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A (Writers Guild of America)에 대하여
나는 2002년 4월,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미국 시나리오 작가와 합작 영화 제작을 하면서 발생된 작가 등급 부여(Credit Assignment)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라는 문제로 이를 자문한 적이 있다. 이 때 나는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국작가협회인 WGA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웹사이트를 뒤져도 WGA의 운영방침이나 회원 작가의 관리정책을 찾아 볼 수 없어서 결국 약간의 수고(?) 때문에 요긴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여기서 WGA에 대하여 잠시 공유하고자 한다.
WGA는 실로 미국 영화·드라마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다. 이번 파업사태를 보더라도 WGA의 영향력은 미국 업계 전체를 마비시킬 만큼 가히 파격적이다. 그 설립 역사도 길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파워를 가지게 되었는지 살펴보기 원한다면 WGA와 자본가 사이 투쟁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WGA는 특정 직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므로 그 이해 구성원들이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해야 설립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회원가입 절차와 조건을 먼저 살펴보자.
먼저 WGA의 회원가입은 일정한 기준을 두고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WGA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글 쓰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전문 직업작가(Professional Writer)이어야 한다. WGA의 Credit Manual(작가 등급부여규정, 이 규정은 WGA의 최소계약규정인 MBA-Minimum Basic Agreement 규정 중 하나다.)에서 규정하고 있는 전문작가는 다음 요건 중 하나에 부합되어야 한다.
① 영화제작사나 TV 방송국으로부터 고용되어 작가로서 일한 기간이 총 13주를 충족할 것.
② 영화제작사나 TV 방송국으로부터 작가로서 Credit을 부여받은 적이 있을 것.
③ 전문 연극작가로서 Credit을 받은 적이 있을 것.
④ 소설을 출판한 작가
어느 시라리오 작가가 WGA에 Credit 부여를 신청할 때 WGA는 Participant List에서 전문작가로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하여 그 여부를 신청자에게 통보해 준다.
작가의 Credit이란 일종의 작가 경력의 공적인 인정인데, 작가의 대외적인 몸 값이나 지명도를 결정하는 등급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Credit은 작가의 연금 지급(WGA의 회원으로서 일정 개월 실업상태가 지속되면 실업회원 작가는 WGA에 실업연금 지급 신청을 할 수 있고, 실업상태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면 WGA는 해당 작가가 평소 납부했던 연금 납부금에 근거하여 실업연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 연금(Pension)은 회원 작가들 내부의 복지정책으로서 단체를 구성하는 회원들간의 단체 결속을 강화하고, 전문작가들에게 왜 WGA가 필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즉 단체 정체성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의 기준이 되며 각 영화나 드라마에 표시되는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공표된다.
WGA는 이 엔딩 크레딧이 회원 작가에게 얼마나 표시되었는지를 기록하고 그 증거를 남김으로써 회원의 Credit이 갱신되고, 그리고 이 Credit을 기준으로 회원으로서 협회에 납부해야 하는 연금 납부금의 수준을 정하고, 실업 상태가 되었을 때 지급하는 수령 연금의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이 등급 부여는 각 전문작가들이 제작사로부터 받는 작가료의 책정 기준이 된다. 일종의 작가 몸 값으로서 객관적인 고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표시되는 엔딩 크레딧은 단순히 자막 글자(Subtitle)가 아니라 그 표시의 방식과 순서, 그리고 방법이 법으로써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영화나 드라마 업계는 엔딩 크레딧의 표시방법을 일정한 규정으로 강제 규율하고 있지 않다.
회원이 전문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것이 확인되면 다음 절차에 의하여 WGA는 회원 작가의 Credit 부여를 진행한다.
① 임시 Credit 부여 통보 (Notice of Tentative Writing Credits)
② Credit 부여 통보서 접수 (Receipt of Notice)
③ 만약, 작가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작가 중재신청(Arbitration), 제작사가 제시한 Credit을 수용한다면 확정계약
④ 중재신청이 있을 경우 당사자 중재 전 사전조정(Pre-Arbitration Hearing)
⑤ WGA 중재 위원회 소집(Procedure of Arbitration Committee)
⑥ 작가가 WGA 중재 위원회 조정에 대하여 항고할 경우 사전 WGA의 PRB(Policy Review Board)에 이의제기
⑦ 조정결정 예고
⑧ 조정결정 순이다.
어찌 보면 WGA의 크레딧 부여 정책은 회원가입의 실제적 명분(회원의 권익보호)과 단체 구성원의 결속(단체가입 이유)을 강화하고 제작사들의 작가료 지급의 기준(업계의 객관적 지표)을 동시에 제시하는 등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로 보인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기 까지 WGA는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과 굵직하고도 역사적인 소송을 진행해 왔다. 공짜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WGA는 미시시피 강을 기준으로 동부조합(http://www.wgaeast.org)과 서부조합(http://www.wga.org)으로 양분되어 있다. 서부조합 소속 작가의 수가 동부에 비해 약 2배 더 많다. 그리고 대부분 작가들은 Agency를 두고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그 Agency에서 작가를 대신해 WGA 관련 업무(전문 작가 등록, 크레딧 부여 신청, 연금 납부 등)를 대행해 주고 있다.
WGA의 핵심은 바로 최소계약규정인 <MBA(Minimum Basic Agreement)>라는 정책이다. MBA를 통하여 WGA는 작가들을 통제하고 대외적으로는 프로덕션이나 스튜디오들과 연간 협상(Annual Agreement)을 통하여 소속 작가들의 몸 값 조정을 한다. 이 연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WGA는 소속 작가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이권을 관철시키는 협상대리권을 실행하기도 한다. 해 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즈음에 벌어지는 스트라이크, 작가 파업사태는 바로 이와 같은 배경에서 발생된 것이다(감독협회의 보이콧으로까지 번지기도 함). WGA가 MBA란 정책을 통하여 제작사에게 예민하게 통제하려는 분야는 바로 작품의 2차 사용에 관한 감시와 통제다. 이는 작가들과 제작사 간의 경제적 이익에 관하여 서로 반대되는 이해관계가 발생되는 분야로서 WGA가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업무 분야다.
좀 더 자세히 MBA 규정을 통하여 통제하는 작가 Credit 부여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작가가 전문작가임이 증명되고 난 뒤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임시 Credit부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WGA에 "임시 크레딧 부여 통보서(Notice of Tentative Writing Credits)"를 제출해야 한다. 이 때 통보서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인지 아니면 방송 드라마인지를 따져 극장용인 "Theatrical"과 TV 드라마 "TV Drama" 두 가지 양식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제출하고, 이와 함께 "완성 촬영 대본(FSS: Final Shooting Script)"을 WGA에 함께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관할이 동부인지 서부인지 파악해서 자기가 속한 관할 협회로 신청해야 한다.
또한 이 통보서에는 본인이 신청하는 Credit의 종류를 선택하여 기입해야 하는데, 그 전에 신청 작품이 어떤 상태의 작품인지를 신고해야 한다. 신청 작품은 다음 2 가지 종류로 분류하여 신청하게 된다.
- Original Story(원 작품) : 작가 자신이 시나리오화(screenplay) 하는, 또는 시나리오의 원작 스토리(original story)를 새롭게 창작한 작품으로서, 작가가 이야기 구성과 인물 개발을 완성한 것을 말한다. 이 때 원작 스토리는 반드시 영화 제작사가 위에서 설명한 '전문작가'로부터 구매하거나 고용하여 제공된 것만을 인정한다.(WGA Credit Manual Article 16.A.2. 참조)
- Assigned Material(배당작품) : 타인으로부터 창작 작업을 의뢰받아 만든 작품으로서 아무리 남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실질적으로 남의 작품을 모방하지 않고 새롭게 창작하거나 발표된 적이 없는 작품이어야 하며, 해당 영화나 드라마에서 기본 등장인물(Principal Character, 이전에 출판되거나 발표된 적 없는 등장인물일 것을 요구한다)을 창작한 작품이라야 한다. 한국의 극작품 영상 콘텐츠가 히트 후 저작권 분쟁이 종종 일어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WGA 시스템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반대급부 상대방인 작가와 그를 고용한 제작사 사이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저작권 침해)에 대한 사전 필터링이 이루어지게 하고, 창작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경각심을 미디어 업계 모두에게 갖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Credit 부여 신청을 원하는 작품이 위 두 가지 중 하나에 속한다면 작가는 다음 중 하나의 Credit을 신청해야 한다. Credit 부여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미국 영화나 드리마 자막에서 다음 문구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영상 업계(영화계나 드라마 제작사)의 제작 관행에 맞춰 오프닝 크레딧¹과 엔딩 크레딧²을 작성해서 관객에게 상영하는데³, 미국은 이런 법률적, 행정적 제도 때문에 크레딧을 영상 작품에 삽입할 때도 성문화 된 법 규정에 따라 그 순서와 표기 명칭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⁴ 5 6. 즉 영상물의 크레딧은 단지 그 영상 작품의 소유권만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거나, 그동안 참여한 제작 스텝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정도의 것이 아닌 그 사회가 합의한 법령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지고,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그에 따른 성과를 당당하게 인정해주는 매우 진지한 의식이다. 자신이 공동 작가로 작업했음에도 그 창작 파트너를 누락시키거나(실제로 미국은 시나리오 작가의 공동 집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원작을 기반으로 개작을 한 것을 마치 원작인양 속인다면 아래와 같은 작가 크레딧의 명칭을 속이게 되고, 이 사실이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형사적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모든 크레딧의 명칭은 산업용어가 아닌 사실은 법률 용어인 셈이다.
- Story by : 원 작품을 토대로 속편의 시나리오화 작업을 한 경우
- Screen Story by : 원 작품을 토대로 시나리오화 작업을 한 경우
- Written by : 작가 자신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창작하여 시나리오화 작업을 한 경우
위 세 가지 Credit을 "Separated Rights"이라고 한다.(WGA Credit Manual Aritcle 16.A.3. 참조)
작가의 임시 Credit 부여 신청이 있으면 WGA는 신청작가에게 임시 Credit 부여를 통보하는데, WGA의 부여에 이의가 있을 경우 신청작가는 통지 접수일로부터 7일 이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또한 WGA의 MBA 규정에는 작가의 최소보수 제한 규정이 있는데, 제작사가 이를 준수하기만 한다면, 제작사와 작가 사이 2차 판권 등 부가수익의 분배에는 협회에서 관여하지 않는다.
이상 미국작가협회 WGA의 크레딧 시스템을 살펴보았다. WGA와 더불어 미국 엔터테인먼트 창작의 근간이 배우 등 일신전속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창작집단은 Guild를 통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해 오고 그 제도를 꾸준히 발전시켜 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예술 창작자들이 자신의 권익 보호를 위하여 사단법인 형태의 협회(예.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실연자협회)를 만드는데, 흔히 이 협회는 압력단체나 친목 강화의 성격이 강한 비영리 법인이거나 비법인사단 정도로 조직을 구성하여 집단의 이익 관철에 힘을 쏟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미국은 조직 구성의 목적이 단지 동질감을 갖는 동료들의 단합과 이익 보호만을 추구하는 '수동적' 설립 목적이 아닌 구체적으로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경력이 그들의 정당한 몸 값을 매기는 기준으로 작용하게 하고, 그 무형의 가치를 체계화하여(위 3가지 크레딧 종류와 경력에 따라 작가의 보수체계 등급이 나누어진다. 협회는 이러한 객관성 확보를 통하여 협회의 존재 이유를 각인시키고 작가들은 협회로부터 보수 등급을 받기 위하여 단체를 이탈할 수 없게 된다.) 동료집단이 아닌 외부 세력의 부당한 압력과 착취로부터 예술가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구성원들이 실업 상태에 처해질 경우 돈 벌 때 일부를 적립하는 연금으로 근본적인 먹고사는 최소한의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결국 예술가 자신의 자력으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것임) 비즈니스 상대방인 제작사나 거대 스튜디오 배급사, 또는 방송사로부터 갑을의 재무적 횡포를 제도적으로 차단해 주는 안전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창작의 자유와 이를 해치려는 위해요소 간 투쟁의 역사가 길고 다양하며 지금의 작가협회 시스템이 시행착오로부터 뼈아프게 얻게 된 소중한 교훈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들의 선행 경험은 한국의 미디어 산업 분야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과정을 같이 답습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점은 산업 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의미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본과 창작의 균형이 잘 지켜질 때(사실은 거의 안 지켜지지만) 문화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2008 Joseph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