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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로삼가아코디언 Aug 04. 2024

20세기 폭스의 화려한 피날레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후기 / 스포주의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봉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 한국 관객수 150만 명을 넘기며 흥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문난 마블 예고편에 먹을 게 없다고 다시 소문이 돌고 있는지 어언 2년째, 다시 한번 속아보자라고 찾아온 관객들이라도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볼거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라 장담한다.(이번엔 선전지가 아니었다니..!) 이와 관련해서 유튜브나 SNS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즐긴다'인데 스스로도 80%는 즐겼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깨알같이 들어간 것들이 꽤 많이 있었다. (배우 개그가 들어간 장면들도 꽤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등장하는 배우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스포일러 주의



1. 울버린


울버린은 등장부터 데드풀과 참 투닥거린다. 서로에게 놓인 상황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덕분에 관객들은 울버린의 액션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근데 훨씬 더 수준 높고 경이로운 수준으로 말이다. 말했듯이 여러 번 투닥거리는 탓에 마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슬래셔 무비의 끝을 보여준 듯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 기억하기론 크게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싸웠던 것 같은데, 단연코 보이드에서의 전투가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울버린 특유의 전투자세(두 팔을 뒤로 보내고 다리를 구부려 마치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가 된 자세)로 시작해서 팬들의 설렘을 가득 안겨주고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단순한 반가움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울버린의 액션신을 그려내었다. 카메라가 보통은 고정된 채 그 화면 안에서 싸우는 그저 긴박한 엑스맨 오리지널 액션이 아니라, 카메라가 울버린을 따라가 속도감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CG가 들어갔었는지 의문이 전혀 들지 않고 정말 깔끔하고 화려했다. 서서 싸우는 씬이 더 뇌리에 남았던 옛날과는 달리 네 발로 달리는 모습이 많이 나와 더욱 원작 코믹스 속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 덩달아 신이 났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마지막 데드풀 군단과의 전투 후반부, 마블판 장도리씬(?)의 마지막이 조금 어색한 CG처리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전까진 대유쾌마운틴의 향연이었다면 버스에서 뛰쳐나온 직후 울버린의 헐떡거리며 두리번거리는 장면은 누가 봐도 CG이면서 바디 트랙킹 조차 하지 않아 어색한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 짐승 같은 전투 이후 지능도 유인원 수준으로 떨어져 보여 심히 걱정이 되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캐릭터들과의 상호작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는 짤막한 장면이었으나, 앞서 얘기한 엄청난 전투 장면들과 비교하게 되어 아쉬움을 자아냈을 뿐이다.


 넘어가기 전에 짚어볼 점은 대부분의 전투장면과 등장인물들 간의 상호작용 즉, 영화 내내 2시간 동안은 이런 CG 때문에 어색하다고 생각할 관객들은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대선배님 / ost 'LFG'도 한몫했다 / 동양풍 트랩 비트 등장씬이라니;;




2. 카메오


엄청나게 쏟아져서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의 흐름은 폭스 사의 울버린을 마블로 데려와 몇몇 인물들에게 소개해주며, 엑스맨이 마블에 편입되는 혹은 그런 중재자 역할로서의 데드풀 이야기를 생각했다. 애초에 데드풀 시리즈가 속 알맹이 없는 플롯에 주변 카메오로 나머지를 채우는 정도이기에 그 이상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전히 속 알맹이 없는 플롯은 그대로인데, 그 나머지를 채우는 카메오의 물량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돌아오는 올드 히어로들의 등장은 서서 죽었던 마블 팬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름으로만 언급되는 캐릭터들도 기분 좋은 미소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매그니토는 반성하자)


 초반 보이드에 등장한 크리스 에반스가 캡틴이 아니라 휴먼 토치로 나오게 된 것부터 유쾌한 반전이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폭스 영화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정리하겠다'라고 포부를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드라마 '미생'의 대사 '우리 팀이 모욕을 당했다라..' 라며 직접 정상 궤도로 돌리겠다는 영업 3팀처럼, 직접 움직여 처리하는 데드풀인 것이다. 덕분에 팬들이 상상만 할 수 있었던 것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만 말 좀 걸어주세요


3. 제4의 벽


 이번에는 관객들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랄까.. 이 영화가 시사하게 될 의미를 생각하며 찾아왔을 것이다. 어느 하나의 거대한 발자취를 쫓아가듯 숭고한 태도도 있었을 것이다. 박물관 내레이션을 듣는 듯이 '맞아.. 마블이 그랬지.. 선배 히어로들이 있었지..' 이렇게 추억을 회상하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데드풀이 관객들 머리를 한 땀 한 땀 깨부수어 놓는다. 


혼자 있을 때 혼잣말 한다고 누가 뭐라 하던가, 그런 캐릭터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관객과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혹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페이크 다큐 형식의 드라마 '더 오피스' 존 크래신스키의 특기인 카메라 응시 정도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연출이다. 문제는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캐릭터들과의 상호작용 이후, 단순히 알겠다고 얘기하는 데드풀은 곧바로 화면을 응시하며 개소리를 연신 내뱉는다. 이게 단순히 장난이라도 자칫 영화 외적인 이야기들을 다른 히어로들이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심지어 '마블'이라는 이름을 다른 캐릭터들 앞에서 사용했을 때는 얼마 없는 이 플롯에 몰입이 깨지는 것이 당연했다.


 울버린과의 브로맨스 그리고 데드풀의 히어로로서의 깨달음을 표현할 때는 의구심이 절정에 달했다. 울버린의 얘기를 잘 들어도 곧바로 벽을 깨서 우리와 대화를 시도하니, 이 친구가 제대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울버린이 팔다리 뽑혀가며 열심히 하는 것도 데드풀이 진지하게 임하질 않으니 그들이 투닥거리며 사태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어떠한 공감과 이해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4. 기타


 빌런과 데드풀 군단의 활용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호의 뜻을 전하고 있다. 원래 그런 영화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애초에 울버린의 존엄을 범하겠다고 드러냈기에 그저 그런갑 보다 싶을 뿐이다. 물론 아쉬움은 존재하나 앞으로의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 마블 작품으로서 의의를 두고 싶다. 정도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이제 드라마보다 영화를 더 신경써줘.


마무리


 그렇다면 이 영화를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자칭 마블의 팬이라도 꽤나 조심스럽게 혹시 그거 봤어?라고 운을 띄어야 한다. 이 영화는 추천의 난이도가 최근 10년간 가장 어려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어벤저스'와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서 그 배경을 알고 보아야 훨씬 더 재미를 더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영화가 그런 축에서도 매우 매니악한 층에 속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에서 20년의 영화들 중에서 주류도 아닌 흥행에 처참히 망한 영화부터 다소 매니악한 영화의 주인공들이 판을 친다. 아예 새로 보는 캐릭터들과 제작과정에서 조차 엎어져 기사로만 접했던 인물까지 말이다. 쉽게 얘기하면 그들만의 영화인 것이다. 직접 하나하나 떠먹여 줄게 아니라면 추천하기가 민망한 영화다.


70만 명 조금 안되었던 '더 마블스'에서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음 마블 영화에 기대를 하게 만들었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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