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사로 살아왔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기도 했고
IT 기획자, 기준정보 담당자로 소속된 회사명 뒤에 숨기도 했으며
산업공학, 수학, 경영학 전공 뒤에 숨기도 했다.
때로는 '암'이라는 병명 뒤에 숨기도 했다.
내가 그 명사들에 걸맞게 열심히 살아온 것은 사실이나
가족이 바라는 나, 회사가 바라는 내가 되느라
더 나다울 수 있었음에도 그러하지 못했다.
공부를 왜 하는지,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려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그저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암투병 과정을 겪으며, 또 이겨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글을 쓰고 기본학교에 지원했다.
그런데, 기본학교 학생으로 생활하며
또다시 기본학교라는 이름 뒤에 숨으려는 나를 발견했다.
함평을 오가며 공부하는 것이,
기본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강사와 스승님께 질문하는 것이,
나를 바꾸지 않는다.
나에게 묻고
스스로 답을 찾으며
내가 지향하는 곳을 향해 걷고 움직이며
동사로 살아야 한다.
누가 시키지도 떠밀지도 않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며
한다고 한들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일임에도
해야 할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며 그들을 욕 하고
누군가 해 주기를 바라며
뒤로 물러서 있는 나를 버리고
이렇게 하자고 방안을 제시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돌아보고 보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뚜벅뚜벅 걸어가며 변화되고 변화를 일으키는
동사의 나로 살아야 한다.
지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