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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Oct 15. 2019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177. 2019 부산국제영화제_상영작 06_도이치 이야기


**저는 지금 부산영화제에 와 있습니다. Press Guest로 참가하는 것도 올해로 3년 차네요.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곳에 남기는 영화 중에는 이미 개봉을 확정 지은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영화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도 다양한 영화들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짧게나마 전달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쓴 <아워 바디>의 글이 최근에 영화의 개봉 확정과 동시에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자료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영화제의 모든 일정이 지난 12일 폐막식으로 끝났습니다. 일정으로 인해 영화제 기간에 못다한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남겨둘 예정입니다.


**모든 자료는 전문 혹은 부분 발췌의 형태로 작성과 동시에 기사 자료 혹은 지면 에세이, 관련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01.


도이치(에모토 아키라 분)는 뱃사공이다. 지난 40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어 강을 건너다 주고 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는 그.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 있다면 이웃에 사는 젊은 청년 겐조(무라카미 니지로 분)다. 강의 상류에는 언젠가부터 다리 하나가 지어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다리가 완공된 후의 변화, 활기를 띠게 될 마을과 조금 더 편리한 이동에 반기고 있지만, 도이치는 그렇지 않다. 저 다리가 완공이 되고 나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이 나루터를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가족이 모두 살해되고 홀로 겨우 살아남은 소녀 후(카와시마 리리카 분)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자신의 오두막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그는, 그 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만다.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오다기리 죠의 감독 데뷔작 <도이치 이야기>는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점차 편리해지는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공과 같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인지와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말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동사서독 리덕스> 등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도맡으며 세계적인 촬영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도일 감독이 함께 하면서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표현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강의 흐름을 통해 시간을 흘러 사라져가는 것들의 미적인 묘사가 이 작품의 백미다.


02.


이 영화의 주인공인 도이치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감내하고 수용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배를 타러 오는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나 거친 언사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철저히 손님으로 대하는 모습은 아주 기본적인 종류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다른 사람들, 가깝다고 여겨지는 겐지에게조차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원래 그가 갖고 있는 성향 자체를 그렇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영화의 중간에 등장하는 흑백 장면을 – 그의 내재된 폭력성이 그려지는 부분이다. – 떠올려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겐지나 후 역시 감내하고 수용하는 부분이 보여지긴 하지만, 극의 후반부에서 변화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영화의 주제 의식을 대표하는 인물이 도이치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를 이제는 사라져 가는 과거의 의식 정도로 변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의식 그 자체만이 아닌, 그 의식 자체를 버리지 않고 유지하려는 속성까지 더한 것으로 말이다. 이때, 그의 대척점에 놓이게 되는 것은 상류에 지어지고 있는 다리가 완성된다는 것의 의미가 된다. 과거의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의 출현과도 같다. 감내하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미덕이 과거의 유산이라면, 상류의 다리가 지어지고 난 뒤에는 그런 사람들이 상실 혹은 극단적으로 감소하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인물들만 남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마치 현재의 우리 모습과 유사하게. 실제로 이 작품을 연출한 오다기리 죠 감독은 작품의 역점을 이 부분에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03.


영화의 중간에 등장하며 도이치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폭력성과 강 상류에 지어지고 있는 다리에 대한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흑백 영상. 이 부분은 영화 속 다른 장면들과 결합하며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현재와 미래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지점이 된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던 과거의 미덕, 참아내고 수용하는 것들이 그에게도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게 되어버린 새로운 세대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다만, 이 차이에 대한 부분을 영화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도 그려지고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치가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견디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순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이 흐르던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흘러가듯이.


후의 등장과 함께 강의 망령(망토를 둘러쓴 어린 아이)이 나타나고, 이치노미야 살인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가족과 함께 세상을 떠나야했던 소녀의 생명을 살린 것에 대해 ‘순리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눈 여겨 볼만하다. 흐름에 반(反)하는 일로 도이치가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망령. 이는 상류의 다리를 놓는 행위, 그러니까 여기에는 현재의 세대가 자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인위적인 행동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있다. 선의로 행한 행위가 역행일 경우에도 그 대가는 가혹할 만큼 클 것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의 역행에 따르는 대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말이다. 영화의 말미에서는 그의 말대로 다소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고통을 받게 된다.


04.


‘바람이 불면 배는 떠내려 가는 법일세’


이미 시작된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 그 흐름을 역행하거나 막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지라도 누군가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것을 오다기리 죠 감독은 표현하고자 한다. 결국에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겠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이 내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다리가 사라지기만을 바란다’는 도이치의 자조 섞인 말이나, 다리를 짓기 시작하면서 사라져 버린 반딧불에 대한 회상과 같은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리가 완공되고 문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며 완전히 변해버리는 겐조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 <도이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그런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깊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직접적으로 시대를 질책하거나 책망하지 않고도 극의 흐름을 따라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극의 흐름은 극단적으로 느리고 호흡은 늘어지지만 수묵화의 느낌이 진하게 배어있는 극도의 미적인 아름다움과 무게감 있는 에모토 아키라의 연기는 138분의 러닝 타임 내내 집중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유산을 지키기만 하겠다는 고집스런 태도에도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런 시선 때문이다. 결코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쪽의 태도가 아닌,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 있고 함께 안고 가야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떠나 보낼 때가 되어 떠나 보내게 되더라도 한번쯤 돌이켜 생각해보자는 것.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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