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면(Interface),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지난주만 해도 내 브런치 팔로워는 200명대였다.
그런데 어느덧 300명을 훌쩍 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숫자 변화에 멍해져 있을 때,
옆에 있던 아내가 화면을 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구독자 돈 주고 샀어? 결혼식장에서 하객 사듯이?”
순간 빵 터졌다.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고 정확했으니까.
(브런치에선 ‘팔로워’라고 부르지만, 아내는 늘 ‘구독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바탕 웃고 난 뒤, 입안에 약간의 씁쓸함이 감돌았다.
내가 뭔가를 속여서 얻은 숫자는 분명 아닌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팔로워 숫자가 갑자기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결혼식 하객을 ‘산다’는 마음은 무엇일까.
사람이 많아 보였으면 하는 마음,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 보이고 싶은 마음.
아내의 농담은
내 안에 숨어 있던 그 ‘모양내고 싶은 욕망’을
정확히 건드린 건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을 만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글의 ‘열혈 1호 팬’이기보다는
가장 현실적인 독자로 서 있는 장면.
댓글은 안 달 수도 있다.
“또 글이야?” 하고 귀찮아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이킷 하나는 꼭 눌러준다.
가끔은 오타를 콕 집어주고, 문장 하나를 슬쩍 고쳐주기도 한다.
응원이라기보다 검수에 가까운 애정이다.
생각해보면, 집집마다 ‘1호 팬’의 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우리 집도 그렇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이라서,
내 글을 ‘새로운 이야기’로 읽기보다 ‘오늘의 나’로 읽는 사람.
그래서 더 무심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정확하기도 하다.
가끔 이런 관계가 반도체 공정의 계면(Interface) 같다고 느껴진다.
서로 다른 층이 맞닿는 아주 얇은 경계.
이론적으로는 완벽히 붙어 있어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오히려 가장 예민하고 가장 중요한 자리가 된다.
겉은 매끈해 보여도,
접착이 충분하지 않으면 미세하게 들뜨고 조용히 벌어진다.
반대로 한 번 제대로 붙으면,
아무 말 없이도 오래 버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바깥의 낯선 사람들은 더 쉽게 스며든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이들이
내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조용히 팔로우 버튼을 눌러준다.
가까운 사람의 무심함과 낯선 사람의 온기가
어느 날은 한 문장 안에서 동시에 놓인다.
그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정말 내 생각을 전달(Transfer) 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나를 증명(Proof) 하기 위함일까?’
아내의 무심한 농담한 줄이
저 깊은 곳에 있던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래도 그 한마디가 고마운 구석은 있다.
내가 늘어나는 숫자에 잠깐 취해 들뜰 때마다,
집에서 가장 냉철한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걸어주기 때문이다.
“하객 사는 거 아냐?” 하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그 말에 한 번 웃고, 한 번 씁쓸해하고,
그러면서도 또다시 글을 쓴다.
아내는 비록 가장 가까운 독자는 아닐지 몰라도,
나를 가장 잘 아는 정확한 검수자임은 틀림없으니까.
브런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두 달 반쯤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엔 “한 편만 써보자”였는데,
어느새 회사–집–서재를 오가며 밤과 주말에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특히 주말에는 새벽 3–4시에 잠드는 날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요.
눈을 들어 시계를 보면, 이미 다음 날이 와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 사이 50편이 넘는 글이 쌓였습니다.
저는 원래 좀 집요한 편입니다. 단점이자 장점인 그 성격이,
이번엔 글쓰기와 만난 것 같습니다.
생각공정, 기술공정(반도체 키친), 마음공정(나를 새기다), 여행공정(유럽을 걷다).
여러 공정을 돌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장 자주 돌아오는 곳은,
처음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던 생각공정이었습니다.
미세한 규격 사이에서 진심을 깎아내고자 시작했던
〈생각공정 1: 사유의 밀도〉 연재를 여기서 마칩니다.
14번의 공정 동안 함께해 주신 300여 분의 ‘진짜 하객’과
브런치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독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숫자보다 더 무거웠던 건,
그날그날 남겨주신 조용한 공감이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공정 2: 결함의 미술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시즌2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던 공정의 시선을 조금 옮겨,
인생의 빈틈과 균열을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살아온 무늬’로 바라보는 22점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문을 조용히 열어두겠습니다.
— JP 정표 | Etch the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