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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Mar 24. 2020

인터넷이 사라진 일상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컴맹이의 분투기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을 세 가지만 꼽아보자면 초등학교 때 배운 것처럼 의식주라고 대답하겠지만, 거기에 하나를 더 챙길 수 있다면? 요즘 같아서는 망설이지 않고 '인터넷'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우리 집에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컴퓨터가 무려 4대다. 남편이 쓰는 데스크톱, 나의 오랜 자취생활을 지켜준 데스크톱, 작년에 새로 구입한 노트북, 재택근무를 위해 학교에서 챙겨 온 노트북. 이렇게 컴퓨터가 많건만,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건만, 최근 며칠 동안 나는 인터넷이 안 된다며 계속 출근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처음에 학교에서 노트북을 가져와 전원을 켜고 집에서 쓰는 노트북으로 했던 것처럼 모니터 아랫부분에 와이파이를 연결하려고 했더니 '비행기 모드'에서 변하지 않았다. 몇 분 동안 네트워크 설정에 들어가 혼자 씨름을 하다가 학교 노트북은 포기하고 데스크톱을 켜서 업무관리시스템에 들어갔더니 한글 ODT인가 뭐시기 설치에 막혀서 공문이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집에서 쓰는 노트북을 켜서 들어가 보려니 여기서는 크롬만 사용하는지라 익스플로러 사용은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 길로 백팩에 노트북을 집어넣고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이 말을 했더니 하얗게 생긴 무언가를 가지고 와 학교 노트북 usb 포트에 꽂아줬다.(이 노트북에는 무선 와이파이 드라이버인가 뭐 그런 게 없다고 한다) 거짓말처럼 비행기 모드 옆에 와이파이 표시가 생겨났다. 그리고 내 노트북 바탕화면 아랫부분에 'in'까지만 쳤는데도 거짓말처럼 익스플로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있나?


 그다음 날 학교에서 가져온 노트북에 공유기를 꽂아 공문을 처리하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일을 하려고 보니 와이파이 표시는 사라지고 '비행기 모드'만 남아있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인 '다시 시작'을 해봤지만 와이파이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다른 컴퓨터들도, 휴대폰도 와이파이가 다 사라진 상태였으니 명백한 인터넷 고장이었다. 오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요즘 집에서 일한다고 인터넷을 너무 많이 썼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컴퓨터를 켜놓으니 얘가 지친 건가? 누구나 그 무엇이나 힘들 땐 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 전원을 다 끄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그렇게 인터넷이 끊기고 나자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꽤 고민이 됐다. 유일한 구원자는 LTE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소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용량 최소 요금제를 사용하는 나는 겁이 나서 폰으로 유튜브를 틀지도 못했다. 정적이 흐르는 집에서 소파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인공지능 스피커가 말을 걸어왔다.


 "네트워크 상태가 불안정해요."

 "그래서 어쩌라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세요."


 아니, 헤이 카카오 쟤가 지금 인터넷이 안 되는 애가 맞는지, 나보고 인터넷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차분하게 생각해보란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컴퓨터를 켜봤지만 인터넷은 안 되는 게 맞았다. 인터넷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공유기 코드를 다 뽑았다가 다시 끼워보라고 했다. 몇 번이나 해봤지만 되지 않아서 백팩에 노트북을 집어넣고 어쩔 수 없이 또 출근을 했다. 그날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내가 했다는 대로 공유기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넷이 되는 게 아닌가! 아니, 이 놈이 사람을 차별하나? 남편은 나를 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코드를 뽑았으면 다시 그 자리에 꽂아야지 왜 두 개를 바꿔 끼워놨냐면서. 이렇게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멍청할 때가 있다.


 그렇게 살아난 인터넷은 다음 날 오후부터 또 먹통이 됐다. 이번에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원격으로 본다더니 우리 아파트 지하 선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바로 문제를 해결해줬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그런데 한 시간 정도 후에 또다시 인터넷 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대로 안 고쳐주면 해지해버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전화했지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고 하는 앳된 목소리에 '해지'의 '해'자도 꺼내지 못했다. 원격으로 무언가 해주면 잠시 동안 되다가 조금 지나면 또 끊기고의 반복이었다. 밤까지 되지 않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또 되기도 하고,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결국 인터넷 기사님이 왔다! 잠깐 앉았다가 일어나셨을 뿐인데 와이파이는 그 이전처럼 빵빵하게 터지게 되었다. 문제가 뭐였냐는 내 질문에 친절하게 '필터가'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 머리에 남은 정보가 하나도 없다! 이게 뭐지! 저녁에 돌아온 남편은 기사님이 인터넷을 어떻게 고쳤는지 무척이나 궁금한가 보다. 기계를 잘 만진다고 잘난 척했던 게 기억나 전문가의 영역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사실은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반 아이들에게 전화로 건강한지, 과제는 얼마나 했는지 물어봤다. 한 아이 말이 인터넷이 안 돼서 과제를 확인하지 못했단다. 카톡은 잘 되는데 학교 홈페이지는 안 들어가진다고? 아이가 말하기를, 인터넷에 들어가면 화면이 까맣게 변해서 확인을 못했다고. 어떤 상황이라는 건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이 안 된다고 고객센터에 전화하고 남편에게 투덜대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때 내 모습이 인터넷 화면이 까맣게 변해서 과제를 못한다고 말하는 아이와 비슷하지 않았을지.


 항상 옆에 있어주는 존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데 이제는 그 대상에 '인터넷'도 반드시 포함을 시켜야겠다. 늘 연결되어 있고 접속되어 있었기에 소중함을, 감사함을 몰랐을 뿐. 이번 기회에 공유기는 어떻게 연결을 하는 건지, 공유기에 박혀 있는 그 작은 점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인지 능력의 한계를 알기에 호기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빵빵한 와이파이에 빠르게 전환되는 인터넷 창,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모두 감사하게만 느껴지는 날이다.


컴퓨터를 켜면 당연히 인터넷이 되고, 봄이 오면 당연히 꽃구경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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