨뜨려 아버지에게 많이 맞고 혼났지요.
어머니 또한 내게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형은 첫째라서 그나마 좀 관심을 받았고 당신은 늦게 낳은 막내딸이라 관심을 좀 받았지요. 공부도 잘 하고 제일 예뻤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을 때가 많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대신 집안을 꾸리느라 바빴으니 당신과 형이 받은 관심이나 사랑도 불안했고 별로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나마라도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이 어느 땐 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지 나보다 앞서나가는 당신이 말이지요.
그렇다고해서 내가 당신에게 한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압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망가뜨린 그 행동들을 나는 이제 죽도록 후회합니다. 그리고 또 당신을 때리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때 날 생각하면 정말 개새끼, 인간말종이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래, 미친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시절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솟아나는 화를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내머릿속과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있어 날 조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병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하는 걸 용서해주십시오. 나도 절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내가 해친 당신보다는 못하겠지만 나의 인생도 아시겠지만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내게는 날 욕하는 환청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항상 날 욕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있어 그랬을까요? 이유는 확실히 알기 어렵지만 어쨌든 조현병의 시작이었지요. 그뒤로 계속 나는 그 병과 싸워야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편지를 쓸 만큼 회복되었지만 완치는 없는 그 병과.
그렇게 20대를 엉망진창으로 보내고 서른이 될 무렵 나는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내가 다니는 정신장애인시설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었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게 다정하게 대해 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를 점점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나는 당신에게 내가 한 짓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처음으로 마음속에서부터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요. 죄책감은 있었지만 마음이 크게 아픈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최선생님(내가 좋아하게 된 선생님의 성이 ‘최’씨였습니다)에게 누군가 나쁜 놈이 내가 한 짓 같은 짓을 한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나도 짝사랑하던 최선생님을 만져보고도 싶었고 할 수 있다면 좀더 깊은 관계를 하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최선생님도 나를 좋아해서야지 강제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지요.
나는 전에는 그것을 참으로 몰랐던 것입니다. 감정의 어딘가가 고장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잘못을 저질렀는지 마음속에서부터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신만큼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그때 이미 당신은 집을 떠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걸려온 전화통화로 내게 사과를 요구했지요. 나는 그때서야 몇십년간이나 못 했던 사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겠지요. 당신은 그뒤로 우울증이 깊어져 몇 년간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아야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압니다. 밖으로 드러난 병이 없었을 뿐, 이미 당신은 9살때부터 깊은 마음의 병을 앓아왔을 거라는 걸. 병이 들어 돈을 벌 수가 없어 나와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몇 년간이 당신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게다가 나는 눈치없이 당신에게 가끔 좋은 오빠 노릇 마저도 하고 싶어했고, 조현병 때문에 때때로 치솟는 화를 못 참고 지랄을 떨기도 했지요. 그나마 그런 와중에서도 되도록이면 당신에게는 안 그러려고 했지만 어머니에게 그러는 걸 보는 것도 당신에게는 큰 고통이었겠지요.
그러다가 힘이 다 떨어진 듯 당신은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핏기 없이 누워있는 당신을 보았을 때야 나는 내가 한 행동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확실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철이 없었다, 라는 말로는 다 덮을 수 없을 만큼,
몰랐다하더라도 내가 한 행동은 너무나 큰 죄였던 것입니다. 몇십년이 지나도록 당신의 영혼을 그렇게 병들게 할 만큼. 나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습다. 다행히 당신은 많은 약을 삼키지 않아 목숨에 지장은 없었지요. 하지만 그뒤로도 오랫동안 당신은 아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제 나를 보지 않는 것을 나는 정말로 이해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당신은 집을 팔아 나눠 갖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다신 만나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세상에 단 둘 남은 가족인 당신. 나는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를 당연히 싫어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가끔은 배은망덕하게 나도 당신에게 서운함이 생겼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과 끈을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얼굴에 서린 표정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뒤로 15년이 흘렀습니다. 나는 당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핸드폰 번호도 바꾸었고 이사가는 곳을 내게 결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도 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연락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 거의 다 나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신장애인이니 나라에서 보조금이라도 나오지만, 당신은 어떻게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당신을 찾지 말고, 당신이 부디 행복할 수 있기를 비는 것 뿐이겠지요.
당신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당신의 생일날이 되면 이렇게 일년에 한번씩 씁니다. 첫번째 편지엔 미안하다는 말 외엔 별 이야기를 쓸 수 없었지만 오랫동안 당신과 그때 일들, 당신의 표정들을 생각하다 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조금씩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편지는 점점 길고 길어지고 고쳐쓰고 또 고쳐썼습니다. 똑똑했고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당신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으니, 그런 여동생에게 보여줄 편지라면 맞춤법도 맞고 잘 써야 될 거 같았으니까요. 당신이 이 편지를 읽게 될 날은 오지 않겠지만.
그 일들이 시작되기 전 당신은 7살 생일 때 내가 선물해준 <소공녀> 책을 정말 소중하게 읽곤 했지요. 그리고 연필을 깍아 주면 방긋 예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봐주었습니다. 그땐 당신도 나를 오빠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그것을 영원히 끔찍하게 망쳐버린 건 바로 나입니다.
부디 행복하길.
다음번 생이 있다면 절대 당신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나는 이제 소설을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