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별곡 13
요즘세상에 옷 떨어져서 (해져서) 못 입는 사람이 어디있노. 싫증 나서 버리지. 참으로 많고도 많은 게 옷이다.
사람이 살면서 제일 가까이 많이 오래 같이하는 물건이 옷이라고 생각한다.
해진 이 옷을 버리려니 오래된 묵은 내 피부를 한 겹을 벗겨 쓰레기 통으로 버리는 듯해 손이 오그라져서 못 버리고 다시 들고 들어와 입지도 못할 옷을 옷걸이에 걸어둔다.
사모님들 오세요! 새 옷 구경 하러 오세요 -
집집마다 저녁을 먹은 뒤 내 방으로 모인다.
어디 새 옷 한번 꺼내 입어봐 -
신 선생 예쁘다. - 치마가 이렇게 길어?
나도 한번 입어보자. 어때?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이네-
목이 너무 파이지 않았나요? 뒷 목도 그렇고. 학교에 입고 가도 될까요?
괜찮어 - 목걸이 하나 하면 돼.
돌아가며 원피스를 너도 나도 다 입어 본다.
이거 똥배가 가려지니까 날씬해 보여! 홍선생 사모님이 좋아라 한다.
대여 가능합니다.
교감선생님 사모님도 입어보세요 -
으이구 미쳤어여- 됐서어여 -- 뒤로 몸을 빼신다.
입어봐요- 이쁠 거예요.
늙은 할매가 이런 옷을 어떻게 입어 말도 안 돼. 자꾸 그러지마. 싱겁기는 -
그렇게 말하시면서도 뒤로 물러 앉으시면서도 옷을 보는 눈이 반짝이셨다.
하하 호호 시골 학교 사택이 시끌벅적한 월요일 밤이다.
이 옷은 진짜 마법처럼 누가 입어도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인다. 진짜.
3월에 첫 발령을 받았고 6월 말쯤 이 옷을 대구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샀다. 청송의 산골 학교 사택에 살았던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 대구나 안동 시내에 나갔다 오면서 가지고 들어오는 새로운 것들에 흥분했다. 지금 보면 하나도 야하지 않은데 목이 뭐가 많이 파였다고 걱정을 했는지 싶다- 하지만 그때는 교장이 복장을 지적하던 시대였다. 옷을 좀 맘대로 입는 편이어서 그 후 다른 학교에서도 치마가 짧다느니 청바지를 입지 말라느니 불려 가서 한 소리 들은 적이 있지만 뭐, 꿋꿋하게 입고 싶은 대로 입었다.
이 옷을 입고 남편을 만나러 충북 영동으로 갔다. 남편은 서울에 있고 나는 청송에 있어 경부선 중간거리 영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영동까지 가는 길은 학교에서 버스로 면소재지 정류장까지 와서 시외버스로 대구 가서 대구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동대구역 가서 상행선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영동에 내려야 했다.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달리고 뛰고 표를 끊고 맘 졸이며 차를 기다려 타고 그 모든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대로 가득 찬 기쁨의 시간이었다. 내 온 마음을 다해 달려가서 닿아야 하는 나의 사람에게 가는 길이니까.
그렇게 만난 우리는 겨우 몇 시간, 서로 여기까지 온 시간보다 짧은 시간을 영동 근교의 어느 시골길을 걸으며 보냈다. 속절없이 시간은 가고 서로 말은 않지만 애절한 마음을 안 들키려 웃으며 찍은 사진이다.
서로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타야 했던 오후의 플렛포옴에 선 내 원피스 자락에는 반짝이는 햇살 조차 슬펐다. 헤어져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차창밖만 보아야 했다.
이 옷은 과감하고 멋진 원피스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멋스럽게 입고 넓은 스커트 폭을 우아하게 늘어뜨리고 학교로 간다. 스스로 근사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옷이 낡아서 자주는 못 입지만 여름이면 꼭 한 번은 이 옷을 입고 출근을 한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내 첫 발령지의 여름날들과 거기 함께 사택에서 정겹게 살았던 사람들과 아이들과 큰 느티나무의 학교 운동장과 교실이 떠오른다. 20대 나는 꽃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고 아마 무엇을 입었어도 빛났으리라.
당연하게 올여름도 나는 이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야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쪽이 낡아서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수선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천이 너무 얇아졌다. 35년도 훨씬 넘어 입었으니 이제는 쉬게 해도 되겠다 싶다. 참 오래도 견뎠다. 더 이상 입지는 못하겠다 싶지만 버리는 것은 머뭇대고 있다.
어떤 옷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 옷에 스며들어 말라 붙어 피부가 된 내 몸의 한 꺼풀 껍질을 입는 것이다. 오래된 옷을 입는 것은 그 옷과 나만 아는 추억을 소환하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 막 피어나는 개망초 풀밭에 앉아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 속에 있다.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지닌 청춘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청송 산골 학교 사택 작은 방과 이 옷을 입고 모델처럼 서로 예쁘다고 웃던 사모님들의 얼굴도 있다. 아이들이 사정없이 쏘는 물총 공격을 받아 홀딱 젖어서 신발도 벗어던지고 치마폭을 둘러 쥐고 운동장을 달려 도망치던 옷이다.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배어 있고 곳곳의 바람과 햇살이 아로새겨진 옷이다. 색이 바래고 낡아도 보란 듯이 시원하게 나의 여름을 함께 해주었던 옷이다.
제발 옛날 옷 좀 버려라는 딸아이의 핀잔에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내 옷장에는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들이 일기장의 갈피처럼 걸려있기 때문이다.