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아직 세습 중입니다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으로 보는 일본의 세습제와 교육제도

by 재팬모노가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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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일본 애니에는 일본 문화가 가득 담겨있다. 미스터리·추리물인 명탐정 코난 역시 마찬가지이다(최근에는 액션·판타지라는 평이 많은 듯 하지만). 필자는 어린 시절 코난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처음 본 극장판인 베이커가의 망령은 탄탄한 스토리와 인공지능이라는 색다른 테마로 아직까지 최애 극장판으로 꼽고 있다.


인공지능과 탐정의 대결이라는 이야기로 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일본의 '세습제'와 이에 기반한 '교육제도'가 숨겨져 있다. 아이들을 향한 영화임과 동시에 일본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세습제와 그에 따른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지적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인 세습제와 교육제도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 많은 나라에선 옅어진 세습제가 유독 일본에서 눈에 띄는 이유와, 세습제가 교육제도와 결합하여 일본의 교육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이번 글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무사와 세습제


일본 사회의 세습제가 뿌리 깊게 내린 것은 언제일까. 필자는 에도 시대를 꼽고 싶다. 일본 열도의 내분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와 조선 침략과 불안정한 내부 통제로 혼란스러웠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를 지나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계급 체계를 공고히 하여 자신에 대항하는 사회 구조의 완전한 철폐를 꿈꿨다.


img_140104_03.jpg 쇼군을 알현하기 위해 들어가는 다이묘들


에도 막부는 사농공상의 계급 체제를 공고히 하고, 무사 계급 이외의 자의 검 패용을 완전히 금지하였다. 지배층인 무사에게는 검을 패용하고, 묘지(苗字), 즉 성을 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무사 내의 계급도 세분화하여 관직의 이름과 월급이라 할 수 있는 가록(家禄)을 각각 정했다. 가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사의 신분과 관직, 녹봉은 무사 개인이 아닌 그 가문 전체에 주어진 것이었고, 이는 세습의 형태로 계승되었다.


에도 시대에 자리 잡은 세습제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 번 정해진 관직과 녹봉, 그리고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말이 바로 '무사의 아들은 무사, 농민의 아들은 농민'이라는 말이다. 과거나 공명첩을 통해 상위 계급으로 놀라갈 수 있었던 한국과는 달리, 경쟁을 통한 상위 계급 진출 기회는 물론, 무사 신분을 사더라도 구매한 개인에 한하는 등 하위 계급이 무사로, 하급 무사에서 상급 무사로 올라가는 길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일본의 세습 관습은 시대와 정치 체제가 바뀐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천황 중심의 체제가 되어서도, 민주주의 도입 후 의원내각제 체제가 되어서도 지도자층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귀족, 무사 출신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영화 속 인공지능인 노아의 방주가 코쿤 게임을 점령한 이유로 일본의 대개조를 든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노아의 방주는 "더러운 정치가의 자식은 더러운 정치가가 되고, 돈만 밝히는 의사의 자식은 그 길을 똑같이 걷는다"며, 코쿤 게임에 참가한 상류층 아이들을 없애는 것으로 뿌리 깊은 세습제를 타파하고 일본을 다시 세우고자 한다 선언한다. 이를 보듯 일본에선 국회의원 지역구를 자식에게 물려줘 당선시킨다던가, 판검사의 길을 따라간다거나, 예체능계에서도 습명이라는 이름으로 대를 이어 활동하는 경우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kNlbmfEIBnXZQ_kQT-_S-0jbymM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대신(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다)





세습제가 낳은 에스컬레이터식 학교 교육


Detective_Conan_Movie06_-_The_Phantom_of_Baker_Street.2002.BDrip.x264.TrueHD.1040p-CalChi.mkv_000333.254.jpg?type=w400 뛰어난 컴퓨터 실력을 가졌음에도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전우주


세습제가 낳은 것은 비단 지도층의 적은 변동성뿐 아니라 일본인이 학교 교육을 받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중 사와다 히로키(한국명 전우주)는 10살에 MIT에 진학할 정도로 컴퓨터 영재로 평가받는 아이였지만, 획일적이고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하는 일본의 교육제도로 인해 모친이 미국으로 데리고 간다.


실제 일본의 학교 교육은 의무 교육이 시작된 19세기말 이후 획일적인 교육 과정을 주입하는 식의 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학생들의 인권보다 교권이 비대해, 체벌이나 강압적 교육 환경이 주를 이루었고, 이로 인해 비행 청소년이 급증하는 사회문제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2002년부터 이른바 '유토리 교육'으로 알려진 학습지도요령이 고시되며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었지만, 학습능력 저하 등의 이유로 2012년 탈유토리 교육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명문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하나의 재단 계열의 학교를 진학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흔히 '엘리베이터식 학교' 혹은 '유소중고 일관 교육'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황족과 귀족의 교육을 위해 세워진 가쿠슈인(学習院)의 경우, 유치원부터 초등과, 중등과, 고등과를 거쳐 가쿠슈인 대학 혹은 가쿠슈인 여자대학을 진학한다. 지금도 황족의 경우 유치원부터 가쿠슈인에 진학하고 있으며, 거물급 정치인이나 재벌 자제들도 유치원부터 가쿠슈인을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이 필요 없는 공립학교와 달리 사립학교들은 중학교, 고등학교부터 입시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폭이 좁고, 자연스레 있는 집안들의 자제들이 들어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는 것이다.




에도 시대 무사와 그 외 계급, 그리고 무사와 무사 사이에서 시작된 세습제는 관습으로 고착화되어 현대 일본에도 직업이나 가업의 세습이 이어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러한 세습제의 관습은 체제 및 사회의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반면, 사회 및 구조의 변화를 더디게 하고, 고착화로 인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자본이 세습되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일본과 같이 전근대처럼 직업이나 가업이 연속적으로 세습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만큼 세습제라는 키워드는 일본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우리에겐 찾아보기 드문 일이지만, 이를 이해함으로 일본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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