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갱년기를 겪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폐경 이행기였지만 특별한 증상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올여름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무릎과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움직이는 것이 뻑뻑하고 아프기도 했다. 병원에 갔지만 관절염은 아니란다. 그저 ‘노화’ 일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의사의 말이 낯설었다.
‘내가 노화라고? 아직 춤도 잘 추고 운동도 하는데?’
노화란 말은 아직은 내게 먼 이야기 같았다. 노화라 하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면 쓰는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곧 노화란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생리 주기가 짧아져 일주일에 한 번씩 생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주일 생리하고 일주일 쉬고 또 일주일간 생리하고. 이렇게 삼 개월을 반복하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어지러운 건 물론이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지 알 수 없는 피부병이 생기고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다. 감기와 코로나, 위경련이 번갈아 찾아오고 나는 완전히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 ‘맞아, 내가 졌어. 나는 노화가 온 거야. 나는 늙어가고 있다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도 변화가 온다. 눈가에 주름이 짙어지고 입가에도 주름이 깊어졌다.
얼굴 변화뿐 아니라 마음은 어찌나 요동치는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몸과 마음이 조각조각 찢어지는 것 같았다. 노화는 내겐 ‘해체’였다. 과거의 내가 조각조각 찢겨 해체되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아침, 그날은 새벽에 눈이 떠졌다.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아!’ 벌떡 일어나 산부인과를 찾았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폐경될 텐데 그냥 참으시는 것이 어떨까요?”
“네? 선생님! 저 죽을 거 같아요. 당장 생리를 멈추게 하고 싶어요.”
절박한 내 표정에 선생님은 호르몬 약을 권했다. 부작용 설명과 함께 그래도 먹겠냐는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약을 달라고 했다. 당장 이 고통을 멈추게만 할 수 있다면 약의 부작용 따윈 감수하리라.
약을 먹고 나는 생리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예전보다 체력이 떨어졌지만 더 이상 고통스럽진 않았다. 마음도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여유가 생긴 나는 이제야 노화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갱년기와 폐경은 과거의 내가 해체되고 재결합하는 과정이었다.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고 안에서 몸을 액체로 바꿔 나비의 몸으로 재결합하듯 우리의 몸과 마음도 그렇게 해체되고 재결합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급격하게 바뀌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두어 달이 지나고 나는 예전과 다른 몸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예전만 못한 체력과 힘, 얼굴에 주금과 침침한 눈, 조금 희미해진 기억력까지. 나는 과거의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차츰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몸이 내게 가르쳐 주는 걸 배우고 있다. 예전보다 몸을 살살 다룰 것, 마음도 예전보다 더 가볍게 만들 것. 삶에서도 덜어내고 또 덜 어내며 간소하게 꾸릴 것.
‘나는 예전과 다르다!’
나는 지금 고치에서 막 나온 나비 같다.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는 있지만 이제 막 날개를 퍼덕거리는 나비 같다. 성장통은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비는 나비가 아닌가. 애벌레로 살아 봤으니 멋진 나비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갱년기도 그리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이것을 성장통으로 받아들이고 멋진 나비로 재결합하느냐 고통으로만 받아들이냐는 오롯이 본인 몫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