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제라는 이름의 강물이 흘러드는 고독의 바닷속으로 깊숙이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으로는 가장 고운 침전물만 주위에 쌓였다.
- 월든, '손님들' 중에서 -
어느 모임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경험을 하며 이 문장이 생각났다. 인사를 하고 먼저 말을 걸고 노력하다 보면 그 안에 조금씩 녹아들 수 있겠으나 마음이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왜일까? 이미 그 안에서 함께하던 사람들 간에 쌓인 시간의 두께를 적시며 안으로 들어가기에 나의 수분이 부족하다. 나의 역사와 그들의 역사가 섞이기 위해서는 내가 물이 되어 그 안에 스며들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바닷속 깊숙이 물러나 있다.
학교와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모임에 속해 있었고 겉으로는 잘 녹아드는 듯 보였다. 리더나 총무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가면 속의 나는 겉돌았다. 학교와 사회는 학위와 급여 혹은 그와 관련된 다른 무언가를 제공하기에 가면을 잘 쓰고 있는데 반하여, 이외의 모임에서는 가면 쓰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가면을 쓰지 않고도 편안했던 모임은 기본학교 토의 모임이 유일하다. 구성원 모두 일상을 바쁘게 살다 토요일, 함평의 기본학교에 들어올 때는 바닷속 깊이 물러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은 가장 고운 침전물이다. 토의모임 동지들도 그러하다. 서로 물이 되어 구성원 각자의 두께 속으로 스며든 후 다시 고체가 되었다. 이제는 물이 되어 섞이지 않고도 각자를 인정하고 응원한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한다. 보고 싶지만 멀리 있다 느끼지 않는다. 늘 함께 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지금의 평안한 상태를 깨고, 나는 다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강으로 흐르고 싶다. 이런저런 모양이 되어 이 세계와의 접촉면을 늘려가고 싶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영원히 침잠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고운 침전물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