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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Oct 07. 2023

회사에서 화가 날 땐 바탕화면을 본다.

미술 에세이 #4 모네의 수련 

'탁탁 탁탁'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빨라진다.

'하나, 둘, 셋..' 천천히 숫자를 세며 심호흡을 한다. 1년여간 배워 둔 요가가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은 순간엔 일단 심호흡하기. 요가 시간에 배워 둔 호흡법을 대뇌이며 깊이 들이마신 후 15초 동안 조금씩 내뱉으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회사에서 답답하고 화가 날 일이 뭐가 그리 많은지, 감당하기 벅찬 업무량을 소화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번 달은 무슨 마가 끼었는지 매주 출장에 주말근무까지 감행했다. 체력이 방전되었다는 말이 그냥 말뿐이 아닌 진심으로 몸으로 느낀 적은 참 오랜만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지끈지끈하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적응한 척을 해야 하는 그 상황이 영 편하지가 않다. 정신적으로도 힘든데 이젠 그게 체력적으로도 느껴지는 나이인가 보다.


감정이 요동친다. 모든 사람이 친절하게 얘기할 순 없는데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 툭 내뱉는 말투에 감정이 상한다. 퇴근 직전 상사의 한마디에 또 날이 선 상태로 대응한다.


목표한 건 무조건 달성하기로, 안되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며 달려왔다.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잘 풀리면 좋을 텐데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야심 차게 준비한 캠페인 효과가 미미해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는 J이다. 이런 남의 속도 모르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사수의 잔소리에 화가 난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를 제시하는 것도 이렇다 할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도 아닌 갈팡질팡하며 걱정만 하는 말투에 진이 빠진다.


심호흡만으론 부족하다. 릴랙스 타임이 필요해.


모니터 바탕 화면으로 설정해 둔 모네의 수련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면 의식적으로라도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전시회에서 늘 하나둘씩 사두며 모아 온 그림엽서들을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집안 곳곳에 장식해 온 것이 하나의 소확행이 되었다. 그 덕에 생전 안 사던 사진꽃이, 엽서꽃이 들을 틈만 나면 사고 있다. 티브이 옆에 하나, 부엌 장식장에도 하나, 옷방 옆 선반에도 하나.. 이런 식으로 눈에 잘 띄는 곳에 좋아하는 그림엽서들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나름 실내 분위기를 바꿔보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면 일부러 시원한 느낌을 갖기 위해 푸른색 계통의 그림엽서로 꾸민다던가, 무겁지 않은 밝은 파스텔 계통의 엽서로 분위기를 쇄신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마음이 울적할 땐 더더욱 멜랑꼴리 한 그림들을 픽한다. 노을 지는 풍경이라던가 어딘지 모르게 아련하고 쓸쓸하며 외로움과 고독함이 느껴지는 그런 색감과 시선을 담은 그림들도 나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빛의 표현에 주목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마음이 울적할 때 가장 좋은 치유책이다. 


회사에서는 물리적으로 그림엽서들을 자주 바꾸는 것도, 책상 위에 두는 것도 좀 어려울 것 같아 차선책으로 모니터의 바탕화면을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로 바꿔놓고 있다. 늘 바탕화면은 기본배경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좋아하는 미술 작품으로 바탕화면을 종종 바꾸기 시작했다.  화가 날 때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멍하니 단 몇 초 동안이라도 바탕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으면서 알게 모르게 일할 의욕도 예전보다 더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같은 노트북이지만 좋아하는 미술작품으로 꾸며진 노트북으로 재탄생되면서 애정과 즐거움이 생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인 듯싶다.


마음을 착 가라앉혀주면서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인상파 작품들, 그중에서도 단연 모네의 작품은 언제나 J가 가장 기대하고 좋아하는 작품이다.


연못 위에 수련들이 떠다닌다. 아마 모네가 말년에 머물던 지베르니 정원에 있는 풍경이리라. 고요하고 평화롭다. 물 위에 떠있는 수련도 잔잔하다. 연못 위에 비친 푸른빛, 분홍빛의 조화들이 신비롭다. 아마 날씨가 맑은 날의 풍경일지도. 고요한 그림을 보고 있으니 요동쳤던 마음 한구석도 잔잔해진다. 한번 더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나니 차분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짜증 나고 답답했던 마음이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고요해졌다. 모네 덕분에 다시 일할 맛이 생겼다!  


모네의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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