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솔빛풀 이야기(4) - 슬프기도 아프기도
점심 시간 직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체로 점심시간은 내가 집으로 전화하는 시간이지 아내가 나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샘이가 학교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입니다. 4교시 수업을 앞두고 자리에 없더니 아직도 안 돌아온다고 선생님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통화 중 걱정스레 말을 건네던 아내가 갑자기 창문밖 샘이를 발견하고 큰소리를 지릅니다. 3교시 마치고 사라진 샘이가 실내화를 신고서 집 앞을 배회 중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3교시 수학 시간 중 샘이는 도저히 배우는 내용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를 못 하니 당연히 문제를 풀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문제 못 푼 사람은 남아서라도 풀라는 말에 기가 질리게 됩니다. 3교시를 마치고 꾸욱 참고 4교시를 맞닥뜨린 샘이는 4교시 도덕 시간이 선생님 사정 상 수학 시간으로 대체된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들은 3교시의 악몽이 떠오르며 괴로워하다 모든 소지품을 남기고 실내화를 신은 채로 무작정 학교를 나와 버린 것입니다. 학교를 나와서 놀이터에서 노닐다가 심심해서 다시 동네를 돌아다닙니다. 그러던 중에 창가를 보고 있던 동생들의 눈에 띄고 엄마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 와중에 샘의 반 선생님은 샘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모든 반 아이들을 풀어서 샘이 찾기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분주한 회사일을 뒤로한 채 오후 반차를 쓰고 집으로 향하던 나의 마음이 참으로 착잡합니다. 처음 일어나는 마음은 분노의 마음이었지만 다시금 가라앉히고 이번 일을 되돌아봅니다. 샘이 발견되고 나서 소식을 접한 나야 그렇다 치지만, 아내와 선생님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샘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마음이 여러 갈래입니다. 수학이 어렵다고 학교를 뛰쳐나가는 인내심 부족한 아이라는 생각과 오죽했으면 그랬을고 하는 동정의 생각이 혼재합니다. 거기에 아내의 시큰둥한 대응도 내 마음을 거슬리게 합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을 다잡고 묵묵히 상황을 맞이합니다.
사실 회사에 오후 반차를 낼 것인지 나름 고민하였습니다. 중요한 제품을 전달한 월요일 인 데다 동료 한분이 휴가인 관계로 내 공석이 어렵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아들의 무단 귀가가 흔한 일도 아니고, 이때 휴가를 안 쓰면 언제 쓴다는 건가. 사랑하는 아들의 문제에 이깟 반차가 문제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삶 속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집에 오긴 했지만 표정 관리가 안됩니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여 아무런 말이 안 나옵니다. 다행히 아내와 아들은 선생님을 뵈러 학교를 가야 합니다. 둘을 보내고 나니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들과의 시간을 가져야겠는데 뭘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둘까도 생각하고 등산을 해 볼까도 고민해 보다가 그냥 편하게 저녁이나 먹자로 결정을 했지요. 나의 한마디 잔소리 보다 그냥 편하게 시간을 보내주는 게 나으리라.
돌아온 샘이를 데리고 자주 가는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짬뽕과 탕수육을 둘이서 배부르게 나눠먹고, 제가 종종 가는 단골 카페로 갔습니다. 가져온 각자의 책을 집어 들고 1시간을 독서하며 보냈습니다. 그냥 편하게 같이 보냈습니다. 우울해지거나 위축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샘이는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오가는 길에 넌지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아들, 학교를 빠져나오니까 어떤 기분이 들었어?"
"음. 사실 학교를 나오니까 기분이 개운하더라고요."
"아빠, 동물학자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돼요?"
“샘아,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수학을 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을 성실하게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한 거야."
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렇게 방치해 둘 수만은 없는 아빠의 마음을 표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들, 삶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때마다 도망치며 다닐 수는 없는 거겠지. 도망치는 것은 너를 제약하고 너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제약하는 것이 될 수 있단다. 다음번에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 성장해 나가길 바라마. 쉽지 않지만 힘내서 다시 해보자꾸나.'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발걸음은 흥겹기만 합니다. 그저 무심한 듯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도 이내 흥겨워집니다.
- 201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