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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서우 Jun 06. 2019

사려니숲길 에코힐링 체험

진서우의 제주 감성 여행기 ⑦

원시의 숲으로 들어 가는 길, 사려니숲길



'사려니 숲길' 제주의 숲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고 자주가는 다. 길이 평탄해서 명상하며 걷기가 좋습니다. 숲길 입구부터 삼나무가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맞이합니다. 고도가 낮은 곳초록이 제법 진해졌지만 이곳은 높은 지대라 5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연둣빛이 미소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 두장의 사진은 때죽나무꽃, 맨 아래는 산딸나무


제주에서 때죽나무는 흔합니다. 그래서 올봄 때죽나무 꽃을 실컷 볼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때죽나무마다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숲에 가지 않는 이상 꽃이 피는 시기를 맞추기도 힘이 듭니다. 때죽나무라는 이름은 활짝 피기  꽃봉오리가 중(스님)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 같아서 붙여졌다 합니다. '떼중'에서 '때죽'이 된 거죠. 식 이름의 유래를 안다는 건 참 재미있습니다. 때죽나무 꽃은 아래를 향해 피어나고 꽃잎이 다섯 장입니다. 산딸나무 꽃은 위를 향해 피어나고 꽃잎이 네 장입니다. 둘 다 하얀 별꽃처럼 앙증맞은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사려니 숲길의 화산송이는 자연적으로 깔려있던 것이 아닙니다. 숲길을 조성하면서 깔았다고 하는데, 색감도 예쁘지만 그락 사그락 나는 소리가 음악소리처럼 들립니다. 비가 와도 물 빠짐이 좋아서 질퍽대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이 나무는 모양이 참 기이합니다. 포토존인데, 이번에는 그냥 지나칩니다.





5월에 사려니숲에 들어온 건 처음입니다. 활엽수들이 연한 초록으로 물들어 있어 더 깊고 더 풍성한 느낌입니다. 매번 겨울이나 이른 봄에 찾아와서 주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초록의 숲을 지키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잎을 떨구고 서 있는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의 잎과 꽃이 궁금하였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더러는 시멘트 길입니다. 양옆으로 산수국이 금세라도 꽃을 활짝 피워낼 듯합니다. 서귀포 쪽에서는 산수국 축제가 곧 열린다는데 여기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월든 삼거리입니다. 입구에서 3.6km 지점에 있습니다. 옆 길로 빠지면 사려니 오름 가는 길입니다. 평소에는 제한구역이라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에코힐링 축제 기간에만 개방합니다. 나는 일단 물찻오름을 올라갈 거라 직진합니다. 물찻오름을 오른 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려니 오름을 올라야 하니까요.





한낮인데도 숲은 어둡고 그늘져 있습니다. 울창한 숲이 만들어 주는 눅눅한 길을 상쾌하게 걸어갑니다.

초록 잎새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청량한 느낌입니다. 아카시아 잎새 같은 나무의 이름이 궁금합니다. 지난번 '한라생태숲'에서 팻말을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하늘을 이불 덮고 살아가는 사려니 숲에는 오래된 침묵이 있습니다. 때로는 침묵보다 더 큰 위로는 없겠지요.





드디어 물찻오름 입구입니다. 남조로 쪽 입구에서 5.4km 떨어져 있습니다. 뱀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고 안내판이 떡하니 있지만 여행자들은 사진 찍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안내판을 못 보았을까요?


물찻오름은 전체 길이가 1.42km이고 5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작은 오름입니다. 분화구에 물이 고여서 형성된 호수인 화구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화구에 항상 물이 차있는 몇 개 안되는 오름 중 하나입니다. 물찻은 '물이 차있는 성'이라는 뜻입니다. 오랜 세월 분화구의 화산송이(스코리아)가 점토질로 바뀌면서 물이 고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라고 표현했지만 겨우 몇 십만 년 전? 아님 겨우 몇 만 년 전일까요? 내 머리로는 느낌이 오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모여서 기다렸다가 20분 간격으로 물찻오름에 올라갑니다. 일 년에 딱 한 번인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찻오름에 들어서자마자 박새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향기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숲을 여행한다고 해서 단번에 모두와 친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이름을 알아가야 하고 이름을 불러줘야합니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압니다. 이 아이도 '박새꽃'이라는 것을 아는데 1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추위가 물러가지 않은 이른 봄, 사려니 숲길가에 연둣빛 잎을 피워내는 모습이 신기했었는데 이제야 이름을 알았습니다.





물찻오름 탐방로는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 매우 좁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좌측통행입니다.


물찻오름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야자수 매트 위로만 걷습니다. 숲은 나무와 조릿대로 빽빽니다. 빛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듯합니다.





물찻오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주인공입니다. 호수 주변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늘이 잠겨있습니다. 봄에 새로 깨어난 초록들도 잠겨있습니다. 내 마음도 호수에 잠길 것만 같습니다.


호수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통행로가 제한 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평상시에도 개방하려고 했는데 심하게 훼손됐던 오름의 복원 속도가 늦어서 어쩔 수 없이 개방이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물찻오름 정상입니다. 어둡고 깊은 숲을 한참을 지나온 후 바라보는 한라산 전망이 아름답습니다. 이 느낌이 좋아서 오름을 오릅니다. 울창한 오름을 오르는 여정도 좋지만 뻥 뚫린 시야로 들어오는 하늘과 원시림, 알콩달콩 모여있는 오름들과 바닷가 마을까지 모두 내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보세요. 한라산 자락을 타고 내려온 초록의 원시림에 마음이 설레지 않나요? 저 끝없는 깊은 숲은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요?





하산할 때는 미끄러지지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내리막이라고 신나게 내려가면 안 됩니다.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신경 안 써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찻오름에 왔다가 머리만한 혹을 달고 갈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림보게임이라도 시킬 듯 옆으로 누워있는 나뭇가지가 군데군데 기다리고 있어요.


내년을 기약하며 물찻오름을 내려갑니다. 지금은 제주에 일년 간 머무르고 있지만 아예 눌러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찻오름을 내려와서 다시 월든 삼거리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단풍나무 잎이 하늘을 가렸습니다. 무수히 겹쳐있는 초록잎이 꼬물꼬물 아기손 같습니다. 넓은 길이지만 길 위초록 천막이라도 쳐놓은 듯합니다. 겨울이나 초봄에는 활엽수가 빈 가지로 서 있어서 하늘이 뚫려있었는데 말입니다. 마치 하늘은 언제나 막혀있었다는 듯 원시림은 울창하기만 합니다.





사려니 오름으로 가는 월든 삼거리입니다. 평소에는 갈 수 없다니 아쉽습니다. 에코힐링 축제 기간도 겨우 열흘 정도라 이 기간에 두 번 오기는 쉽지 않아서 내년을 기약해야 합니다.


사려니 오름까지 약 8km입니다. 이미 9km 정도 걸어왔는데 앞으로 8km를 더 걸어야 하는데다 사려니오름까지 올라야 합다. 다리가 잘 버텨줄 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이때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숲길인지라 어떻게든 걸어야겠지요.





'사려니숲길'이라는 이름은 사려니오름 가는 길이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동안은 사려니오름을 멀리서 두고 걸어다닌 건데, 오늘 드디어 사려니 오름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삼나무 숲이 깊고 산수국이 길 양쪽에 늘어서 있습니다.


사려니 오름 가는 길로 접어들자 평평한 곳을 찾습니다. 아까부터 몰려온 허기를 채우려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김밥과 김말이 튀김, 닭강정을 꺼내놓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점심을 먹습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습니다. 지나가는 어느 부부가 '맛있겠어요.' 하고 말을 건네며 지나갑니다. 시선이 돗자리 위에 잠시 머뭅니다. 몇 초 후에 같이 먹자는 말을 하지 못한 걸 후회합니다. 행동과 생각이 엇박자가 잘 나는 편이라 굼뜨고 곧잘 후회가 뒤따릅니다.





화산송이 밟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동영상을 찍어도 배경음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화산송이의 노래가 더 좋으니까요. 때때로  내가 분명히 길을 걸어간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길이 나를 지나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럴 때는 그 길에 내 마음이 오래도록 어져 있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섯 달 전, 실감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으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숲에서 울고 또 울었는데, 뿌려진 내 눈물만큼 숲은 나를 위로합니다. 서서히 마음이 채워져 갑니다. 내 마음이 가득 채워져서 제주를 떠나는 날에는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되겠지요. 제주에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강하면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 숲을 떠돌고 싶습니다.





이 녀석은 천남성이라는 독초입니다. 사약의 재료라고 합니다. 작년에 치유의 숲에서 빨간 천남성 열매가 예뻐서 손에 들고 걸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열매의 맛이 궁금했는데 먹어보지 않은 것은 조상의 은덕입니다. 거문오름에서 만났던 한 해설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여 이 독초로 어떤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지 모르므로 자연이 키우는 대로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숲길을 걷다 보면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향해 걸어갈 때도 있고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향해 걸어 갈 때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구, 심술궂은 태풍이 부러뜨렸나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 부러진 나무 기둥에서 생명이 움트고 여린 가지가 솟아나겠지요. 언제나처럼요.


사려니 오름 가는 길도 화산송이길, 시멘트길, 현무암 보도블록길 등 다양합니다.






이 나무는 크고 몸에 오래된 표피층과 이끼까지 뒤집어쓰고 있어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무에 대한 지식이 얄팍한 탓입니다. 잎을 보니 후박나무 같습니다. 이 정도 굵기가 되려면 아마 백 개의 나이테를 몸에 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후박나무는 백 년 동안 봄이 되면 내면에 잠들어 있는 연둣빛 싹을 깨워서 사려니 숲을 온통 초록으로 뒤덮어 놓았을 겁니다. 그리고 백 년 동안 교감을 나누었던 태양은 지금도 후박나무를 어루만지며 빛나고 있습니다. 멋진 친구를 가진 후박나무가 부럽습니다.


초록이 우거진 숲길에 마른 낙엽이 수북합니다. 높이 매달려 도도한 저 초록잎들도 겨울이 오기 전 낮은 자세로 땅 위를 구르겠지요.





나는 직선의 길보다 굽은 길이 좋습니다. 저 길을 돌면 뭐가 있을까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구불구불한 길이 우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요.


하늘을 향해 나뭇잎 사진 찍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빛 때문에 나뭇잎의 농담이 수묵화를 그려놓은 듯합니다.






사려니 오름 가는 길에는 하천이  몸의 혈관처럼 여기저기 뻗어 있습니다. 이틀 전 비가 와서 물이 고여 있습니다. 평소에는 건천으로 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제주 화산섬의 특징이겠지요. 제주 산간지역은 비가 오면 하룻밤 사이에 몇 백 밀리미터씩 폭우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 빗물이 거대한 물길이 되어 숲길을 지나갈 테지요.




 

중간쯤 걸어왔을 때 트럭을 타고 가는 여행자를 발견합니다. 세워 달라고 손짓 한 적 없는데…. 그냥 지나쳐 가면 될 텐데 트럭이 저 앞에서 멈춰 서 있습니다.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트럭에 올라탑니다. 두 발로 뚜벅뚜벅 걷다가 트럭을 타고 숲길을 달려가니 기분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건성으로 보고 지나쳤을 숲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지쳤어도 사려니 오름은 올라야겠지요. 원래는 오름 정상까지 올라와서 반대쪽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트럭을 타는 바람에 역주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려니 숲길에는 삼나무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려니 오름에 있는 삼나무는 보기에도 아찔합니다. 평지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 심한 경사 지역에서 자라고 있어서겠죠. 원뿔형 화산체에 버티고 우뚝 서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요?


계단의 경사가 꽤 가팔라 보입니다. 이 계단으로 오르고 다시 이 계단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계단이 모두 770개라고 합니다. 작년에 올랐던 물영아리 오름의 계단은 천 개가 넘고 경사도 훨씬 가팔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계단 사이에  좁은 오솔길이 있습니다. 흙길을 밟는 게 좋아서 오솔길로 걷습니다. 크게 지그재그를 그리며 급경사를 완만한 길을 걷듯 올라가지만 얼마 걷지 못하고 계단으로 돌아옵니다.  두어 번 오솔길로 빠져 걸었는데 걸어간 거리에 비해 고도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단길로 걸었습니다. 다섯시 이후에는 셔틀버스가 끊기는데, 그러면 교통 편이 없어서 아주 큰일입니다. 서둘러 걷기 시작합니다.


빽빽하게 자라는 삼나무 때문에 하늘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삼나무 아래 세상에는 다양한 식물이 형성되지 못니다. 어린 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하고 스러집니다. 삼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새와 벌과 나비의 접근도 막습니다. 삼나무 숲에 들면 새소리가 안 들리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에게는 피톤치드가 좋다고 하니 과학을 잘 모르는 나는 이해가 안 됩니다.


콩짜개덩굴입니다. 요 녀석을 만나면 '숲속의 요정'이라고 부르는데 기분이 좋아집니다. 딱 콩알 크기만 한 게 어찌나 통한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올라도 올라도 계단이 끝나지 않을 듯 뻗어있습니다. 계단 끝에 하늘빛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 후에 정상에 서 있을 내 모습을 그려보며 걷습니다. 정상에 오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릅니다. 그냥 오릅니다. 숲을 떠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아주 조금 성숙해져 있을 테지요.






세상에! 모진 비바람에 쓰러진 삼나무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한 몸에 기둥이 일곱 개가 되었습니다. 맨 끝에 가지가 또 나오고 있습니다. 몇 년 후면 '삼나무 구형제'라고 팻말을 바꿔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항하지 못한 채 쓰러졌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하지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삼나무는 저리도 당당하게 버티어서 마법을 부리듯 멋지게 살고 있네요.


높은 곳이지만 햇빛을 많이 받는 곳인지 산수국 한 송이가 피어있습니다. 산수국은 흰색과 파란색이 있는 거 아시죠? 2주 후쯤에는 산수국이 만개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다시 사려니 숲길을 방문할 계획을 세웁니다. 숲을 떠나기도 전에 말입니다. 제주에 와서 만난 친구랑 오려고 합니다.





정상에서 보이는 전망입니다. 저 멀리 바닷가 마을에는 창백한 하늘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대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빠져듭니다. 문득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숲에 들면 모든 날이 좋습니다. 햇살이 따스한 날이든지, 구름이 끼어 있든지, 비가 내리든지, 바람이 불던지, 눈이 내리던지 숲은 모든 게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습니다. 아, 몹시 더운 날은 빼고요. 하지만 더울 때 숲만큼 시원한 곳은 없으니 그마저도 좋습니다.





마음에 한껏 원시림을 담고 또 담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숲이 더 이상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숲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태고의 나무 아래를 걸어갈 수 있도록 그대로 놔두었으면 합니다.


산딸나무 꽃이 긴 여정을 걸어오느라 지친 나를 위로합니다. 마지막까지 우아한 모습으로 나를 보냅니다. 다음에 이곳에 오면 꽃은 떠나고 없을 거라 생각하니 한 번 더 바라보게 됩니다.




계단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몇 배나 힘들게 느껴집니다. 먼 길을 걷고 또 오름을 두 개나 올랐으므로 전체 여정이 19km쯤 되었을까요? 트럭 타고 온 거리를 빼도 대략 15km 이상 걸은 듯합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셔틀버스를 타는 곳이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십여 분을 못 참고 고사리 서너 주먹을 따다가 버스 한 대 놓치고 마지막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셔틀버스는 우리를 남조로 쪽 입구에 데려다 놓습니다. 사려니 숲에 아침 10시에 들어와서 오후 5시에 빠져나갑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고사리 따러 차를 두 번이나 세웠다는 건 비밀입니다. 제주 고사리가 이토록 부드럽고 쫄깃하게 맛있는 줄 제주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긴 하루가 끝났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대부분의 길이 울창한 산림지대입니다. 나는 숲에 어떤 이로움도 주지 못하고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숲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내 몸의 세포들이 숲이 주는 시원으로 인하여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안의 아픔을 강물처럼 흘려보내라는 숲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음에 사려니 숲에 가면 오랜 친구처럼 진한 포옹을 해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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