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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pr 28. 2021

벌써 세 번째,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택배를 받았다.

#199. 단편영화 <졸업>


**넘버링 무비의 모든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인디극장 X 오렌지필름 기획전 : Time travel'은 오프라인에서 관객을 만나온 오렌지필름의 '시간'과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온 네이버 인디극장의 '시간'을 교차하며, 영화가 가진 '시간'을 찾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관객들이 직접 선택한 작품들을 포함한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3월에서 8월까지 총 5회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작품은 네이버 인디극장(https://tv.naver.com/indiecinema)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한태희 감독의 영화 <졸업>은 28번째 생일을 맞는 도연(이유진 분)의 이야기다. 올해로 벌써 세 번째.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택배 상자를 받았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영화 <러브레터>(1995)의 DVD. 도연이 영화 평점 사이트에 별 다섯 개를 줬던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왔던 <몽상가들>(2003), 재작년에 왔던 <화양연화>(2000)도 마찬가지다. 모두 별 다섯 개로, 언젠가 그녀가 사랑했던 작품들이다. 이상한 마음에 자신과 함께 이 영화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리스트를 적어 본다. 세 편 모두에 별 다섯 개를 준 사람이 딱 한 사람이 더 있다. 민아(한초원 분)다. 잊고 지냈던 그녀의 기억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감독의 졸업 작품인 이 영화는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상상에서부터 출발한 작품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비슷한 처지의 모두가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 아마도 각자의 길을 찾아 모두 뿔뿔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지금 돌아보면, 감독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흩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모이기도 하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 <졸업> 속에 등장하는 도연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감독이 했던 생각들의 출발점에 놓인 고민과 맞닿아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에 대한 쓸쓸함은 극 중 도연과 태우(정광수 분)의 대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입대 후 백일 휴가로 자신이 롤모델로 생각했던 도연을 찾아온 태우. 하지만 그의 앞에 앉은 도연은 그가 생각했던 능력 있고 재기 발랄한 인물이 더 이상 아니다. 특별한 직업없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대신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그녀는 직업의 문제를 떠나 세상 모든 일에 염세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쩌면, 도연에게는 태우 또한 자신의 곁을 떠난 인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만 여기에서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그런 도연의 태도 또한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연은 자신에게 DVD를 보내온 인물이 누구인지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하루가 아쉬울 휴가를 할애하며 자신을 굳이 찾아온 태우에게도 살갑게 굴지 못한다. 결국 세상이 자신을 떠나갔다고 생각하는 그녀이지만, 자신 또한 세상에게 그리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몫만큼, 그녀 역시 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세상에는 변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 변화의 시기를 함께 맞이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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