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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Jun 21. 2021

오늘, 여름

책속에서 만난 오늘

 

 도서관이나 책방이 배경이 된 책은 크게 배반을 하지 않는다. 다만 좀 뻔한 이야기가 될 위험성은 있다. 이 책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도서관 서가에서 만지작만지작 좀 망설였다.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 (원제는 The moment of everything) 라니. 하지만 그 길고 긴 서가를 대충 들러봐도 딱히 마음에 드는 책도 없고 또 뭔가 고른다는 게 자꾸 시들해지기 시작해 이러다 공치겠구나 싶어 그냥 빌려 나왔다. 사실 내 눈길을 끈 건 '헌책방'이 아니라 '드래건플라이'에 있었다.


 오래전, 그러니까 정확히 무려 사십 년 전 우린 교양영어 수업을 듣는 중이었다. 독문과와 우리 과가 같이 강의에 들어갔는데 나도 알고 있는 독문과 학생이 조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한 줄씩 읽고 해석하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강사가 졸고 있던 그 학생을 지적해 다음 문단을 해석해 보라고 시켰다. 아이쿠, 놀랐겠네 하고 건너다봤더니 당황한 얼굴의 그 친구는 허둥지둥 곁의 친구 책을 건너다 보고 지정받은 문장을 확인해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내용이야 물론 생각도 안 나지만 어쨌든 천천히 한 문장씩 해석해나가던 중에 단어 하나에 막혀버렸다. 

'dragonfly'  

"용~   "   "용~   " 하던 그 친구가 드디어 말을 이어갔다. 

"용팔이는 어쩌고저쩌고~~~"    

 

 얼마나 까무러치게들 웃었는지 지금도 그 교실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dragon (용)과 fly(파리)가 만들어낸 참사다) 

 

 내용은 내가 상상했던 것을 뛰어넘진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젊은 사람이라 (아니 저자가 그렇게 글을 쓴 거겠지?) 헌책방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분위기였고 마음을 그려내는 솜씨가 정말 좋아 사랑을 느끼는 부분은 바로 그대로, 아픈 내용에선 또 그대로 전해져와 추리소설 읽듯 '스릴'있었다. 더구나 배경이 내가 알던 동네와 그리 멀지 않은 이웃이었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옆 마운틴뷰.


 거기다 내가 모르는 작은 소품들이 많이 나와 이미지로 검색. 


커피 테이블 북 

테이블 위에 장식을 겸해 올려놓는 책이라고. 우선 하드커버고 사진이 많고 인테리어나 패션에 관한 것 등등 가볍게 읽을 내용이라고. 그런데 왜 이런 책으로 테이블을 장식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빅 걸프 컵

설명이 필요 없네. 흔히 보던 컵인데 정말 크다.

                 











 보드란 드럼


아일랜드 민속 악기라고










NPR 토트백


미국공영라디오방송국 후원용으로 만든 에코백이란다.









 매직 8 볼


재미로 운세를 볼 때 쓰는 공이라고. 이렇게 간단한 걸로 어떻게 점을 쳐보는지 매우 궁금











 이런 것 말고도 이름으론 모르는 물건이 많아 그거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헌책방 이야기답게 당연 유명한 작품과 작가가 많이 나오지만 생각도 못한 책이 등장해서 깜짝 놀라곤 했다. 프랭크 맥코트의 <안젤라의 재(우리나라에는 '프랭키'로 번역되어 나왔음)> ( Frank McCourt, Angela's Ashes )는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이미 절판되었고 그 후에 어디서도 이 책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여기 나와 책장에서 다시 찾아봤다. 사실 이 책은 별로 재미가 없어 내내 갖고 있다가 헌책방에 팔려고 했는데 매입 불가라 실패. 드래건플라이 서점에서라면 팔 수 있었을 텐데.ㅎㅎ. A, B, C로 시작하는 제목의 추리 소설로 유명한 수 그래프턴 이름도 오랜만에 만났다. 더구나 오래전 다른 블로그에서 쓰던 내 닉네임도 나와서 '우연'의 시리즈구나 했다. 


 그런데 마지막 결정적 장면에서 놀란 일. 책 속에서 미스터리 한 남자와 여자가 파이오니어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6월 21일이다. 바로 오늘! 책 속에선 올해 여름이 시작된 날이라고 나온다. 재밌게도 위의 이미지들을 구글링하다 구글 오늘의 로고로 떠 있는

 이 녀석을 보고 귀여워서 클릭했더니 '여름'이라는 설명이 나왔었다. 바로 책 속의 그날 여름의 시작. 오늘.

그 '오늘'이 이 책 속에 나오는 중요한 날이다. 


 슬프기도 따뜻하기도 재미있기도 한 책이다. 이런 책이야 한 두 권이 아니지만 6월 21일에 읽은 6월 21일의 약속이 만난 우연이 아까와서 브런치에 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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