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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ug 08. 2017

#104.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약점을 강점으로 영리하게 잘 이용한 작품.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2017년 5월 29일에 작성되었습니다.


01.


탕.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별안간 격발된 총소리와 함께 회를 집어 먹던 정승필(김성오 역)이 죽음을 맞이한다. 마주 앉아있던 병갑(김희원 역)과 농이나 나누던 대사만을 따라가며 이제 막 스크린에 집중하려는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 법했던 장면. 영화는 그렇게 시작부터 등장인물 하나를 죽이고는 유유히 시간을 거슬러 본 이야기로 넘어간다.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를 죽이기 전, 죄의식이라는 게 작업 방식을 많이 발전시키고 있다던 병갑의 말처럼 변성현 감독은 마치 그 동안의 한국 영화들에 죄의식이라도 느껴왔던 것처럼 작품의 조목조목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간결하게 연출한다. 감독의 전작인 <나의 PS 파트너>(2012)에서 보여준 감각들이 장르를 옮겨와서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02.


표면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교차편집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두 가지 이상의 내러티브를 두고 이야기를 교차시켜 진행하는 방식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자칫 그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할 경우 흐름이 끊어지고 호흡이 매끄럽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반드시 끝까지 쥐고 가야 할 이야기의 핵심들을 그 과정에서 놓지는 경우들도 생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뛰어난 편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두 시점이 교차되어 진행되는데도 그 어떤 지점에서도 맥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기 힘들 정도다. 끊임없는 교차편집이 반복되는 “폴 맥기건” 감독의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2004)만큼이나 교차편집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고병철”(이경영 역) 회장 앞에서 “천 팀장”(전혜진 역)과 “현수”(임시완 역)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넉살 좋게 마주하는 장면이라든지, “재호”(설경구 역)의 편에 서기 위해 교도소를 찾은 “병갑”에게서 “현수”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게 되는 장면과 같은 지점들이 대표적이다. 교차 편집을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관계들 속에서 숨기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들을 결코 흘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03.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크린 상에서는 이야기의 시점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그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재배열 해보는 일이다. 아주 사소한 지점의 왜곡이 편집의 전체적인 방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관객들이 이해하는데 잡음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두 시점을 떼내어 분리시키더라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교도소 내부의 이야기와 교도소 외부의 이야기가 마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서로를 잘 보완하고 있다. 교도소 내부의 이야기가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갖고 서로에게 접근하는 “재호”와 “현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교도소 외부에서는 그 두 사람의 의도와 진심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또 어떤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 전개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데는 세심하게 짜인 인물들의 배경 이야기도 큰 도움이 된다.


병갑은 단순히 웃기기 위한 캐릭터가 아니다.


04.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병갑”이라는 인물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무게를 묘하게 잡아내고 있다. 캐릭터 자체는 눈치도 없는데다 배짱도 없어서 배경이나 권력이 없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약한 양아치 캐릭터에 불과한데 말이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의 특성대로 공동 회장이나 CEO와 같은 권력의 정점에 다다르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현수”에게 쪽을 팔리고 “고 회장”에게 뺨을 얻어맞은 뒤에 울음을 터뜨리는 그가 단순히 웃음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바로 혈육과 비혈육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내막을 알고 있으면서도 혈육인 삼촌 “고 회장”이 아닌 고아원 동기인 “재호”의 편에 서려는 모습은 “재호”와 “현수”가 각각 자신의 엄마(혈육)를 떠올리는 지점과 오버랩 된다. 물론 그가 “고 회장” 앞에서는 “재호”를 처리하자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그의 캐릭터가 단순히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에 바쁜 양아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부분이다.


05.


교도소로 면회하러 온 “병갑”이 삼촌을 버리고 자신의 편에게 서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재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가족을 제낀다는 이야길 그렇게 쉽게 하냐?” 아닌 듯 싶지만 재호에게 가족이란 단순한 증오의 대상이 아닌 필요악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부모들이 자신만을 남겨두고 죽었던 기억.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을 홀로 뒷골목을 방황해야 했던 그였기에 더욱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 곳에서 혈육도 아닌 다른 누군가를 가족으로 들인다는 것이 가당키나 했을까? 어쩌면 같은 고아원 출신의 “병갑”에게 삼촌이 있다는 사실은 한 편으로 부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병갑”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고 자신을 고아원으로 쫓아냈던 삼촌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호”에게 “현수”의 존재는 더 미묘할 수 밖에 없다. 분명히 처음엔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신의 편으로 ‘감기 위해서’ 자신의 곁을 내어준 것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은 그렇지 못했던 그 마음을 생각해 보자.


 “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06.


한 편, 그런 “재호”와 달리 “현수”에게 엄마의 존재란 삶의 모든 것이었다. 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임무를 3년이 넘도록 감내한 이유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였다.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병상의 엄마가 신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천 팀장”의 말만 믿었다. 아마도 그 일만 끝나면 어떤 동화의 마지막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가 될 줄만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처음에서 죽임을 당한 또 하나의 잠입요원 “승필”이 일찌감치 죽임을 당한 것. 그리고 “현수”가 생각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해내는 것 같다고 “천 팀장”은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철창 안에 갇힌 채 3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현수”가 그 모든 내막을 알 수 있을 리 없었다는 사실이 이 모든 이야기들의 트리거가 된다. 그러던 중에 “재호”의 무리에 의해 “현수”의 엄마가 살해당한다. “천 팀장”은 그런 “현수"를 모른 척 할 뿐만 아니라,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들을 모두 함구한다. 그녀는 “현수”의 감정보다는 사건의 해결이 더욱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재호”는 마치 그를 진심으로 생각이라도 하는 듯, “현수”가 장례를 직접 치를 수 있게 도와주고 모든 장례 비용도 마련해 준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신의 편으로 감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현수”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마주 앉은 자리에서 “현수”의 현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재호의 한 마디가 너무도 치명적이다. “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07.


“현수”의 상황과 깊게 얽혀있는 “천 팀장”. 표면적으로는 정의만을 부르짖는 심지 굳는 형사로 보일 지 모르겠으나, 그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은 인물이 바로 그녀다. 자신이 생각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냉혈한 인물. 어떤 면에서는 이 작품의 불한당으로 표현되고 있는 “고 회장”과 “재호” 이상으로 불한당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녀가 굳건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직업 때문이다. 잠입조를 쓰면서까지 마약을 뿌리뽑겠다는 그녀의 말 뒤에 가려진 진짜 이유는 “아기자기하게 해서 본청은 언제 들어 가시려구요?” 라는 다음 대사에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그녀의 목적이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 뜻이다. 만약 이 영화가 기존에 존재했던 작품들처럼 단순히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화하기 위해 경찰을 잠입시킨다는 흐름이었다면 “천 팀장”의 입에서 “잠입조 쓸게요” 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불현듯 느끼고 만 불안감대로 망쳐버렸을 것이다. – 이 불안감은 그 동안 숱하게 보아왔던 비슷한 전개의 한국 영화들을 따라 이 작품도 진행되리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그녀 덕분에 “현수”는 두 인물 사이에서 고립될 수 있었고 영화의 전개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다.


영화는 그가 무너질 수 있을 모든 상황들을 의구심을 가질 수 없게끔 풀어나간다.


08.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작은 이야기들을 고르게 또 명확하게 안고 있으니 이 영화의 큰 이야기가 재미없게 느껴질 리 없다. 두 사람이 출소한 뒤에 이어지는 장면들에는 “고 회장”의 죽음, “현수”의 배신, “천 팀장”의 시험 등 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장면들은 “재호”와 “현수”의 관계로 향한다. 처음 교도소에 입소한 “현수”가 “재호”를 속이고자 했으나 결국엔 진심으로 그를 따르게 되었던 것처럼, “재호” 역시 “현수”를 속여 이용하고자 접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심이 되어가는 모습. 물론 “현수”를 이용하고자 했던 방식이 그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는 형식이었기에 그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었던 “재호”다. 결국 “내가 뭐에 씌었었나보다. 처음부터 널 죽였어야 했어.”라는 그의 말은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현수”를 단순히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잠시나마 가족으로 느꼈던 것임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사이며 두 번 다시 그 가족을 잃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현수”에게 겨눈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었다는 해석의 반증이기도 하다.


09.


어린 시절 부모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결국 마음 속에 다시 피어난 가족인 “현수”에게 죽임을 당한 “재호”와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한 엄마의 복수를 하기는 했으나 어쩌면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었던 사람 둘 모두를 잃어버린 “현수”. 이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영화의 엔딩 신에서 빨간색 스포츠카 위에 누워 눈물을 흘리던 “현수”의 모습으로 대변된다. 그리고 이 스포츠카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출소하는 “현수”를 같은 스포츠카 위에서 기다리던 “재호”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사실 이 영화에 딱 하나 정도의 개인적인 욕심을 보태자면, 이 엔딩신에서 “현수”와 스포츠카가 스크린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타이틀이 왼편에서 뜨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의 화면과는 선대칭인 셈으로 말이다. 만약 그런 구도가 잡힐 경우, 오프닝 장면과 엔딩 장면은 ‘불한당’이라는 하나의 타이틀을 가운데 두고 양 쪽에, 왼편에는 “재호”가 오른편에는 “현수”가 나란히 차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 되면서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의 동일한 흐름을 따라 갈 것 같다는 불안이 느껴지는 지점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감독은 그 지점의 불안을 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고 짜임새 있게 설명하면서 해결해 낸 것 같다. 동일한 소재라고 하더라도 이야기는 충분히 다양해 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던 한국 영화의 획일적인 시선들을 영리하게 잘 이용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늘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설경구”라는 배우 앞에서도 전혀 어설프지 않았던 “임시완”이라는 배우의 앞날을 더욱 기대하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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