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무락꼬래이

말 문 터진 물건 19

by 신정애

"여기 뒀던 여무락꼬래이 어딨노."

"여무락꼬래이- ㅎㅎㅎ ㅋㅋㅋㅋ 이건 안마기지."

"그거나 그거나."

"말이 너무 예쁘다. 여무락꼬래이- 우리나라 말 안 같아 ㅋㅋㅋ"

이렇게 내 이름은 여무락꼬래이가 되고 말았다.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05.jpg

원래 이름은 등나무 갈고리 안마기다. 그냥 나무 안마기, 갈고리 안마기로도 부른다. 웬만한 집에는 하나씩 내가 있다. 전기도 안 들고 친환경적이다. 손이 안 닿는 뒤 등이나 어깨 목을 안마한다. 손잡이를 잡고 당기면 고리 끝에 힘이 전달되어 뭉친 곳을 눌러 안마가 된다. 티브이를 보면서 컴퓨터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를 들고 등을 꾹꾹 누른다. 아야야, 아이고 시원하다 한다.


여무락꼬래이는 끓인 소죽(여물)을 소죽바가지에 끌어 담는 도구다. 기역자 모양으로 나무로 깎아 만든 거다. 소죽을 끌어 담으니까 소죽 까꾸래이 -라고도 부른다. 내가 생긴 모양이 여무락꼬래이를 닮았다고 그렇게 부른다. 예쁘고 재미있는 추억이 가득한 옛 이름을 받고 보니 왠지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여무락꼬래이 어딨노?' 이 말이 너무 듣기 좋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이 확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헛 !! 짝퉁이 나타난 거다.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02.jpg

이게 뭐꼬? 새까만 까마귀 같은 게, 이거 나와 완전 똑 같이 생겼네.


동그란 대가리가 웽-- 마구 두드리며 안마를 해댄다.

"와 좋은데? 엄마도 해봐"

다다다다다다 드르르르르

"야 이거 시원한데- 너무 좋아 자동 여무락꼬래이인데?"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검어졌다 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 깔끔하고 세련되고 멋져 보인다. 버턴만 누르면 1초에 수십 번이 뭐야 수백 번을 두드리는 것 같다.


"이건 작아서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도 있어. 충전도 오래가"

"와 안마 해드가 여러 가지야. 이것도 한번 갈아 끼우고 해 봐 "


칭찬일색이다. 나는 위기감에 점점 더 쭈그러졌다.


한바탕 새로 온 안마기를 돌아가며 다해보며 시끄럽던 저녁이 지나고 모두가 잠든 밤이 왔다.

KakaoTalk_20241001_152057501.jpg

일단 저놈을 좀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먼저 말을 걸었다.

"흠흠, 너 이름이 뭐야? "

"나? "

꽁지에 충전 잭을 꽂고서 엎드려있던 까마귀가 눈을 떴다.

"안마기야 전기 안마기 - 맛사지 건 이라고 해"

"내 이름은 여무락꼬래이 라고 해. 본명은 등나무 갈고리 안마기야 "

"오잉? 안마기 - 그냥 나무 갈고리인 줄 알았는데 너도 안마기네. "

"그래, 너를 보자 말자 내가 너의 조상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너무 닮았잖아."

" 진짜 굽어진 등이 똑같네. 그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뭐? 갑자기 너무 늙어버리는 거 아닌가? 흠 그래 뭐 그렇게 불러도 될것도 같기는 한데 ---"

"할아버지는 혼자 인가요? "

"그렇지. 난 그냥 내 한 몸이 전부야. 만능이지. 갈고리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거야."

"저는 동생이 많아요. 셋이나 있어요."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14.jpg
KakaoTalk_20241001_094914489.jpg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13.jpg

"양쪽으로 갈라진 두쪽이랑 얼굴이 납작하고 도틀도틀한 납작이랑 가운데 뚫려 있는 구멍이.

저는 동그란 공모양으로 제일 예쁘게 생겼죠. 봉봉이라고 불러요. 모두 나를 너무 좋아해 줘서 제일 열심히 일해야 해요. "


"그런데 할아버지 - 궁금한 게 있어요. 할아버지도 안마할 때 무서워요?"

"아니, 왜 무서워? "

" 안마를 하며 내 몸이 마구 떨리는데 너무너무 어지럽고 아프고 무서워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냥 꾹꾹 누르면 되거든, 너처럼 미친 듯이 떨리고 두드려 대지는 않지. 불편한 곳에 머리를 대고 지그시 누르면 되니까 힘들지 않고 무서울 거도 없어. "

" 1,2 단은 그래도 정신을 차릴 수 있어요. 하자만 5단은 영혼이 털려 나가 버리는 듯해요, 멈추면 내 눈 코 입은 다 뒤섞여 있어요. 5단을 누를까 너무 무섭고 떨려요 "


할아버지는 떨고 있는 까마귀 봉봉이가 안쓰러워서 안아 주었다.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12.jpg

"괜찮아 곧 익숙해질 거다. 지금은 처음이라서 그런 거야.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다니 놀랍구나. 너는 진짜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안마기야. 그건 멋진 일이지."

"할아버지가 모르는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저는 똥꼬로 전기를 충전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 멍청이가 되어요. 내 목숨이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니 슬퍼요."

"왜 그런 생각을 해. 아픈 데가 많은 사람들이니까 가득가득 너를 충전해 줄 거야. 너를 소중하게 대하고 아껴줄 거야. 너는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훌륭한 일을 하는 거야. "

"정말 그런 거겠죠. 좀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 볼게요."

봉봉이는 할아버지가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 등에 매달렸다.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11.jpg


졸지에 할아버지가 된 것은 황당하지만 어린 봉봉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혼자만 있어서 외로웠는데 봉봉이랑 같이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좋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이 이제 소용없는 물건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 여무락꼬래이라고 불리고 싶냐? "

"아뇨, 그건 할아버지에게 꼭 맞는 이름 같아요. 저는 그냥 봉봉이 까마귀라고 해도 좋아요."

"너 까마귀인 거 어떻게 알았어?"

"할아버지가 저 처음 보고 까마귀 같은 새까만 놈이라고 하셨잖아요. "

"하하하하 해해해 "

여무락꼬래이 할아버지와 까마귀 봉봉이가 서로 얼굴을 마주 대고 웃었다.

"할아버지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제 동생들도 만나 보고요"

"그래, 우리 오래 같이 살자"

KakaoTalk_20240922_110229191_10.jpg


"야들아 안마기 어딨노? "


까마귀 봉봉이의 이이잉 덜덜덜덜 두드리는 소리가 힘차다.

나는 책장 밑바닥 틈새에 끼어서 봉봉이가 너무 어지럽지 않기를 바라며 먼지 사이로 그 소리를 흐뭇하게 듣는다.

그리고 가끔, 혹시, 언젠가 누군가 이렇게 나를 불러줄지도 ----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여무락꼬래이 어딨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