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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Dec 03. 2021

책을 읽는 사람들

[오늘의 한 단락] 탕누어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편집자 주] 지금 같은 시대에 왜 굳이 책을 읽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책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곳에 발을 내디디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또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가. 대만 작가 탕누어의 매혹적인 에세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는 책 읽기의 곤혹과 희열에 관한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그중 한 단락이다.


오늘날 독서는 사면초가의 형국에 빠져들었다. 유혹이 몹시 많고 요정 세이렌의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 재미있는 소일거리를 추구하는 마당에 굳이 목숨 걸고 이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전화로 수다를 떨거나 영화관에 가고 쇼핑을 하며 술집에 놀러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책을 읽는다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가볍고 즐거운 심심풀이로는 만족할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곧바로 책을 내던지고 유혹에 반응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트로이 전쟁에서 귀향하는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돛대에 묶었던 것처럼 자신을 괴롭혀야 할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학대하는 이유는 오디세우스의 마음속에 중요한 것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그의 고향이자 낮에는 수를 놓았다가 밤에는 풀기를 반복하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독서가 순전히 심심풀이가 되는 시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극복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없애버릴 수는 없는 어려움은 여전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문 밖에는 꽹과리 소리와 북소리가 하늘을 찌르며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로운 세계가 존재한다. 독서와 심심풀이가 서로를 배척하면서 용납하지 않고 있지만 독서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항상 없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일부 사람은 분명하게 묘사할 수 있지만 대개는 몹시 애매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책을 읽는 이들은 세계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꺼지지 않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호기심과 상상력은 지나치게 체계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혐오한다.


다시 말해 그들과 이 세계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소박한 연계, 그윽하고 미묘한 대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자 세계의 일부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수시로 회의를 품지만 시종 손을 놓지 않는다. 완전히 결별하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반드시 볼리바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계와 사람들을 바꾸려는 큰 꿈을 추구하면서 그 해답과 방법 그리고 역사적 결함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을 수천수만 년 이어온 방대하고 끝없는 대화의 그물인 책 속에 앉혀놓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게 된다. 이는 행동보다 더 중요하고 형성되는 의미보다 더 중요하다. 마치 시장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는 사람과 같아서 무엇을 살지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고 사고자 하는 물건을 정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다 찾기 전에 눈앞의 모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 묻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최후의 구매 목록이 잠시 그 상태로 멈춰 있거나 최초의 가능성의 단계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구체적이며 현란한 가능성들에 뒤엉켜버릴 수도 있다.


가능성이지 해답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가능성이야말로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하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굳게 믿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일생의 노력을 경주한다 해도 마음속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동안 열심히 책을 읽으면 하루만큼의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해답은 절망을 향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가능성이야말로 절망의 반의어다. 가능성은 영원히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포착할 여지를 남겨준다.


이야기가 좀 애매하고 약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듯하지만 대체로 진실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의미를 상실하여 절망하면 독서는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독서의 의의가 가장 풍부하게 자라는 곳은 바로 책의 세계다. 인간의 최초의 선의는 불꽃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디찬 현실 세계의 공기에 의해 쉽게 꺼져버린다. 불꽃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서는 땔감을 넣어야 하지만 메마르고 추운 세상에는 항상 자원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땔감인 독서가 지속되어야 한다. 세계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지속되는 독서다.


이는 하나의 전제이지 완성은 아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앞으로 실질적으로 독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일련의 문제와 계속 마주칠 것이다. 갖가지 어려움의 공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기를 진작시키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신바람이 나서 돛을 올리는 해적들처럼 자신에게 사용 가능한 장비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감동적인 전리품을 취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독서세계의 전체적인 그림이다. 독서는 의미의 바다인 동시에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독자들은 최종적으로 어디에 이르게 될까? 이건 알지 못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으로 뒤덮인 이 영원한 곤혹의 길을 홀로 쓸쓸히 걸어가겠지만 저 앞 눈길이 간신히 닿는 곳에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서 걷는 든든한 그리자가 보일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다. 심지어 그 그림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전부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뜻밖에도 자신이 그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영광으로 여길 것이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뜻하지도 않게 이런 사람들과 같은 종족이 되어 같은 질문을 하며 같은 호기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에서 위로를 느낄 뿐만 아니라 영광과 생명력을 얻는다. 브루스 자빈의 아름다운 말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모든 토템의 시조가 온 나라를 주유할 때 길을 따라가면서 말과 음표들을 뿌려 '꿈의 여정'을 직조해놓았다. 그가 이 노래의 길을 따라 간다면 반드시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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