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영화의 시대에 대한 무례와 무시 (혹은 무지)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by joyakdoll
89434234167_727.jpg


글에 앞서, '작품은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있다면 지금의 내 대답은 '분명히 그렇다'이다. 현대 미학에서는 흑백논리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고는 하나 나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는 분명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환영을 제시하는 극영화라는 매체는 더욱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 단락은, 오락영화를 그냥 즐기면 되지 왜 이렇게 생각할까 하는 지적이 있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남겨둔다.


나는 <브루탈리스트>를 감상한 다음날 이 영화를 보았다. 엄청난 작품을 보고 난 이후의 피로감 때문에 생각없이 가볍게 '팝콘 무비'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던 중 실수로 팝콘을 쏟았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팝콘을 쏟은 것은 이 영화가 팝콘을 먹으며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였기 때문에 일어난 운명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마블 스튜디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편입된 이후 가히 '디즈니스러운' 영화들을 제작하며 늪에 빠졌다. '통조림 고르기' 식의 기획은 히어로 영화에서도 이어졌다. 세계 곳곳을 옮겨다니며 각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만족해할 만한 판타지를 제시하며 장사를 해오던 이들은 히어로 영화라는 매체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제작사가 영미권의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작품이 창작되는 것에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과정이,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난 작품이 그 문화에 대해 무지하고 무례하다면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과거 디즈니는 다른 문화에 대해 얕은 이해를 바탕으로 결례를 범했다. <포카혼타스>, <아틀란티스>, <뮬란>과 같은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며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는 듯 보이지만 부족한 '올바름'으로 인해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잦다. 문화와 시대에 대한 무지는 해결하지 못한 채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우 '올바름'에 대한 무제한적인, 무방향의 토론이 초래한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권 국가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대한 반발로 극우세력이 집권하기도 했다. 나는 이 현상을 꽤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디즈니의 본심은 '올바름'을 채워주는 척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극우 세력의 대립은 멀리서 바라봤을 때 심각히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대충 말하자면 '가짜 진보'를 통해 극우 보수가 표를 얻는 현상이라고도 본다.


-lae0f35HcFfOHgl7VqWGQMuFTu_HcnrcBN0QsGEtAoDfJ8DWL25AfI2PQIZn_JHizmWU92834xfKdoioDpiiA.webp


다시 마블 스튜디오로 돌아가, 디즈니로의 인수 이후 그들은 역시 세계로 여행을 다니며 통조림을 쇼핑했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만드는 미국 영화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점을 비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세계 속의 미국'을 촬영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번에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PC를 내건 디즈니 스튜디오가 지금껏 어떻게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언급하고자 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마블 영화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좋은 평가를 얻어왔다. 1편 <퍼스트 어벤져>는 2차 세계대전을 바탕으로 나치 독일의 빌런과 맞서 싸우는 미군 영웅,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보여준다. 스티브 로저스가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현대 배경에서 깨어나는 결말은 파시스트와 맞서 세계의 위협을 제거한 미국의 가치가 '외계인이 침략하는 가상의 현대'에 다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2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이러한 현대에 아직 잔존해 오히려 미국을 잠식한 파시스트 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을 다룬다. 3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2편의 연장선으로, 제거하지 못했던 세력이 다시 위협이 되어 영웅들이 내전을 벌이게끔 유도한다. 1편은 전쟁영화 장르, 2편은 첩보영화 장르로서 훌륭히 기능했다. 3편은 두 장르가 적절히 어우러졌다고 할 수 있겠다.


3.jpg?type=w800


미국을 수호하는 데서 나아가 지구를 지켜내고 우주를 구하는 캡틴 아메리카는, 단독 주연 영화에서 세계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영웅적 위치를 각인시킨다. 1편에서 시작해 3편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영화 밖에서도 아이콘의 위치로 영웅이 된 것은, 3편까지 극중에서 악으로 존재한 '히드라'라는 집단이 나치 독일로부터 시작된 파시스트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에서 세계를 위협한 악을 빌런으로 규정한 이상, 그것을 물리치는 영웅은 환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윈터 솔져>와 <시빌 워>의 서사는 그로부터 시작된 파시즘이 미국 내부에 자리잡아, 여전히 악으로 기능하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윈터 솔져>에서는 정의를 수호하는 집단인 줄 알았던 '쉴드'가 '히드라'에게 잠식당했으며, 그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는 영웅의 사투를 다룬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달고 영화는 미국의 '투 페이스'를 지적한다.


그러나 '히드라'가 없어진 이후 시리즈는 퇴보해 한쪽의 얼굴만을 투영시킨다. 일단 4편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역시 새로운 악의 얼굴을 내부에서 찾기는 한다. 이 영화의 직접적인 악역은 두뇌에 변이가 일어나 비정상적인 지능을 얻게 된 '새뮤얼 스턴스'로 보인다. 그는 미국 대통령 '썬더볼트 로스'에게 약물을 투입해 '레드 헐크'로 변이시키는 등 그를 파멸시키고 세계를 위협에 빠뜨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는 로스가 출소를 미끼로 그를 감금하고 착취해온 것에 대한 복수이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들은 대통령 로스로부터 시작되었다.


uaw7T9DKxvoU1jn_H0qR6k0R5VwbRqtDJA1yyow7J-Vb7ZZmdXrhC1_JifWBoRXbjhGo9_XOjlFKn3Q4swxCzQ.webp


그렇다면 로스라는 인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군인 출신 대통령으로, 히어로들과 대립하며 그들을 탄압하는 등의 악행을 일삼다가 대통령이 된 이후 온화한 성격으로 바뀐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에서 강조하는, 성격이 바뀐 이유가 다소 의아하다. 차라리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라면 모를까, 로스는 딸에게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를 댄다. 물론 이는 딸에게 떳떳할 정도의 도덕성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지위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어쨌든 로스는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새로 발견된 자원을 세계 각국에 평등하게 분배하는 조약을 추진하지만, 이는 자신이 만든 괴물 새뮤얼 스턴스에 의해 방해받는다. 이 과정에서 희생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모두 로스와 그의 뒤에 있는 새뮤얼 스턴스의 책임이 있다. 로스는 마침내 새뮤얼 스턴스가 투입한 약물에 의해 레드 헐크로 변신한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미국 대통령, 거기에 더해 빨갛게 피부색이 변하며 분노하는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는 특정 인물을 떠올린다. 영화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트럼프를 관객에게 연상시킨다.


683530_638844_1520.jpeg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는 그 자체로 모순이자 역설이 된다. 지금껏 캡틴 아메리카는 파시스트 세력과 맞서 싸우며 세계의 정의를 실현해왔다. 캡틴 아메리카는 '올바른 미국'을 상징하며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영웅으로서 기능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가치와 결합할 수 있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지 않을까.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거대한 장벽을 세우며, 다른 국가의 영토를 가져오는 데 무력을 쓰지 않겠다고 확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트럼프는, 지금껏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세계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의 가치와는 상반된 위치에 서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캡틴 아메리카'보다는 나치 독일의 히드라와 닮아있다. 트럼피즘을 네오파시즘의 일부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그동안 씁쓸하게 미국의 얼굴 양면을 고백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메시지다. 이 영화의 서사는 미국 영웅주의를 주장하는 영화들이 애써 숨겨오는 것을, 스스로 답습하는 동시에 드러낸다. 미국은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는 영웅처럼 보인다. (때때로 우리나라 국민들도 신나서 성조기를 흔들고는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의 이름 아래 침략함으로써, 타자에서 주인이 된 역사에서 그들은 무의식 중에 타자에 대한 적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기론이 나오는 최근에 강화되며, 트럼프와 트럼피즘을 지지하는 현상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이야기했다. 트럼프는 일종의 현상이며 미국의 얼굴을 대변한다.


한편 영화는 극중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는 그저 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아버지일 뿐이다.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가 레드 헐크가 된 로스에게 '사실 당신은 착한 사람이잖아요'라는 식으로 설득하자, 그가 다시 인간 로스로 돌아오면서 절정부를 해소한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은 이런 식으로 오직 대사를 통해 상대를 선동하는 식으로 갈등을 매듭짓는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작가 파업 사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걸까?) 로스는 그저 안타깝게 악인에 의해 조종당한 희생자일 뿐이며, 에필로그부에서 그는 수용소에 갇힌 채로 마침내 자신을 면회온 딸과 조우하며 감동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악의 축이 된 새뮤얼 스턴스가 로스에 의해 고통받았다는 사실은 영화의 결말부에서 배제된다.


영화가 미국과 일본을 극적으로 화해시키며, 그들의 우호적인 관계가 세계 평화의 밑거름이 된다는 식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은 이 영화의 각본이 철저히 정치적으로 쓰여졌다는 확신을 들게 한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러시아-중국-북한의 위협을 누르고 세계 패권을 지켜내고자 하는 움직임은 트럼프 당선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당연하게도 이 문단은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타국에게 위협이 되는 러시아-중국-북한의 연대를 우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패권을 지켜내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트럼피즘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image.png?type=w1


결론적으로 나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의 서사가 다분히 정치적인 면을 반영해서 작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는 영화가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기획되었고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변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를 고려했을 때 2025년 2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그렇게 읽힐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무례하다. 의도가 없었을 경우 이 영화는 무지한 것이겠지만, 분명히 알았음에도 무시했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트럼프가 아니라 해리스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이 영화의 전개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은 남아있지 않았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패스트 라이브즈> - '왼쪽으로 걷기'를 통한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