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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빛 Oct 18. 2021

4. 연극성 성격장애에 대해

확실히 끊어내야 하는 관계도 있다.



그녀가 처음 그의 모든 이중생활을 알았을 때, 그가 이혼을 거부하여 함께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았대. 그리고 그의 심리검사를 진행한 의사가 그녀가 그를 용서하지도 관계를 끝내지도 못하고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자 처음으로 그를 내보내고 충고를 했어. 그는 연극성 성격장애로 추정되고 성격장애의 경우는 치료 경과가 좋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가는 그녀가 더 아파질 수도 있다고.. 이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고.. 이 상황은 그녀의 탓이 아니라고 하더래. 근데 그녀는 계속 내 탓만 하고 있었어. 내가 더 좋은 사람이었으면 그가 외도할 일이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결국 아픈 그녀와 아이를 두고 도망갔어.



 처음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이혼을 거부했습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자기가 잠시 미쳤던 것 같다고 용서해 준다면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혼 서류를 제출했지만 또 그의 말에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어쩌면 그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몸은 아니었나 봅니다. 서류상 이혼을 하고 아이를 함께 키우는 관계가 되려고 했지만 그의 외도가 처음은 아니었기에, 그리고 점차 게임에 더 빠져들어 가고 있기에 팔과 뇌가 저리고 머리가 점점 아파왔습니다. 그가 도망간 후에는 배신감에 간수치가 암환자만큼 치솟았습니다. 

 그때 의사가 성격 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성격장애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보편적으로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 병원에 우울감을 호소하며 찾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담을 해보면 상담자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와 보낸 기간에 남들에게 부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의 마술사라는 직업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연애를 할 때 깜짝 놀랄 이벤트를 많이 선사했습니다. 프러포즈를 할 때도 영화에서 볼 법한 그런 이벤트를 선사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 번은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언제부터인지 저는 행복한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들은 말을 되새기며 스스로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복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임신 중에 그렇게 먹고 싶던 ‘딸기’를 그는 한 번도 사주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푸념도 그가 만들어 둔 이미지 때문에 ‘복에 겨운 소리’라고 몇 번 듣고 나니 누구에게도 이 외로움을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가끔 이 섭섭함을 그에게 호소하면 그는 자기가 너무 잘해주어서 그런다면서 처음부터 이벤트를 많이 한 것이 잘못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제가 만족을 모르는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중생활을 알고 우울감 검사를 했을 때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의사와 상담사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을 때 저에게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너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나를 찾으면서 했던 검사 결과를 들을 때도 당신은 오히려 책임감이 강하고 도덕성이 높아서 힘들었을 것이라고 상담사가 말해주었을 때 내 안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나는 그저 만족감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연애 오답노트  
1. 때로는 끊어야 하는 관계도 있다.
2. 행복은 내 기준이다. 이 관계가 이상하게 느껴지면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해 보아라.
3. 이별에 내 탓, 네 탓은 없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떠난 후 홀로 상담을 끝내고 일상의 삶을 살고 있을 때 독서 모임 식사자리에 모임원 중 한 명이 지인과 함께 나왔습니다. 그분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주제를 가리지 않고 대화에 참여했고 함께 나온 모임원이 그분이 연봉 높은 대기업을 다니며 재주가 많다고 칭찬했습니다. 또 그 재주를 빼지 않고 래퍼의 성대모사도 하면서 처음에는 독서모임에서의 시선을 확 끌었습니다. 하지만 유부남이었음에도 술이 조금 들어가자 이성에게 선을 넘는 칭찬이나 오해할 만한 발언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가 지나침을 돌려 말하자 모임원이 갑자기 이 친구는 아내가 능력도 있고 예쁜 데 이런 모습을 모르고 속고 산다며 아내분에게 이런 친구를 데리고 살아줘서 절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득 잊고 있었던 그의 후배가 떠올랐습니다. 부족한 그를 받아주어서 고맙다며 평생 은인으로 모시고 산다며 정말 길거리에서 큰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의 절친들이 저를 만나 그가 변했다며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땐 그 말이 저를 높여주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만 못 알아듣는 ‘그의 본모습’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모임원과 지인과의 대화는 칼같이 끊었습니다. 이별 후 가장 큰 깨달음은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관계는 시작도 하지 않으며 혹시 그런 관계가 있다면 하루빨리 손절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격은 영유아기부터 성인 초기까지 여러 경험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하지만 자라는 과정 중에서 인지, 정동, 대인관계, 충동 중 사회가 통상적으로 여기는 정상적인 성격 양식을 벗어나면 성격장애라고 합니다. 누구나 조금씩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이것을 성격장애라고 칭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성격장애의 진단은 병원에서 한두 가지로 쉽게 진단을 내리지도 않습니다. 


 연극성 성격장애는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애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에게 호탕하고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상당히 불쾌해합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유독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데 열중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극성 성격장애와 연애 혹은 결혼을 한 사람들은 마치 드라마, 영화와 같은 연애를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이 없어지면 또 다른 관심을 향해 떠나갑니다. 저 역시도 그가 주었던 극적인 애정 표현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도 안 되는 이중생활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상담을 통해 연극성 성격장애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얼굴을 제외한 자신의 신체가 드러나는 사진을 SNS에 올리고 관리한 것과 다른 여성과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서 자신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연기한 것, 아내를 많이 사랑한다고 주변에 크게 과장하고 말하고 다니던 모습, 사람들 앞에서 좋은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는 연기 등이 그 예시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일반 인구의 10-20% 이상이 성격장애를 앓는다고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복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어떤 관계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 관계만 유독 우울하다면 그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이 나에게 최선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가 충동조절 실패에서 오는 외도, 게임, 그리고 남 탓. 이 세 가지로 힘들었습니다. 그 남 탓이 저에게 향할 때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공연이 없다며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이니까 일을 찾거나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면 원래 이런 직업인 것을 모르고 결혼했냐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새벽에 알람까지 맞춰가며 게임을 하는 모습에 화를 내면 이건 당신이 드라마 보는 것과 같은 취미고 저는 그런 취미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제야 제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뭔가 이상은 하지만 무엇이 이상한지도 몰랐습니다. 


 자꾸 불편한 관계가 있다면 처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적어두고 객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가정을 이루었기에 책임감 없이 일도 집안일도 하지 않고 한눈파는 삶이 문제이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취미에 열중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내가 이상하고 나쁜 아내로만 생각되었습니다. 


 이별에 제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어떤 관계가 계속 나를 아프게 한다면 정말 한 번쯤은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들춰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하는 것이 어렵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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