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토요일이었다.
어김없이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각자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목회자에게 토요일은 다가올 주일을 준비 및 점검하는 날이기에 가장 바쁜 날이다.
난 평소보다 살짝 일찍 끝난 감이 있어, 아직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연락했다.
오늘 끝나면 데리러 갈까? 이케아 가서 가구도 좀 보고 올까?
아내는 오랜만에 무언갈 먼저 하자고 하는 내가 반가웠는지, 단번에 좋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호기롭게 "데리러 갈까?"라고 물었음에도 렌트할 차량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카셰어링 어플을 통해 차를 빌려 데리러 가곤 했는데, 유독 그날따라 주말이라도 근처에 대여 가능한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결국 차를 빌리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겪은 후에야 작은 경차 한 대를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빌린 경차에 이케아 미트볼 먹으러 가야겠다는 동생까지 태우고, 아내 교회로 가서 아내를 태우고 저녁이 돼서야 이케아에 도착했다.
난 처음으로 이케아에 와봤는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가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난 이케아 식당이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카트와 트레이를 끌고 가며,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직접 담아 오는 방식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난 신나서 "밖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싼데?" 연신 말하며, 이것저것 담다 보니 결국 밖에서 먹는 것과 다름없는 금액이 되어 긴 영수증을 받았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은 후 이제 가구도 보고 쇼핑도 하려 했지만, 그때부터 이미 피로가 몰려왔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경차를 타고 꽤 멀리 운전하고 왔으니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있었던 것이다.
또 이케아가 좀 큰가! 처음엔 그 거대한 규모가 맘에 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 이렇게 여긴 큰 거야? 불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상태를 아내는 금방 알아차렸다.
오빠 또 지쳐서 짜증내기 시작한다! 비상이다! 우리가 먼저 빨리 보고 오자!
동생을 데리고 둘이 마치 춤추듯이 웃으며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뭉클한 느낌이 강하게 내 몸 전체를 크게 한 번 치고 사라졌다.
난 그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잠시 눈에 담으며, 재빨리 카카오톡 메모장을 켜서 그 순간의 뭉클함과 행복을 짧게 메모했다.
나의 젊음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 기분이랄까
“불안은 30대부터 시작된다”고들 한다.
이젠 20대만큼 젊지도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뭔가를 많이 이룬 것도 아니다.
정말로 난 이뤄낸 것도 많이 없었고, 당연히 가진 것도 많진 않았다.
게다가 목회자를 직업적으로 본다면, 다른 직업에 비해 당연히 경제적으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나의 젊은 날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나도 어쩔 수 없는 30대, 나 역시 여실히 불안의 시기를 이런저런 고민들로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고, 불안하지만 버티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곁에서 즐거워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해 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예전에 아빠가 옛 미국에서의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해신 적이 있었다.
어린 누나와 나를 뒤에 태우고, 엄마와 함께 차로 미국 대륙을 여행했었는데, 어느 날 밤은 비가 억수로 내리고, 천둥번개가 쳐서 정말 괜찮을까? 부들부들 떨며 운전하며 가고 있는데,
번개가 칠 때마다 뒷좌석에서 신나게 소리 지르며 웃는 너희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너희가 있었기에 그 천둥번개 치는 밤을 오히려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며 말하는 아빠의 표정엔 여전한 설렘과 행복이 가득했다.
그 당시엔 몇십 년 전에 일을 말하는 아빠가 왜 이렇게 신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었고, 그러한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알 것도 같다.
그리고 나 역시 그날 이케아에서의 그 모습을 아빠처럼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내 곁에서 웃어주는 이들이 있으니, 이 불안한 30대도 그들 덕분에 충분히 잘 쓰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