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영화]
9년 전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은 범죄 자체보다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태도를 다뤘다. 제벌 3세인 조태오(유아인)를 비롯한 이들은 경찰에게 당당하게 금품을 건네거나 애써도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며 조롱했다. 범죄 사실을 숨기고 조작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이유를 극 중 인물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모두가 알았다. 이미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극 중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특별한 고민 없이 사회 고위층도 법 앞에선 평등하다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명제를 따랐다. 그는 우직하게 사건을 추적해서 세상에 끄집어냈다. 그것도 아주 경쾌하고 신나게. 관객들은 그것이 우리가 바랐던 이야기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지난달 개봉한 ‘베테랑2’(감독 류승완)도 전작처럼 악행 그 자체보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한다.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극악한 범죄자들을 경찰이 아닌 누군가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단하는 것이 나쁜가. 눈에는 눈, 악에는 악으로 대응하는 것도 나쁜 범죄로 봐야 하는가. 경찰이 잡거나 법으로 처벌하기 힘든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과 뿌리가 같다. 사회 시스템이 처리하지 못한 빈틈을 메우는 개인의 이야기가 일상에서 맛보지 못한 감동과 쾌감을 주는 구조도 비슷하다. 하지만 방향성이 다르다. ‘베테랑’이 잠시 잊고 있던 상식이 당연한 것이라고 일깨워 줬다면, ‘베테랑2’는 지금 상식이라 믿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의 편에 섰던 서도철이 이번엔 대중의 반대편에서 싸우게 된 것이다.
‘베테랑2’는 조금 늦게 도착한 이야기다. 경찰과 법이 처벌하지 못한 범죄자를 누군가 음지에서 몰래 처단하는 사적 제재는 최근 수년간 여러 작품에서 반복해서 다뤄졌다. 해당 작품들에선 그들을 응원하다 못해 영웅화하거나 피켓을 들고 계란을 던지며 범죄자를 강하게 비난하는 일반 시민들이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범죄자를 압도적인 힘으로 거칠게 다루고 시원하게 때려잡는 작품도 인기를 얻었다. 사회 시스템이 범죄를 막거나 정당한 처벌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대중에게 대리 만족을 안겨주는 건 일종의 흥행 공식이 됐다.
1300만 명이나 관람한 ‘베테랑’도 이 같은 사적 제재물의 유행을 만들어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베테랑’에서 서도철이 악인을 잡는 과정은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지만, 개인적인 분노를 해소하는 사적 제재에 가깝게 보인다. 보통 경찰들과는 다른 서도철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할 뿐 아니라,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서도철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연출했기 때문이다. 경찰인 서도철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대신해 주는 것 같은 감정과 누군가 해줬으면 하는 일을 해 주는 서도철이 마침 경찰이라 다행이란 감정을 오간다.
사적 제재에 대중을 끌어들인 흔적도 남아 있다. ‘베테랑’은 대중에 노출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악인을 시민들이 오가는 대로 한복판으로 끄집어냈다.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는 업무 공간이어야 했을 길거리는 수많은 시민들이 각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생중계를 하는 무대이자 배심원들이 공개 재판을 벌이는 재판장으로 돌변한다. 권력으로 무마한다고 범죄가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란 당연한 교훈 속엔 그래서 우리가 눈을 더 똑바로 뜨고 감시해야 하지 않겠냐는 은밀한 메시지가 존재했다. 사건을 멀리서 지켜만 보던 관객은 직접 참여하고 심판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됐다.
그 후 9년이 흐르는 동안 몇 가지가 달라졌다. 짧은 정보와 직감으로 내면의 재판을 마친 개인이 감정적으로 응징하는 행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과 범죄의 경중에 대한 깊은 숙고는 사라지고 있다. 일부에겐 잘못된 것에 분노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시민 의식이 사실 여부보다 더 중요한 듯 보인다. ‘베테랑2’에도 수익을 위해서 가짜 뉴스로 선동하는 유튜버와 그를 옹호하고 후원하는 댓글들,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경찰의 과잉 진압을 감시하는 시민들이 등장한다. 해치는 대중의 응원 댓글을 등에 업고 제대로 처벌받지 못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막힘없이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 사적 제재에 심취해 버린 돌연변이 괴물의 탄생이다.
‘베테랑2’는 늦게 도착한 만큼 지금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베테랑’이 줬던 시원하고 가벼운 쾌감 반대편에 서서 과거 행동을 생각이 짧았던 잘못이라 돌아본다. 그리고 바로잡으려 한다. 서도철은 어쩌면 과거에 자신이 낳았을지 모르는 괴물의 제안을 철저히 외면하고 선을 긋는다. 언뜻 전작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자기 배반처럼 보인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아보길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태오를 잡던 모습에 영향을 받았고, 범죄자들에게 서슴없이 욕하는 서도철의 모습을 본 해치가 그의 선긋기에 당황하는 게 이해될 정도다.
‘베테랑’에서 조태오의 성장과정과 가정환경 등을 늘어놨던 것과 달리, ‘베테랑2’는 해치에게 어떤 서사도 주지 않는다. 해치가 실존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해치를 사람 많은 공간으로 데려가거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해서 그의 범죄를 시민들의 판단에 맡기지 않는다. 사실 영화 대부분 장면에 시민들의 존재는 지워져 있다. 서도철 역시 저러다 죽는 것 아냐 싶을 정도의 폭력으로 쾌감을 주거나 대한민국 경찰로서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다는 뿌듯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경찰이 늘 해왔던, 잘못을 저지른 용의자를 잡아서 벌을 받도록 하는 일을 그의 방식대로 수행할 뿐이다.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베테랑2’는 10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흥행 공식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갔다. 살인은 범죄일 뿐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으로 나눌 수 없다는 메시지에 별다른 이유나 설명을 더하지도 않는다. 영화 속 가상세계를 통해 현실에서 못 이룬 욕망을 대리만족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것만이 영화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처럼, 영화가 일종의 미디어로서 우리 사회의 일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있다는 책임처럼 보인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금’ ‘이곳’이 영화의 배경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결과다.
사건을 해결한 서도철은 일터나 회식 장소가 아닌 불 꺼진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평범한 가장이 되어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장면은 이들의 일상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거라 상상하게 한다. 그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견뎌내는 누군가들의 삶에 닿기를 바라는 것처럼.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온 관객도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의 삶은 영화가 되고, 영화 속 이야기는 다시 우리 삶으로 스며든다. ‘베테랑2’ 이후의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을까. 9년 후 서도철은 또 어떤 새로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까.
<전기저널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